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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들로 May 08. 2018

아름다운 작별, 그리고 다시 살기
<디센던트>

혼영일년 5月 : 혼자서 알게 된 가족 2

2014년 벚꽃이 피던 날, 엄마는 잠들어 있었다. 호스피스 병실 침대에서 엄마는 모르핀 기운에 취해 늘 침묵이었다. 그토록 예뻐하던 벚꽃이 병원 앞마당에 환하게 피어 있는데 늘 잠이었다.  


일어나 봐요. 엄마 좋아하는 벚꽃이 저렇게 흐드러지게 폈어요. 

곧 질 것 같은데 그전에 봐야 되는데. 잠깐이면 될 것 같은데...  


나의 목소리에 잠이 깬 엄마는 희미한 미소로 마지막 말을 했다. "미안하다." 

뭐가 그리 미안했을까. 없는 집안에 시집와서 알뜰한 살림으로 집 장만했고, 자식들 대학교 졸업까지 뒷바라지했던 엄마는 뭐가 그리 미안했을까. 벚꽃을 못 봐서였을까.  


엄마는 그 날 이후 더 이상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잠든 엄마를 보며 나는 서서히 마음의 준비를 해야만 했다. 깨어나지 못할 엄마를 위해서, 엄마를 떠나보낼 이들을 위해서.  


사랑하는 가족이 혼수상태에 빠진다면...

2012년 개봉한 <디센던트>는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야만 했던 세 가족의 이야기다. 가족과 소원하던 맷(조지 클루니)은 요트 사고를 당한 부인이 세상을 떠날 상황이 되자 비로소 가족에게 돌아온다. 그런데 부인을 정성껏 간호하던 맷에게 딸이 충격적인 소식을 들려준다. 바로 엄마가 바람피우고 있었다는 것.

그런데 뜻밖에도 맷은 바람핀 남자를 찾아 나서기로 결심한다. 아내를 사랑했던 모두에게 아내와 작별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 



아내와 작별(作別)을 준비하는 조지 클루니  

조지 클루니는 평소 서먹했던 두 딸과 함께 아내의 불륜남을 찾아 떠난다. 두 딸들은 욕을 입에 달고 사는 10대 망아지들이지만 동행 과정에서 서서히 서로를 이해한다. 누가 말해주지도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그들은 가족을 느끼고 의지한다. 큰 이별을 견디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가족이니까. 결국 맷 덕분에 모인 가족과 이웃, 심지어 불륜남의 아내까지도 맷의 아내와 작별할 시간을 갖는다. 그렇게 맷의 아내는 떠난다.  

  

맷은 이별 아닌 작별을 택한다. 이별(離別)은 서로를 애써 떼어놓지만, 작별(作別)은 서로의 인정 속에서 헤어짐을 받아들인다. 이별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우리는 비로소 작별할 수 있다. 부인을 황망히 보내지 않고 모두와 작별할 수 있는 기회를 준 맷의 의연한 모습이 내 뇌리에 깊숙이 박혔었다. 물론 영화를 볼 때는 남의 얘기일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2년 후, 나는 맷처럼 사랑하는 이와 작별할 시간을 준비했다.  


잠든 엄마 곁에 친척과 친구들 모두 모였다. 모두들 엄마의 머리맡에 몸을 뉘었다. 누구는 사랑한다고 했고, 누군가는 기도했고, 누군가는 옛 추억을 읊조렸다. 엄마 곁에 모인 그들의 얼굴은 슬펐지만, 뒤돌아 선 그들의 발걸음은 이별의 인장을 못내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늘 암덩어리와의 사투로 힘겨워했던 엄마의 얼굴에 모처럼 온기가 느껴졌던 것은 내 착각이었을까. 늘 침묵했던 엄마의 얼굴이 그때는 평화로워 보였다.  


어쩌면 이별은 떠날 자보다 살아갈 자를 위해 필요하지도 모른다. 이별은 혼자 감당할 짐이 아니라 모두가 나눠져야 할 의식이다. 그렇게 이별을 나눈 가족은 더 단단해지리라 믿는다.  


내 가족은 아직 단단해지는 중이다.   



#. 이별은 홀로 짊어지는 것이 아니라 같이 준비하는 것이다.  





[명대사]

A family seems exactly like an archipelago. All part of the same whole but still separate and alone and always drifting slowly apart.  

가족은 군도와 같다. 하나의 섬을 이루지만 각자 분리된 존재들이다. 그리고 서서히 멀어져 간다.

- <디센던트> 中에서 - 

  

가족은 공동체이지만, 결국 개인이 모여 만든 집합이다. 평생 함께 할 줄 알았던 누군가를 언젠가 떠나보내야만 하는 시간이 온다. 슬프지만 영원불변한 이 진리를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 아름다운 이별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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