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내리던 겨울비가 그칠 줄 모른다. 12월에 내리는 비는 쓸쓸하다. 제철을 잊은 채 내리는 이 비가, 삶의 한복판에서 가끔 길을 잃고 방황하는 나를 닮았다.
어제는 독서 모임 '오후의 글방' 송년회가 있었다. 소박한 저녁 자리에서 각자의 일상을 나눴다. 삶의 기쁨을 이야기하는 그들이 환하다. 늘 고민하고 방황하는 나에게는, 그 담담한 긍정이 부럽다.
'오후의 글방', 인생의 오후를 함께 읽어간다는 뜻. 도서관 프로젝트로 우연히 만난 6명이 1년 반을 함께했다. 격주로 모여 책을 읽었다. 누군가 빠지면 남은 사람들이 모임을 이어갔다. 구속 없는 자율이 오히려 모임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요즘처럼 모든 관계가 쉽게 시작되고 쉽게 끝나는 시대에, 이 모임은 담담하게 이어졌다. 바쁜 일상에서도 모임이 단단하게 이어가는 비결이 뭘까.
누군가 말했다.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면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너무 가까우면 부담스럽고, 너무 멀면 서운하다. 서로의 삶에 깊이 개입하지 않으면서도, 서로의 생각을 진지하게 듣는다. 충고하지 않고, 해결책을 제시하지도 않는다. 함께 있고 이야기를 나눈다. 그뿐이다.
어쩌면 그것은 '경계'일 것이다. '냉정과 열정 사이'의 어딘가. 아니면 '사랑과 우정 사이'의 어딘가. 그 미묘한 경계선을 우리는 지켜왔다. 서로의 입장을 존중하면서 그렇게.
어제도 그랬다. 살아가는 이야기, 일상의 대화만으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다음 독서 주제와 신년의 방향을 이야기하고, 시 창작이나 독서 여행도 제안했다. 9시에 자리를 파하고 나서니 어둠이 내려 있었다. 도시의 불빛은 더 화려했다. 우리는 불빛을 뒤로하고 각자 어둠 속으로 떠났다.
창밖을 본다. 겨울비가 내린다.
나이가 들면서 낯선 사람들과의 우정이라는 것은, 어쩌면 이런 것인지도 모른다. 청춘의 뜨거움을 경험했고, 삶의 고단함도 겪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서로의 고독을 인정하면서도, 완전히 혼자는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는 시간이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인생의 본질을 해결하기에는 힘에 부친다. 각자의 내면 깊숙한 곳에는 상처와 아픔, 풀리지 않는 실존적 질문들이 있다. 그것들은 결국 혼자 감당해야 할 몫이다.
하지만 괜찮다. 우리는 '해결'하기 위해 모이는 것이 아니다. 같은 책을 읽고, 다른 소감을 나누면 된다. 가끔 자기의 내면을 이야기하는 그 소박한 반복, 그것이 전부다.
비는 계속 내린다.
이 비가 그치고 나면 새날이 오고, 우리는 또 만날 것이다. 냉정과 열정 사이, 사랑과 우정 사이, 그 미묘한 경계 위에서 균형을 잡으면서.
그것으로 충분하다. 늘 고민하고 방황하는 나에게도, 이 담담한 연대만으로 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