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이라이프 Jan 13. 2021

엄마를 보내다

남의 일 같았던 코로나 바이러스, 내 삶을 흔들었다

숨이 막힐 정도로 울다가 깨어나곤 한다.

엄마를 잃은 슬픔은 간헐적으로 지진 같은 큰 충격으로 몰려오고 있다.  

"엄마, 이렇게 보낼 수 없어. 나는 아직 준비가 안되어 있다고. 엄마. 가지 마. 엄마." 

손목이 떨어져 나가도록 엄마 손을 놓치기 싫어 한참을 울다가 잠에서 깨어나면 그때 다시 엄마의 부재를 느끼고 한 참을 목놓아 울어 본다.

물론 환한 미소로 아름답게 천국으로 가시는 모습을 꿈꾸었어도 순간순간 이 생에서의 이별은 견디기 힘든 아픔이다.


매일매일 통계 집계의 숫자로만 느껴지던 코로나바이러스가 가장 소중한 내 엄마의 일이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영정사진도 당신이 곱게 준비하신 수의도 그 어느 것 하나 필요 없었던, 돌아가신 분의 예의나 존엄이 실종된 어처구니없는 졸속 의식들만 남아 있었다.

그냥 병균 덩어리의 전파를 염려한 나머지 병실에서 승화원으로 밀봉 직행되고 그것도 화장절차에 참여한 업체에 전파방지 지원금까지 줄 정도의 위험한 일로 분류된 채, 그렇게 허무하게 떠나셨다.

극소수의 제한된 사람들 만이 봉안을 위해 추모공원에 갈 정도로 온갖 규제와 금지로 가득한 상황이었다.


엄마가 음압병실에 계시는 동안 나는 인천공항에 들어오자마자, 방역과 청소가 끝난 엄마의 방을 2주간의 격리 장소로 정했다. 

엄마의 삶을 깊이 묵상할 수 있는, 엄마의 삶의 구석구석에 묻힌 엄마의 체취를 자세히 느껴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그동안 엄마의 마음과 생각을 귀 기울여 보려는 노력이 얼마나 부족했는지 자책이 밀려왔다.

엄마, 오늘은 뭐 드셨어요? 미주알고주알 엄마의 목소리를 실어 나르던 빨간색 070 전화기만이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아는 듯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요즘 들어선 일상의 대화 끝머리에 나의 마음을 몇 마디라도 담아 보내곤 했다는 사실이다.

"엄마가 내 엄마여서 정말 감사해. 엄마.

그리고, 엄마 너무 고마워. 이렇게 잘 키워 준 것 말야.

 엄마, 그리구 정말 많이 사랑해."


엄마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느낀 건 오로지 하나님만을 바라보신 삶을 사셨구나라는 사실이다.

낡아서 표지가 벗겨진 성경책을 비롯해 그 이후 점점 더 큰 글자의 성경으로, 더 가벼워지는 성경으로 바꿔드리면서 늘어난 성경책들.


엄마의 아침묵상 시간을 함께 하던 작은 책상에는 성경책, 묵상집, 십자가 목걸이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이른 새벽 온 아파트의 불이 꺼진 가운데 주님과의 긴밀한 대화처럼 아침 묵상 시간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는 엄마의 표현 그대로였다. 하루 30장씩의 말씀을 읽으시며 교제하신 엄마의 성경책엔 통독 횟수가 십여 번에 달할 정도의 표시가 있었다.

통독 횟수가 표시된 엄마의 성경책

    이 작은 성경책상 정면에는 성구 액자가, 뒷면엔 겟세마네 동산에 오르시는 예수님의 성화가, 왼쪽 벽에는 골고다 언덕을 오르시는 예수님의 그림이, 베란다 유리창 쪽엔 시편 23편 말씀의 서예작품이 놓여 있었다.

하나님의 숨결 속에서 호흡하시던 엄마,

구도자의 삶을 사신 엄마의 모습이, 엄마 방의 짜임새가 이제야 완벽하게 눈에 들어왔다.

늘 와서도 엄마 얼굴만 들여다보느라, 방을 자세히 살피지 못했다.

