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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道)를 아세요? 빅뱅과 도덕경

by Henry


도(道)를 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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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도서관에 들렀다. 서가를 거닐다가 【명리학의 이해】(루즈지, 김연채 옮김. 사회평론, 2018)가 눈에 들어왔다. '사주팔자'를 풀어보는 방법을 다룬 책은 아니었다. 대신 명리학의 형성과 발전의 역사를 조명하며, 고도로 발달한 현대 사회에서 왜 사람들이 여전히 사주팔자에 관심을 갖는지 묻고 있었다. 책의 몇 장을 넘기며 흥미로운 구절들을 마주하자, 원초적인 의문이 떠올랐다. "왜 우리는 여전히 사주팔자를 찾는가?" 그 답을 찾기 위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쓰는 글은 조금 딱딱하고 재미없을지도 모른다. 이 글은 내 궁금증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느낀 점을 스스로 기록하기 위한 것이기에 어쩔 수 없다. 글을 쓰며 명리학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몰입하기 위해 남기는 정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읽히는 것보다는 스스로 자료 정리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내용이 어렵고 불친절할 수 있음을 미리 밝힌다.


'도(道)'를 아세요? 길을 가다가 이렇게 물으며 접근하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낯선 이는 손에 얇은 책자 하나를 들고 있었다. 표지에는 붓글씨처럼 적힌 '道'라는 글자가 눈에 띄었다. 도(道)? 도덕 아니면 무슨 법칙을 말하는 걸까? 고개를 잠시 갸우뚱거리다가 이내 발길을 재촉했다. 몇 걸음 따라오면서 말을 붙인 낯선 이도 내 싸늘한 반응에 제풀에 이내 다른 사람한테로 눈길을 돌린다.


사이비 종교를 전파하는 사람들일까가? 그들이 말하는 도(道란 과연 무얼 말하는 걸까? 노자가 말하는 도(道)의 사상을 전파하는 사람일까? 실제로 그런지 아니면 그저 사이비 종교를 전파하는 사람인지 나로서는 알 수 없다. 세상이 하도 험해서 이런 뜬금없는 접근을 경계하느라 처음부터 말을 섞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그럼에도 발길을 재촉하면서 마음 한구석에는 묘한 감정이 남는다. '도란 무엇인가?' 노자가 말하는 도는 만물의 근원이며 자연의 법칙이라 한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의 도란, 그저 경계심을 불러일으키는 낯선 단어로 전락해 버린 것일까? 잠깐 스쳤던 철학적 호기심도, 거리의 경계심 앞에서는 금세 사라지고 만다. 그럼, 지금부터 차분하게 '道’가 뭔지 알아보자.


도(道)는 천지의 시작이며, 만물의 어머니

중국 고대의 대학자 노자는 "도(道)는 천지의 시작이며, 만물의 어머니"라고 말한다. ’ (道)‘가 우주와 만물이 탄생하기 전의 본질적 상태로, 모든 존재와 현상의 근원이란 뜻이다. 노자는 그의 저서 『도덕경(道德經)』 42장에서 "도는 일(一)을 낳고, 일은 이(二)를 낳으며, 이는 삼(三)을 낳고, 삼은 만물(萬物)을 낳는다"라고 저술했다. 이 말은 도에서 만물이 생성되는 과정을 단계적으로 보여준다.


그런데 이게 뭔 말인가? 처음 들으면 도무지 알 수 없는 말처럼 느껴져 당황스럽다. 하지만 조금 더 자세히 따져보자. 노자가 말하는 일(一)은 도에서 처음으로 나온 존재로, 만물이 생성될 수 있는 첫 번째 단일성을 의미한다. 이는 사물이나 세상이 아직 분화되지 않은 원초적 상태로, 우주의 근본적 질서를 나타낸다. 일(一)은 모든 가능성을 내포한 통합적 존재이며, 음양으로 분화되기 이전의 하나 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노자의 이 말은 빅뱅 이론과 놀랍도록 비슷하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물론 구체적인 표현은 다르지만,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도는 일(一)을 낳는다"는 말은 만물이 생성되기 전의 절대적 근원으로서 도가 작용하여 최초의 단일성이 나타났음을 의미한다. 이는 빅뱅 이론에서 말하는 무의 상태에서 나타난 특이점(Singularity)과 비교할 수 있다. 특이점은 시간과 공간, 물질과 에너지가 분화되기 이전의 상태로, 우주의 모든 것이 하나로 응축된 원초적 상태다. 이러한 특이점은 노자가 말한 "일(一)"과 유사하게 통합적이고 단일적인 근원 상태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다음으로 일에서 분화된 이(二)는 음(陰)과 양(陽)을 상징하며, 이는 대립적이면서도 상호 보완적인 우주의 두 가지 기본 원리를 나타낸다. 음과 양은 서로 반대되는 성질을 가지지만, 동시에 서로가 필요로 하고 의존하는 관계를 형성한다. 자연의 모든 대립적 현상, 예를 들어 낮과 밤, 빛과 어둠, 강함과 부드러움 등은 음양의 작용에서 비롯된다. 이는 우주의 변화와 생성을 가능하게 하는 기본 원리로, 도의 작용을 통해 세상에 나타나는 두 가지 본질적 요소이다.


