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색의 힐링

불온하지만, 치명적으로 매혹적인 색

【색(色)의 끼 17】

by Henry

티파니에서의 아침을

뉴욕 맨해튼의 새벽 거리, 아름다운 여인이 택시에서 내려. 검은 드레스와 얼굴을 반이나 가린 선글라스의 그녀는 커피를 마시며 크루아상을 먹어. 그러면서 티파니 보석 가게를 뚫어져라 쳐다봐. 언젠가는 다 갖고 말겠다는 눈빛으로 보석들을 바라보는 거야. 그녀는 뉴욕의 한 아파트에서 돈 많은 남자를 만나 신분상 상승을 꿈꾸며 사는 홀리(오드리 헵번)야.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Breakfast at Tiffany’s, 1961)>는 이렇게 시작해. 이 영화의 줄거리는 생략하고 이 영화에서 헵번이 입고 나온 검정 드레스 이야기로 바로 들어갈게. 헵번은 영화 속에서 올림머리 스타일에 화려한 진주 목걸이와 긴 장갑을 착용하고 '리틀 블랙 드레스(little black dress)'를 입었어. 이것으로 20세기 영화산업의 가장 성공적인 아이콘의 하나인 ‘헵번스타일’이 탄생하지.


리틀 블랙 드레스는 원래 샤넬이 먼저 발표했어. 당시의 화려한 색상의 디자인과 달리 검은색의 지극히 단순한 디자인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지. 상복이나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던 검정을 여성의 옷으로 변신한 거야. 이것을 지방시(Givenchy)가 헵번의 검정 드레스로 거듭나게 했어. 영화의 헵번스타일은 지방시는 물론이고, 뉴욕 티파니 본점이 세계적인 브랜드로 만들었어. 검정 드레스의 헵번스타일은 지금도 젊은 여성들의 패션 아이템으로 인기가 높다고 해.



'티파니에서의 아침을'



20세기까지 서구 의류에서 검정은 주로 절제, 겸양, 애도 등을 표현하는 데 사용되었어. 1900년대에 들어와 냉철하고 진지해 보이기만 하는 검은색은 이미지에서 패션을 주도하는 색으로 등장했어. 흥미로운 사연은 리틀 블랙 드레스를 샤넬이 먼저 발표했다는 사실이야. 그런데 그걸 지방시가 귀엽고 세련된 헵번스타일로 바꿔 대박이 났어.


검은색은 시선을 밝은 쪽으로 집중하게 하지. 그러다 보니 검은색 옷을 입으면 사람 얼굴에 시선이 모여. 피부 톤이 너무 선명하게 드러나는 특징 있어. 그러면 어떻게 될까? 피부가 하얗거나 젊은 사람이 더 돋보이겠지. 그렇다고 나이든 사람은 검은색 옷을 입지 말아야 하나? 얼굴과 맞닿은 티셔츠나 와이셔츠가 검은색이 아니라면 괜찮아. 스티브 잡스가 즐겨 입던 검은색 터틀넥(turtleneck)을 입는 건 대단한 도전일 거야. 대신 힘과 권위를 상징하는 검은색 정장이라면 나이와 상관없겠지.


1950년대 합성섬유와 합성염료가 대량 생산되자 옷의 유행도 빠르게 변했지. 더 많은 옷, 더 빨리 변하는 유행이 시대를 주도했어. 1970년대는 날마다 변하는 패션이 사람들을 융단 포격했어. 너무 빠른 변화에 어지럼증을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어. 그들은 유행을 덜 타는 검은색 옷을 고르기 시작했어.


불온하고 위험하지만, 치명적이고 매혹적인 카라바조

카라바조, 사진 출처 위키 백과


검정을 캔버스의 배경으로 대담하게 들고나올 때는 르네상스 시절이야. 카라바조는 검은색을 칠함으로써 사람과 대상을 빛나게 하는 혁신적인 작품을 그렸어. 이탈리아의 화가인 카라바조(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1571~1610)는 처음 밀라노의 공방에서 그림 수업을 했어. 그림 실력을 쌓은 그는 빛과 어둠을 몰고 로마 화단에 혜성같이 등장했지.


카라바조는 39년의 짧은 생을 불꽃처럼 살다 갔어. 그는 짧은 빛의 영광과 긴 어둠의 도망자 시간을 보냈어. 싸움, 성공, 시기, 뛰어난 그림 실력, 살인, 도피 생활, 사형선고, 사면은 그의 생애를 묘사하는 키워드야. 한 번 욱하면 참을 줄 모르는 그의 격정적인 성격이 문제였어. 뛰어난 그림 실력을 아끼던 추기경과 고위 성자들이 그를 끔찍이 사랑했어. 그렇지만, 워낙 사고를 많이 친 탓에 끝내 그들도 골치깨나 썩었어. 그의 삶은 그의 그림보다 위험하고 불온했어. 이 남자를 멀리하기엔 너무 매혹적이고 치명적이었어.


