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한 회사를 떠나며

한 달 만에 쓰는 퇴사일지

by 행운동 무화과

창업했던 회사를 떠났습니다.

나와 동일시하던 팀을 나오게 되니, ‘나’라는 사람을 설명하기가 힘들어졌습니다.

내 시간과 열정을 다 바쳤던 일이기에, 일이 사라진 후의 나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퇴직한 우리네 부모님이 이런 기분이려나요.

그 분들의 몇 십 년 세월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고작 2년 반이었을 뿐인 데도 큰 허탈감이 밀려왔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팀을 떠나야겠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기에 당황스러울 것도 없었지만, 막상 끝내고 나니 제가 처음 겪어보는 상황과 감정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묘하게 비슷하다면 연애하고 헤어진 후의 감정이려나요. 그렇지만 그 역시도 적응하기 쉽지 않은 건 마찬가지니까요.)



오히려 좋아! 나 이제 내 사업할 거야!
안 쉬어도 돼! 나 에너지 넘쳐!


라고 스스로에게 외쳤지만, 공식 백수가 되기 첫 날도 전에 깨달았습니다.

육체적으로, 감정적으로 소진되어서 지금 생각보다 에너지가 없다는 사실을요.

어쩌면 제가 앞만 보고 달리느라 정신이 없어서 제 자신을 안 돌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걸요.


서프라이즈 퇴사 이야기를 해줘야지,

놀랄 모습을 생각하며 즐겁게 친구를 만나러 가면, 어느샌가 저도 모르게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습니다.

퇴사 파티 날도 그랬어요. 팀원들 다 가고 텅 빈 집에 소파에 누워 하염없이 머리가 아프도록 울었습니다.

눈물이 계속 나더라고요.

자꾸 울컥하더라고요.


그래서 조금은 쉬어가기로 했습니다.

그간의 경험이 너무나 소중하고, 난 아직 앞날이 창창하고, 해보고 싶은 것도 많기 때문에 마냥 슬플 것도 없었지만,

강제로라도 여유를 만들기로 했어요. 감정을 가라앉히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나에게 주기로 했어요.

나도 모르게 올라오는 이 감정들을 제대로 보살피고 가지 않으면,

늘 그랬듯 그냥 덮어 놓고 지나가 버리면,

언제 또다시 눈물이 터져버릴지 모르니까요. 쪽팔리잖아요.




그렇게 한 달을 보냈습니다.

아침에는 꼬박꼬박 러닝을 나갔고, 밤에는 하염없이 걸었어요. 자주 글을 끄적이고, 방 청소를 열심히 했습니다.

소중한 사람들을 만나고, 책 속에 빠져 살고, 거의 매일 혈중 알코올 농도를 일정하게 유지했습니다. 인생이 정말 축제였습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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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가 막힌 타이밍에 퇴사를 해서, 매일 날씨의 축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외국 여행 같은 건 생각도 안 날 정도로 날씨가 너무 좋았어요.

우리나라 5월 날씨가 이렇게나 좋았다니, 이걸 모르고 이십 몇 년을 살아왔다니, 충격이었습니다.


그렇게 한 달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글을 쓸 힘이 생겼습니다.


얼렁뚱땅 시간이 흘렀지만, 그렇게 하루를 보내보는 것도 나쁘진 않았습니다.

이젠 몸이 근질거리고 뭘 좀 직접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니까요. 서서히 엔진을 가열하는 단계려나요?

그리고 앞으로의 길은 꾸준히 기록해 나가려고 합니다. 저의 작은 발자취들이 모여 더 큰 한 걸음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번 창업의 스토리는 여기에서 끝났지만, 제 삶의 또 다른 막이 열리는 순간이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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