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빠진 동그라미, K-Culture

by Henry

세계를 매혹하는 K의 힘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음악의 변방이라 불리던 대한민국의 음악인 K-팝이 세계를 휩쓸 줄을. 오래전, 미국 팝송이 음악의 표준처럼 군림하던 시절, 한국에는 제대로 된 음악조차 없다고 여겨졌다. 지금은 트로트가 재평가되지만, 당시만 해도 ‘뽕짝 뽕짝’한다고 ‘뽕짝’이라고 놀림을 받았다.


젊음은 언제나 새로운 장르를 선호하고, 도전적인 음악에 끌리기 마련이다. 그 시절 젊은이들은 미국의 팝을 사랑했고, 비틀스에 열광했다. 종일 팝송이 흘러나온다고 해서, 주한 미군 전용 방송인 AFKN을 찾아 듣기도 했다. 한국 가요보다는 영어로 된 노래를 더 즐겨 듣던 시절이었다. 포크 음악도 젊은이들이 선호하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어떤가. 우리의 춤과 노래가 전 세계를 흔든다. BTS의 ‘Dynamite’는 빌보드 정상을 차지했고, 블랙핑크의 공연은 프랑스와 영국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2022년 부산에서 열린 BTS 콘서트는 전 세계 229개국에 생중계되었고, 4,900만 명이 온라인으로 그 감동을 함께했다. 이제 K-팝은 더 이상 ‘글로벌 도전’이 아니라, ‘글로벌 팝 표준’이 되었다.


《오징어게임》을 필두로 한 K-드라마는 전 세계 시청자들의 감정을 사로잡았다.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당당히 최고상을 수상하며, K-무비의 위상을 새롭게 썼다. 그뿐인가. 김치, K-푸드, K-뷰티, 그리고 한글까지, 이제 한국 브랜드는 화장품 매장과 마트 진열대에서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K-Pop: Demon Hunters》의 충격

사자 보이즈.jpg 사자보이즈(Saja Boys)



<사자 보이즈의 춤>

최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가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세계적인 K-팝 걸그룹 ‘헌트릭스(Huntrix)’가 무대 위에선 슈퍼스타, 무대 밖에선 악령을 퇴치하는 ‘데몬 헌터(악령 사냥꾼)’로 활약하는 이중생활을 그린 판타지물이다. K-팝과 판타지, 한국 귀신이 어우러진 독특한 설정이 전 세계 팬들의 관심을 끌었다.


‘헌트릭스’ 앞에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새로운 보이그룹, ‘사자보이즈(Saja Boys)’가 등장한다. 여기서 사자는 저승사자를 말한다. 이들은 헌트릭스의 힘을 약화시키려는 악령들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칙칙하고 음산한 분위기의 저승사자가 아니다. 우리의 전통 의상인 도포를 입고 갓을 쓴 저승사자는 케이팝을 만나 춤을 추고 노래하는 매력적인 아이돌로 변신한다.


초반엔 ‘헌트릭스’와 ‘사자보이즈’는 격렬하게 대립한다. 서로 싸우며 갈등하는 두 그룹은 더 큰 위협인 대장 악령 앞에서 힘을 합치게 된다. 기획은 참신했고, 음악은 귀를 사로잡았다. 잘생긴 주인공들, 그들을 따라 하다 보면 절로 흥이 나는 춤도 완성도가 높다. 도포와 갓을 착용한 사자보이즈의 군무는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인상적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모든 것이 한국이 아닌 할리우드의 손에서 만들어졌다. 기획도, 자본도, 연출도 모두 할리우드 것이다. 문제는 이것이 일회성 사례가 아니라는 점이다. K-컬처가 세계적 인기를 얻을수록, 이를 활용한 콘텐츠와 상품은 외국에서 먼저 제작되고 유통된다. 우리는 원천이지만, 수익의 주체는 아니다. 이제는 문화적 성과에 안주할 때가 아니다. 그에 못지않게 기술 경쟁력도 확보해야 한다.


이제는 I(Information)T가 아니라 I(Intelligence)T

한때 한국은 IT 강국으로 세계를 호령했다. 반도체, 스마트폰, 초고속 인터넷으로 디지털 혁명을 이끌며, '정보(Information) 기술'의 전성기를 누렸다.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다. AI의 시대, 패러다임은 정보(Information)에서 지능(Intelligence)으로 전환됐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지능(Intelligence)’이 빠진 IT에 머물고 있다.


생성형 AI의 발전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생성형 AI는 기존 데이터를 학습해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인공지능이다. 글, 그림, 음악, 영상 등 다양한 창작물을 자동으로 생성할 수 있다. ChatGPT, Claude, Gemini 같은 대화형 AI는 이제 단순 질문 답변을 넘어 복잡한 문서 작성, 코딩, 번역, 창작까지 수행한다.


이미지 생성 AI인 DALL-E, Midjourney, Stable Diffusion은 텍스트 설명만으로 전문 디자이너 수준의 이미지를 순식간에 만들어 낸다. 이들은 모두 '텍스트-이미지 변환' AI로, 사용자가 글로 묘사한 내용을 실제 그림으로 만들어주는 프로그램이다. 또한 음악 생성 AI는 "잔잔한 카페 배경음악"이라는 간단한 요청으로 수준급 작곡을 해낸다.