'성 마태오의 소명'(1599~1600) 카라바조


<성 마태오를 부르심>이라는 이 작품은 카라바조의 걸작 중의 하나야. 어두운 실내에 몇 명의 남자들이 탁자에 앉아 있어. 탁자 왼쪽의 남자는 그날 세금으로 거둔 돈을 세느라 정신이 없어. 당시 세관 관리는 악랄하게 세금을 뜯어냈기 때문에 모두가 경멸하던 직업이었지. 예수는 오른손을 쭉 뻗어 마태오를 가르치며 “나를 따르라”라 하셨어. 사람들이 경멸하던 세무 공무원인 마태오를 예수 그리스도가 제자로 삼는 장면을 그린 거야.


카라바조가 연출한 빛과 어둠의 연극에서 주역은 단연 검은색이야. 이 그림의 반 이상을 깊은 어두운 그늘로 감쌌어. 연극의 스포트라이트처럼 주인공과 그 주변에 빛이 비치도록 하는 기법을 처음 시도했어. 그가 검정을 사용한 방식은 많은 예술가를 매료시켰어. 카라바조의 붓을 통해 검은색은 회화에서 새로운 지위를 부여받았지. 그 후 많은 화가가 빛의 밝음을 강조하기 위해 어둠을 검은색으로 짙게 하는 방법을 채택했어.


빛과 어둠의 세계를 화폭에 담은 또 다른 화가로 네덜란드 화가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06~1669)를 들 수 있어. 그는 빛과 어둠을 캔버스에 옮긴 카라바조의 영향을 많이 받았어. 배경의 어두움을 통해 대상을 빛나게 하는 신비감 넘치는 화면을 구사한 거야. 검은색과 하얀색의 명암과 색채 차이를 이용해 인간의 내면을 세밀하게 표현했어. 그는 인물의 얼굴에 빛을 집중함으로써 인물의 내면세계와 감정을 도드라지게 내보이게 했어.


<야경(1642)> 3.63m x 4.37m,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1642년 렘브란트는 역사에 길이 남을 걸작 <야경(1642)>을 그렸어. 이 그림을 통해 그는 위대한 화가의 반열에 오르게 되지. 민병대원들이 야간순찰을 나가기 위해 모여서 점검하는 장면을 그렸어. 여기서도 빛과 어둠의 강렬한 대비를 통해 사람들의 긴장감을 잘 표현했어. 지휘관이 손을 들어 행동 요령을 설명하고 있고, 나머지 대원들이 그의 말에 귀를 기울여.


원래 <야경>은 단체 초상화야. 사진기가 발명되기 전이라 단체 초상화를 그리는 일이 많았다고 해. 그림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돈을 모아 렘브란트에 대원이 모인 그림을 그려달라고 의뢰했어. 초상화는 인물의 표정과 옷을 자세하게 그려야 하잖아. 그러나 렘브란트는 몇 사람을 중심에 두고 그들에게만 빛을 드러내는 파격적인 그림을 그렸지.


문제는 그 뒤에 일어났어. 어둠 속에 있는 사람들이 항의한 거야. 자기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고 불만을 터트렸지. 하는 수 없이 렘브란트는 돈을 돌려줘야 했어. 그 바람에 경제적으로 쪼들리게 되었어. 그보다 더 치명적인 일은 초상화 주문이 끊긴 거야. 그는 빛과 어둠의 위대한 작품을 남기 대가를 톡톡히 치른 셈이야.


카라바조와 렘브란트의 삶은 극적이야. 둘 다 말년이 참 불운했어. 신의 영역인 빛과 어둠을 캔버스에 옮겨서 그런 걸까? 빛과 하양은 늘 칭찬만 받았지만, 검정은 때로는 불온하고 음흉하다는 소리를 들었어. 현대에 와서 패션계에서는 검정을 참 매혹적인 색이라고 인정해. 깊이 있고 강렬하며 때로는 신비로운 뉘앙스를 풍기는 색으로 보게 된 거야. 이제야 그들은 검정인 나를 불온하지만, 치명적으로 매혹적인 색이라고 말하지.


우리 삶은 불온하지 않으면서 치명적으로 매혹적일 수 있을까? 뭐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느냐고 꾸짖어도 할 말이 없어. 초야에 묻혀 이름 없는 사람이야 불온할 게 어디 있나. 더구나 매혹적인 구석이라곤 눈 씻고 찾아도 없어. 치명적이지도 않고 그렇게 매혹적이지 않아. 그렇지만 검은색의 깊고 진중한 침묵을 배울 필요는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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