일(一)이 분화되어 이(二)가 되면, 음(陰)과 양(陽), 즉 대립적이면서도 상호작용하는 두 원리가 나타난다. 이는 빅뱅 이후 우주에서 에너지와 물질, 기본 입자들이 분화하기 시작하는 과정과 연결된다. 빅뱅 초기의 고온·고밀도의 상태에서 입자와 반입자가 생성되고, 서로 대립하면서도 상호작용하는 모습은 음양의 관계와 유사하다.


이 말을 조금 더 쉽게 풀어보자. 도덕경에서 말하는 빛(양)과 어둠(음), 그리고 빅뱅 이론에서의 물질(양)과 반물질(음) 같은 대립적 요소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우주의 기본 구조를 형성한다는 뜻이다. 이처럼 노자가 설명한 음양의 원리는 빅뱅 이후 우주의 생성과 진화 과정에서도 중요한 철학적 통찰을 제공한다.


도의 철학적 세계관과 빅뱅의 과학적 세계관

이와 같은 음과 양의 상호작용을 통해 삼(三)이 형성된다. 삼은 음과 양의 대립과 상호작용 속에서 생성된 조화와 생명력을 상징하며, 세상의 구체적인 현상과 구조로 나타난다. 이는 천지인(天地人), 즉 하늘(天), 땅(地), 인간(人)의 조화를 의미하기도 한다. 하늘과 땅이라는 대립적 요소 사이에서 인간이 조화를 이루며 존재하는 관계를 나타내며, 삼은 대립적 원리 사이에서 새로운 차원을 만들어내는 창조적 과정을 나타낸다.


노자가 말한 이 과정은 빅뱅 이후 입자들이 상호작용하여 원자, 분자, 그리고 더 복잡한 구조로 발전하는 과정과 연결된다. 특히, 삼(三)은 천지인(天地人), 즉 하늘(우주), 땅(물질), 인간(생명)을 상징한다. 빅뱅 이론에서 이는 우주가 초기 입자와 에너지의 상호작용을 통해 점차 별, 은하, 행성, 그리고 생명체를 형성하는 과정과 유사하다. 음양의 상호작용은 우주에 조화와 질서를 가져다주며, 이는 물리적 법칙과 힘들이 균형을 이루며 작용하는 우주 탄생 과정과 닮았다.


노자가 도에서 일, 이, 삼을 통해 만물이 생성된다고 설명한 과정은 빅뱅 이론의 우주 생성 과정과 놀라울 정도로 철학적으로 유사하다. 도는 빅뱅의 특이점과 같이 만물의 근원적 원리로 작용하며, 일(統一의 상태)은 특이점에서 시작된 통합된 상태, 이(二)는 빅뱅 이후 물질과 에너지의 분화, 삼(三)은 그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된 조화와 생명을 상징한다.


우리는 전혀 다르다고 여겼던 이 두 이론이 사실 동일한 우주 탄생의 원리를 설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노자의 이야기는 철학적 세계관이고, 빅뱅 이론은 과학적 세계관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아주 오래전, 노자는 우주의 생성 원리를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그것을 도(道)의 개념으로 설파했지만, 구체적인 과정을 과학적으로 설명해 내지는 못했다. 그러나 현대 과학이 우주 탄생의 원리를 실체적으로 규명한 결과, 노자의 설명이 맞았음을 거꾸로 입증한 셈이 되었다.


그렇다면 음양(陰陽)의 원리를 단순히 미신으로 치부하고 무시할 수 있을까?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든다. 다음에는 음양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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