AI와 인간의 협력이 새로운 차원으로 진화하고 있다. 의료 현장에서 AI는 CT, MRI, X-ray 영상에서 병변을 자동 식별해 의사의 진단을 지원하며, 교통 분야에서는 아예 인간을 대신해 운전대를 잡고 있다. 무인 배송 차량이 24시간 물류 서비스를 책임지고, 공항이나 대학 캠퍼스에서는 무인 셔틀이 승객 이송 업무를 완전히 자동화했다. AI가 보조 역할에서 주도적 역할로 진화한 것이다.


이 빠진 K-Culture

문화는 유행을 탄다. 지금은 K-Culture가 전 세계를 열광시키고 있지만, 언젠가 새로운 트렌드에 자리를 내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기술은 다르다. 특히 AI와 같은 기반 기술은 일단 주도권을 잡으면, 오랜 시간 압도적인 영향력을 발휘한다.


우리의 K는 여전히 이 빠진 동그라미다. K-Culture라는 한쪽 날개는 화려하게 펼쳤지만, K-AI라는 다른 쪽 날개가 없어 제대로 날아오르지 못한다. 문화로는 세상을 감동하게 하지만, 그 문화를 더 널리 퍼뜨리고 발전시킬 기술적 도구는 남의 것에 의존해야 하는 처지다.


OTT 플랫폼에도, 틱톡 알고리즘에도, 자율주행차에도, 생성형 AI에도… 그 어디에도 ‘K’는 없다. 전 세계가 AI로 새로운 문명을 써 내려가고 있는 지금, 우리는 아직 “K-AI”라 부를 만한 상징 하나 만들지 못했다. K-팝은 있고, K-뷰티도 있으며, 심지어 한국 귀신까지 세계를 휩쓸고 있다. 그러나 정작 미래를 좌우할 AI 기술에선 ‘K’가 보이지 않는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AI 기술 격차가 이제 문화 콘텐츠 제작의 현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영상은 AI로 편집하고, 음악은 AI가 작곡하며, 스토리조차 AI가 구성하는 시대. 이런 시대에 기술의 열세는 곧 창작의 열세로 이어진다. 우리가 만든 K-Culture의 소재를 외국의 AI가 재가공해 만든 콘텐츠가, 오히려 더 주목받는 상황이 머지않아 현실이 될 수도 있다.


기술이 없으면 남의 땅에 집을 지을 수밖에 없다. AI라는 새 대지가 펼쳐진 지금, 우리가 기초부터 닦지 않는다면 또다시 남이 지은 도시에 세 들어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에겐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 기술, 5G 인프라, 그리고 무엇보다 K-Culture라는 독특한 소프트파워가 있다. 이 카드들을 AI와 연결해야 할 때다.


K-AI를 만들자.

K-AI는 한국 문화에 특화된 인공지능이다. 한국어의 높임말 체계와 K-드라마 특유의 서사를 학습한, 이야기 잘하는 AI를 상상해보라. K-팝의 멜로디 패턴과 안무 동선을 분석해 차세대 아이돌 그룹의 음악 창작을 돕는 AI도 가능하다.


K-AI는 한국 산업 특화 AI이다. 우리가 세계 1위인 반도체 설계 최적화, 조선업의 선박 설계, K-뷰티의 개인 맞춤형 화장품 추천, 한식 레시피 개발 등 한국의 강점 산업에 특화된 AI 솔루션이 핵심이다. 이미 K-Culture로 세계 시장을 휩쓸고 있는 산업을 우리 AI 기술이 뒷받침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K-AI 허브'라는 물리적 거점이 필요하다. 이곳에는 AI 반도체 설계센터가 들어선다. 대규모 언어모델 훈련소도 함께 구축해야 한다. K-콘텐츠 창작 스튜디오도 포함되어야 한다. 대규모 언어모델(LLM)은 ChatGPT처럼 인간과 대화할 수 있는 AI의 핵심 기술이다. 이를 개발하려면 막대한 컴퓨팅 파워와 전용 시설이 필요하다.


'AI 코리아 장학생' 제도를 신설해 AI 인재를 육성하는 것도 방법이다. 동시에 MIT, 스탠포드, 옥스퍼드 등 해외 톱티어 대학 AI 박사과정 파견 프로그램을 확대해야 한다. 외국인 AI 인재를 위한 특별비자를 도입해 장기 국내 체류와 영주권 패스트트랙을 제공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K-AI 육성을 위한 정부-민간 합동 펀드 조성이 필요하다. 이 펀드를 활용해 차세대 AI 유니콘 기업 육성에 집중해야 한다. 대기업에는 스타트업 상생펀드 출자를 의무화해 기술 이전과 투자가 활발히 이뤄지는 AI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문화는 유행을 타지만 기술은 다르다. 특히 AI 같은 기반 기술은 한번 주도권을 잡으면 오랜 시간 압도적 영향력을 발휘한다. 지금 당장 미국과 중국을 정면 추격하기는 어렵지만, 우리만의 특화 영역에서는 충분히 승부할 수 있다.


이것은 불가능한 꿈이 아니라,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할 현실이다. 이 빠진 동그라미로는 끝내 굴러가지 못한다. 하지만 잃어버린 이빨, AI를 되찾는다면, 우리는 다시 온전한 원이 되어 세계를 향해 굴러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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