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色)의 끼 13】
보라색이 잘 어울리는 미인
“보라색 옷이 잘 어울립니다. 당신은 미인입니다!!”
보라색은 화려하지만 차갑고, 열정적이지만 외롭고, 신비롭지만 고독하고, 절대 권력을 나타내면서도 나약함을 보여. 색깔 가운데서 가장 이중적이고 치열하게 논쟁적인 색깔이지. 섬세하면서도 강렬한 보라색의 특성은 옷을 받쳐 입기가 까다롭기로 유명해. 그러니 보라색이 잘 어울리면 미인이란 말은 틀린 것이 아니야.
보라색은 낭성적인 빨간색과 여성적인 파란색이 만나서 만들어져. 열정의 홍(洪)과 냉정의 청(靑)이 만나 보라색이 탄생한 것이야. 극단적인 두 세계가 만나 보라의 세상을 만들었다고 보면 돼. 그러니 보라색은 오묘하면서도 신비로울 수밖에 없어. 특히 푸른빛이 감도는 보라색은 우주의 신비로움을 표현하며 지적 호기심을 자극한다는 평가를 받아.
약 4천여 년 전 미노아 문명은 뮤렉스 달팽이(murex snail)와 몇몇 바다 고등의 분비물로 아주 희귀한 보라색 염료를 만들었어. 페니키아 남부의 티르라는 마을에서 본격적으로 보라색 염료를 생산하기 시작했지. 이때의 보라색을 마을 이름이 포함된 티리언 퍼플(Tyrian purple)이라 부른다고 해.
중세 시대만 해도 바다 고둥에서 보라색 염료를 뽑아냈어. 고둥이 분비하는 점액을 오랫동안 달인 염료를 옷감에 염색한 뒤 햇빛에 말렸지. 옷감의 색은 처음에는 초록으로, 그다음에는 빨강으로 변했다가 마지막에는 보라색으로 변해. 보라색 1g을 만들려면 고둥이 약 1만 마리가 필요했다고 해. 전통적인 방식으로 손수건 한 장을 보라색으로 염색하니, 비용이 무려 14,000달러(약 1,850만 원)나 든다고 하네.
나는 황제다(Born in the purple)!!
그 옛날에는 자연에서 보라색 염료를 구하기가 무척 힘들었어. 선원들이 목숨 걸고 거친 바다로 나갔지. 그러니 보라색의 값이 비쌀 수밖에 없고, 옷 한 벌 짓는데 너무 많은 돈이 들었어. 귀족들은 너도 나도 보라색 망토를 걸치고 보라색 옷을 입으려 했지. 당시에 자기를 과시하기에 보라색만 한 것이 없었으니 그럴 거야.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보라색을 하늘의 색이라 생각하며 귀하게 여겼어. 그들의 눈에는 하늘이 보라로 보였나 봐.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와 플라톤(Plato) 등 고대의 철학자들은 보라색을 가장 아름다운 색이라 좋아했지. 그리스의 신을 모시는 제사장은 보라색을 옷을 입었다는 사실에서 얼마나 존경을 받았는지 짐작할 수 있지. 예나 지금이나 신을 모시는 일은 가장 신성한 일이잖아.
로마시대에 와서는 보라색 옷이 신분의 상징이 됐어. 귀족들이 보라색 옷을 입고 거들먹거리는 것을 본 로마 황제는 배알이 꼴렸다. 도대체 귀족들은 저 비싼 보라색 옷을 어떻게 구할까, 그것이 궁금했다. 황제의 머리에 불현듯 생각이 떠올랐어. '저건 분명 백성들을 쥐어짜 돈을 마련했을 것이다.' 황제는 귀족들이 보라색 옷을 입다가 걸리면 엄벌에 처하겠다고 위협했지. 심지어 네로 황제는 아예 자신 외에 보라색 옷을 입는 자는 사형에 처했어.
동로마 제국의 황실도 귀족이나 일반인이 보라색 옷을 입는 것을 엄격히 금지했어. 심지어 황실 건축물과 황실 관련 도구에만 보라색을 사용하도록 엄격히 규제했지. 게다가 보라색 염료를 만드는 방법까지 국가가 직접 관리할 정도였다고 해. 동로마가 무너지자 보라색 만드는 비법도 사라졌지.
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 궁전에는 바닥에서부터 벽면, 커튼까지 온통 보라색으로 꾸며진 방이 있었다고 해. 황제의 자식 중에서 보라색 방에서 태어난 아이만이 왕위 계승권을 가졌지. 'born in the purple’이라는 영어 숙어는 ‘왕이나 귀족의 신분으로 태어난’이란 뜻이야. 이 숙어의 어원은 ‘황제의 신분으로 태어났다.’라고 하는 뜻이야.
가장 치명적이고 가장 논쟁적인 보라색
보라색은 색깔 가운데서 가장 신비로운 색이야. 화려하지만 우울하고 도도하지만 외로움이 느껴져. 보라색은 열정의 빨강과 냉정의 파랑이 만난 색이라 그래. 그래서 남성적인 강함과 여성적인 부드러움이 함께하지. 도회적 우아함과 세련미를 갖춘 까닭은 보라가 가진 중성적 이미지 때문일 거야. 또 보라색은 신비로움, 고귀함, 화려함, 치유의 이미지와 고독, 우울, 상처의 이미지를 함께 가지고 있어.
고고함, 세련된 이미지를 주는 보라색은 옛날부터 귀부인들의 옷감으로 인기를 끌었지. 하지만 보라색이 가진 난해한 이미지와 강한 개성으로 다른 색깔과의 조화가 무척 어려웠어. 자칫하면 천박하거나 세련되지 못한 느낌을 줄 수 있어. 그래서 보라색 옷이 잘 어울리는 사람이 진짜 미인이라는 말이 나왔어. 그만큼 까다로우면서 도도한 색깔이기 때문이지.
보라색을 좋아하는 사람은 예술적 감수성이 풍부하고 직관력이 뛰어나다고 말하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예술가에 영감을 주고 창의력을 자극해. 그래서 예술작품, 창의적 상품을 생산할 때 보라색을 많이 활용하고 있어. 고급 마케팅에서는 보라색을 활용해 제품의 품격을 높여주지. 감성을 자극하는 보라색은 차별성을 추구하는 마케팅에 적합해.
세계 최고의 색채 연구소인 미국 펜턴(PANTONE) 색채연구소는 '2018년 올해의 색'으로 울트라 바이올렛을 선정했어. 팬턴은 복합적이고 사색적인 울트라 바이올렛 컬러는 우주의 미스터리, 미래에 일어날 흥미로운 일들, 현존하는 것들을 넘어선 존재를 암시한다고 정의했어. 광대하고 끝없는 밤하늘은 가능성에 대한 상징이며 우리의 세계를 넘어선 세계를 추구하고자 하는 영감을 불어넣어 준다는 거야. 이만하면 보라를 위한 최고의 찬사가 아닐까.
보라색은 매우 도발적이면서도 섬세해. 보라색은 독창성, 고유함, 미래 지향적인 비전을 담고 있어. 이만하면 보라색을 미래의 색이라 불러도 손상이 없어. 홍(洪)과 청(靑)을 통합한 보라색처럼 우리의 미래도 통합되면 좋겠다는 실없는 생각을 해. 좌와 우, 흑과 백, 우와 좌가 조금씩 양보해 중간쯤에서 만나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