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늦기 전에

by Henry
찰스 디킨스 두 도시 이야기.jpg 구글의 생성형 AI Gemini 3.0이 생성한 이미지


토요일의 일과를 마치고 인천에서 동탄으로 돌아왔다. 늦은 밤, 아파트 입구에서 경비원 아저씨가 제설 작업에 분주하다. 인천에는 종일 겨울비가 내렸고, 동탄에는 눈이 내렸다고 한다. 그리 멀지 않은 두 곳의 날씨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가 떠오른다. 18세기말 프랑스 혁명기, 파리와 런던에서 벌어진 이야기다. 첫 문단이 빼어난 명문장이다.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의 세기이자 의심의 세기였으며, 빛의 계절이자 어둠의 계절이었다. 희망의 봄이면서 곧 절망의 겨울이었다. 우리 앞에는 무엇이든 있었지만, 한편으로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는 모두 천국 쪽으로 가고자 했지만, 우리는 다른 방향으로 걸어갔다.”

감히 인천과 동탄을 두 도시에 비유하다니 발칙하다. 하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내 마음이 빈약한 최고이면서 긴 최악이고, 약간의 지혜와 많은 어리석음을 간직한다. 가끔은 빛이 들었다가 오랜 기간 어둠에 묻히고, 짧은 희망과 긴 절망이 깃든다. 나는 깨달음으로 가고자 하지만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가는 기분이다.


친구가 내게 말했다. 특이 체질이라고. 남들이 좋아하는 보편적 기쁨에 몰입하지 못한다고. 나이가 들면 당연히 무뎌져야 할 감성이 여전히 문제가 된다는 말도 덧붙인다. 구체적인 예를 들면서 이야기하는 친구의 말에 반박할 여지가 없다.

친구들이 부러울 때가 많다. 일상의 소소함에 즐거워하고 가끔 만나 기울이는 술잔에 행복을 느끼는 그들이 보기 좋다. 어울려 골프를 즐기고 며칠이고 함께 운동하는 그들이 부럽다.


중뿔난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지혜를 얻은 것도 아닌 어중간한 나는 자주 방황한다. 자주 고독하고 자주 외로워하는 나 자신이 이해되지 않을 때도 많다. 하지만 그게 나인 걸 어찌하겠는가.

누군가의 묘비명에 이렇게 나온다고 한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오래전에 세웠지만 미뤄온 계획을 실천에 옮기겠다. 더 늦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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