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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라이프 Sep 12. 2020

종말을 품은 하늘빛

오렌지 빛, 공포를 느꼈다.

    몇 년을 캘리포니아에서 지내다가 귀국한 지인들의 대부분은 캘리포니아의 하늘빛에 대한 그리움을 한동안 토로한다.  그 코발트 빛 하늘이 카톡 프로필 사진 자리를 꽤 오랫동안 차지하는 것을 보면 말 뿐인 얘기는 아닌 것 같다.  내가 Bay Area에  이사 오고 난 후, 늘 들던 생각이 그랬으니까. 마치 초등학교 내내 한국의 아름다움을 강조하던 선생님의 말씀에는 푸른 하늘, 뚜렷한 4계절과 같은 대목이 항상 들어 있었는데, 사실 캘리포니아의 하늘을 보고 나선 어릴 적 크게 기만당한 느낌까지 들었다. 


  그런데, 그저께 하늘빛은 충격 그 자체였다. 

이른 아침 시험을 보러 Oakland에 가느라 일찍 나가보니, 밖에 주차해 놓았던 차에 재가 하얗게 쌓여 있었다. 유리에 쌓인 재를 닦으니 연신 검은 물이 나왔다. 라이트를 켜야 하는 이른 새벽이라 하늘을 볼 여유도 없었다. 그러나, 막상 시험이 끝나고 점심시간이 거의 돼서 나왔는데, 말 그대로 오렌지색 하늘이었다. 눈을 비비고 시간을 확인했다. 대낮이었는데 흡사 저녁 노을빛 같은 오렌지색이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뿌연 연기 속에 답답함이 먼지처럼 떠다녔다. 광원인 태양은 아예 볼 수도 없었고, 여기저기 산불로 몸살을 치르는 중이라 근처에 불이 난 게 아닌가 걱정이 되었다. 차를 몰고 집으로 오는 내내 낮게 드리운 하늘이 주는 공포, 차들의 차분한 행렬에서 나는 두려움을, 공포를 느낄 수 있었다. 전보다 진지했고 조심스러웠다.

    다음날 아침에도 이른 아침 기분 좋은 기상을 선물해 주는 새들의 노래가 이상한 동물의 절규처럼 들려왔다. 목이 아파서인지, 노래가 아닌 절규인지는 확실히 모르겠지만 지극히 이례적인 일임은 분명했다. 나를 바라보느라 주변을 돌아보지 못했는데,  우리 동네 커뮤니티인 Nextdoor에는 작은 기도가 포스팅되었다. 화재 전선에 계신 분들, 우리 이웃들의 안전과 평화뿐만 아니라 우리의 이웃들, 동물, 나무들, 풀들, 꽃들에게 까지 따뜻한 기도와 위로를 잊지 않았다. 나의 답답함이 대놓고 불평할 것도 못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몇 시간 거리에 떨어져 있는데 이 정도니 화재현장의 사람들은 진화된 이후에도 얼마나 위협적인 상황일까라는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며칠 49도를 오르내리던 폭염에서 해방은 되었지만 집 밖을 나갈 수도 없고 밖에선 호흡도 편치 않았고 떨어진 온도에 스웨터를 꺼내 입어야 했다. 파란 하늘과 쨍쨍 내리쬐는 태양을 이고 살던 며칠 전의 일상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이제야 절감하게 되었다. 


이 지역에 지진은 둘째 치고라도 요즘 산불로, 코로나 바이러스로 몸살을 하고 있는 이런 상황이어서인지, 종말론이 비등해지는 건 사실이다. 기상이변으로 예기치 못한 자연재해를 겪으면서 서서히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우리의 과학기술이 넘어서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다.  성 정체성의 혼란을 가져온 메카가 바로 이 지역이고 최첨단 과학기술의 첨병, 온갖 물질주의로 회복 불가능한 빈부격차를 불러온 곳도 바로 이곳이다.  창조주의 분노와 징계를 받아야 할 현대판 소돔이 있다면, 이 지역이 가장 유력하지 않나라는 생각도 해 본다.

오렌지색 필터를 끼고 바라본 듯한 하늘은 이처럼 많은 생각을 내게 가져다주었다. 돌아보게 했고 우리의 삶 속에서 놓친 부분이 무엇인지 잠시 생각하게 하고 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런 불안함과 두려움들이 외적으로는 잠잠하게 하고 있지만, 어쩌면 우리의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요동치게 하고 있다. 무엇을 어찌해야 몰라 허둥대듯이.

  그러나, 모두가 동의하듯이 이제는 발전과 혁신이라는 명목으로 밀어붙인 속도를 멈추고 잠시 생각해야 한다. 네로 황제보다도 더 부유해진 일부 기업가의 자산증식이 불과 10년 이내에 이루어졌다면 기하급수적 증가보다 더 빠른 속도로 커져가는 빈부격차의 완충을 위한 대책이 가능하긴 한 것인지에 대해서, 그리고 착취된 자연을 되돌려 놓을 방법이 있기는 한 건지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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