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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만 나면, [몸싸움]

엄마가 소리칠 때까지

by 달빛의 여행자

<대문사진 출처 : Pixabay. ⓒVika_Gritter>

<폭력과는 다른 형제끼리 서로 몸을 부딪치며 노는 '몸놀이'임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몸싸움]은 특별한 기술을 요하지 않는다. 그저 몸만 있으면 된다. 딸, 여자 아이는 조금 힘들 수도 있다. 아들, 이면 그나마 가능하다. 어찌 보면 '이 정도쯤이야' 쉽게 거뜬할지도.


어릴 때부터 남자아이들은 태권도를 배운다길래 태권도장을 다니자고 아들에게 권유했었다. 그러나 사범님과 친구들의 기합소리에 우리 아들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우렁찬 소리와 액션이 듣고 보기에 힘들어했다. 그러면 합기도는 어때. 친한 친구 00도 다니는데. 하지만 그것도 고개를 절레절레. 이상하다. 동네 친구들은 남녀 불문하고 태권도복을 입고 "얍"이러면서 주말마다 행사에 초대되고 즐겁게 다니는데 우리 아들들은 거절했다. 싫다는데 굳이 보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조금 크면 배드민턴, 농구로 운동하지 뭐. 그래서 그저 필자처럼 조용한 곳을 좋아하고 특히 책을 좋아해서 얌전할 거라 생각했다. 물론 사랑이는 어릴 때부터 너무. 지나치게. 얌전해서 지인들이 '어머, 사랑이 정도면 나 열명도 더 키울 수 있어. 남자아이가 어쩌면 이렇게 얌전해. 진짜 대단하다. 정말 키우기 편하겠네.'라고 침이 마르도록 칭찬할 정도였다. (반면 둘째는 좀 달랐다. 여기서 의문이다. 어떻게 똑같은 부모 밑에서, 똑같은 배에서 나온 아이들이 이렇게 다를 수 있단 말인가. 과학적으로 증명된 바가 있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다.)


그런데 그게 무슨 소용이람. 우리 아들들은 안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태권도장을 다녀야 집에서 발차기를 하고, 합기도를 해야 서로 몸을 부딪치며 노는 줄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도장에 발도 디뎌보지 못했던 아들들은. 공부하다가 길을 걷다가 소파에 앉아 책을 읽다가 차 뒷좌석에서. 갑자기 몸싸움을 벌인다. 틈만 나면. 뜬금없이. 왜. 도대체. 무엇 때문에.


화면 캡처 2025-01-13 120652.png ▲ 사진 출처 : Pixabay. ⓒPavel Danilyuk. 내가 보는 아들들의 몸싸움.

누구부터 시작했는지 모르겠다. 분명 아까는 소파에 나란히 앉아 책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시작된 것이다. 사랑이(큰 아들)와 기쁨이(작은 아들)가 손으로 서로의 옷, 정확히는 넥라인을 잡아당긴다. 옷이 늘어날 텐데 왜 하필. 기쁨이가 사랑이의 몸을 소파 위로 눕히고 형의 가슴팍을 팔꿈치로 누른다. 눕혀진 사랑이는 얼굴이 벌게지며 발버둥을 친다. 퍽퍽 퍽퍽. 팔꿈치로 압제하던 기쁨이가 발에 맞기라도 한 찰나에 누워있던 사랑이가 몸을 일으키며 기쁨이를 다시 소파 위로 눕힌다. 이얍 이얍 얍. 서로 끙끙대는 소리를 내며 얼굴도 벌게졌다. 온 힘을 다하고 있으리라. 그러다가 서로 일어서서 발차기로 상대를 공격한다. 키도 서로 30cm 이상 차이 나면서 누구 하나 발차기를 멈추지 않는다. 얍삽하고 재빠르게 피하면서도 발을 상대편의 엉덩이, 정강이, 등을 힘차게 찬다. 퍽. 악. 윽. 탁. 소리도 찰지다.

까르르. 낄낄낄. 숨이 넘어갈 듯 웃어댄다. 발차기를 하면서 갑자기 왜 웃어. 몸싸움하는 게 웃긴가. 전혀 웃기지 않다. 그들은 이미 스파링 위에서 엎치락뒤치락하며 즐거움의 경지에 올라섰다. 그 모습을 보며 소리를 듣고 있는, 정확히는 지켜보는 엄마의 모습은 배제한 채. 엄마는 어느 틈에 "야"라고 소리 지를까 아님 신고 있던 슬리퍼로 겁을 줄까 틈을 보고 있다. 이미 엄마의 심장은 드럼 소리처럼 둥둥 거리며 활화산처럼 폭발할 것 같다.

"야"

결국. 배를 딴딴하게 힘을 주고. 숨을 들이쉬고 멈춘 채 다시 내쉬면서 소리를 내질렀다. 거실이 야. 소리로 가득 채워진다. 잠깐의 적막이 흐른다. 분명 위아랫집도 들렸으리라. 아 몰라. 이미 아이들의 소란스러운 움직임에 윗집아랫집 엄마들은 필자의 고함소리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동작을 멈춘 채 엄마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이 녀석들. 엄마 단단히 화났다.'

미간에 잔뜩 주름을 세우고는 가자미 눈같이 옆으로 째려봤다.

"그만해."

다행히 아이들은 발차기 행동을 멈췄다. 그리고 사랑이가 거실 테이블로 다가와 의자에 앉는 줄 알았는데, 지나가는 척하며 손으로 기쁨이 엉덩이를 때린다. 기쁨이는

"왜 때려"

라며 형 엉덩이에 발을 올린다. 우당탕탕. 또다시 시작.

"그만해라. 진짜."

아이들은 한껏 미소 지으며 상기된 얼굴로

"다시 붙어."

"다음에는 봐주지 않겠다."

서로 의미심장한 웃음과 결연한 목소리로 다음을 기약한다. 아, 눈치가 없는 건지 엄마 말이 귓등으로 흘러간 건지 알 수 없다.


틈만 나면, [몸싸움]

1. 방법과 순서는 중요하지 않다.
2. 아이들이 '야', '얍', '윽' 소리를 내면 다소 시끄럽다.
3. 서로 소파 위에서든 침대 위에서든 차디찬 거실 바닥에서든지 즉 어디에서든지 몸싸움을 할 수 있다.
4. 집이 아닌 드넓은 장소라면 몸싸움의 범위가 조금은 협소하다.
5. 아이들의 표정을 잘 관찰해야 한다. 웃고 있다면 '놀이'지만 얼굴이 굳어지고 눈썹이 찌푸려진다면 '싸움'으로 확장될 수 있다. 그때는 반드시 중재할 것.

*주의 : 부모의 적절한 중재와 개입이 필요하다. 물론 약간의 '무시'와 '방관'도 필요하다. 세세하게 개입하다 보면 하루 만에 흰머리가 생겨나는 기적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 몸싸움은 형 vs동생 때로는 게임 캐릭터 또는 각종 동물로 변신하여 변화한다. 참으로 각양각색의 몸싸움이다. 매번 새롭겠군. 이 몸싸움이 집에서만 해야 다행이라 여길까. 아이들은 엄마의 인내심을 테스트하듯 공공장소에서도 곧잘 몸싸움을 벌인다. 아 제발 그러지 마. 엄마의 수치심은 하늘 끝까지 치솟아 롯데타워만큼 높다.

"너희들이 이러면 엄마가 부끄러워. 사람들이 보면서 '저 아들들 엄마는 힘들겠다.' '저 엄마는 아이들을 어떻게 키웠길래.' 이렇게 말한다고. 엄마는 이렇게 키운 적이 없는데. 엄마가 부끄럽다고."

라고 구구절절한 말과 벌게진 얼굴로 눈을 매섭게 부라리며 구석에 세워둘 때면. 아들들도 벌게진 얼굴로 숨을 거칠게 내쉬며 가만히 엄마 잔소리를 듣고 있다. '부끄럽다.'에서 말이 끝날 때면, 금세 또 미안해진다. 마치 아이들이 '엄마에 의한 부끄러움'이라고 여길까 봐. 이미 그 말을 들은 아이들은 '부끄러워졌다'. 휴. 미안해. 그런 뜻은 아니었어. 사과할게.


외출할 때면 신신당부한다.

'제발 서로 건들지 마.'

'몸으로 밀치지도마.'

'발로 차지도 마.'

그러다가 결국

'서로 얘기도 하지 마.'

하지만 사랑스러운 아들들은 언제나 그렇듯 틈만 나면, [몸싸움]을 벌인다.

우리 아이들만 이런 줄 알았다. 어느 날 공항에서 겨우 시간 내에 티켓팅을 하고서 탑승구로 달려가는데, 남자아이 둘이(딱 우리 아이들만 한 나이였다.) 서로 발차기를 시전하고 있다. 표정을 보아하니 이건 분명 '놀이'다. 부모가 어디 있나 살펴보니, 부모님들은 열 발짝 앞장서서 서로 사랑스럽게 팔짱을 끼고 걸어가고 있다. 마치 신혼부부처럼. 분명 뒤에서 아이들은 저렇게 발차기를 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을 테지. 그래도 그냥 무시하고 가는 저 여유로운 발걸음. 역시 때로는 '무시'가 정답이구나. 그 모습을 보며 남편의 팔을 툭툭 쳤다.

"저 아들들 봐봐. 우리 아이들만 그러는 게 아니었어. 하. 아들들이 그렇구나."

그날뿐이랴. 이번엔 야구장이다. 게이트에서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리는데 어떤 남자아이가 쏜살같이 달려가고 있다. 뒤를 보니 '거기서'라고 외치며 달려가는 동생이 있다. 아, 둘이 '몸싸움 놀이'하는구나. 그들의 부모들은 보이지도 않는다. 어디 매점 앞에서 간단히 간식을 먹고 있을지도 모른다. 역시 때로는 '방관'이 정답이구나. (물론 남에게 피해를 주면 절대 안 된다.)

"남편, 저 아들도 열심히 도망가고 있네. 우리 아이들만 그러는 게 아니었어. 아들들이 그렇구나."

다른 아들들을 통해 알게 되었다. 틈만 나면 [몸싸움]은 자연스러운 행동이라는 것을. 속 깊은 하소연을 열창하던 필자에게 이웃의 아들 둘 엄마께서 말씀하신다.

"우리 아이들도 그래요. 왜 그러냐고 물어보면 심심해서 그렇대요. 맨날 그래요, 맨날. 다른 집도 그렇대요."





아이는 자유로울 때 자라난다.

-카린 네우슈츠




그렇게 사랑스러운 아들 둘은. 어디에서든지 몸으로 자유를 외치며 자라나고 있다.


덧. 그래서 필자는 꼭 아이들 손에 쥐어줄 책을 들고 다니거나 외출 시 도서관을 들린다. 그러면 '몸싸움'은 사라지고 아주 조용한 시간을 만끽할 수 있다. 나도 그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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