밤에는 엄마방에 누워 있으니 베란다 유리창 가득 별이 쏟아졌다.

손에 잡힐 듯 별이 가득한 밤하늘을 보시면서 천국 소망을 가지셨을 엄마를 떠올렸다.


 성경책 가방 속 예쁜 도토리들이 엄마가 세상을 얼마나 소중히 대했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아이들에게도 세상에서 제일 멋지다며 늘 누구에게나 사랑과 덕담으로 행복하게 하셨던 그 아름다운 인품을 주변 사람들은 오래도록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하나님께 세상에서 최고의 엄마를 선물 받은 것에 대해 늘 감사한다. 그래서, 삶의 크고 작은 고비마다 넉넉히 견뎌낼 수 있는 사랑의 자양분을 엄마를 통해 공급받게 하신 것 같다. 


엄마는 늘 기다려주시고 경청하고 기도만 하셨다.

아무리 힘든 얘기로 엄마를 요동치려고 하는 경우에도 비교적 차분할 수 있는 

엄마의 담대함의 근원을 이제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온전한 믿음이 그것이다.

어떤 일에도 나에 대한 세상적 욕심을 가지시고 채근한다든가 강요하지 않으셨다.

실수하거나 넘어져도 항상 위로하고 괜찮다고 격려하시던 엄마,

늘 들어주시던 엄마, 하지만 가끔 가족끼리 드리는 예배에서 엄마의 기도는 너무도 빛났다.

그 어느 누구보다도 자연스럽게 진솔하고 아름다운 기도를 해 주시던 엄마를 잊을 수가 없다.


딸의 수다를, 딸의 철없는 고민을, 불평들과 고해성사를 다 받아 들어주던 엄마,

엄마의 6.25 회고록을 읽고 너무 부끄러워졌다. 

역사의 굴곡을 오롯이 견뎌내며 이렇게 아프게 살아오신 엄마의 삶 앞에서 

나의 철없는 행동은 테러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내 엄마지만 너무나 훌륭한 인품에 가끔 내가 부끄러워지곤 한다.

엄마는 어느 누구 하나 험담을 하거나 비난하지도,

자랑하지도 않은 그런 삶을, 

아프고 어려운 사람을 손수 보듬고 챙기시는,

성경말씀이 체화된 삶을 사셨구나 라는 깨달음은 

성경책마다 예쁘게 줄을 그어 놓은, 당신이 사랑하셨던 문구들을 살펴본 순간 갖게 되었다.  


나에게 사랑으로 가득한 세상을 경험하게 해 주셨고,

삶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셨던 엄마, 모든 사람들이 천사라고 입을 모아 얘기하는 친척, 지인 분들에게 아름다운 이별과 훈훈한 여운을 남기며 작별하셨어야 할 것 같은 엄마와의 준비 없는 이별은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그렇게도 사랑으로 품으셨던 우리 가족들과의 제대로 된 인사도 없이 이렇게 보내기 싫으셨을 분이라는 건 너무나도 분명하다.

하지만, 이 생에서의 삶이 얼마나 무의미한 건지를 강조하신 삶의 기도는 늘 욕심 없으신 삶에서도 나타났지만, 엄마가 가장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시는 성경구절에서도 나타난다.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베드로전서 1장 24~25절      



    엄마를 모시던 오빠와 올케언니도 각기 다른 지역 병원에 분산 수용되고 오로지 남편과 조카들만이 뒷일을 봐줄 수 있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그 과정에서 정성을 다해 예를 갖추고 온갖 절차를 혼자 진행하는 남편에 대한 고마움이 느껴졌다. 엄마 살아생전에는 붙임성 있는 대화 제대로 해 본 적 없고, 용돈도 매 번 생색내지 않고 살짝 숨겨놓고 오는 남편이지만, 떠나실 때 이렇게 마음을 다 하는 모습에서 진실성과 사랑이 느껴졌다.

죽음이라는 통과의례를 거치시고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으로 천국에서의 삶을 시작하신 엄마께,


'엄마, 반짝이는 드레스를 입고 예쁘게 천국 가신 엄마,

그곳에서는 예비되어 있는 황금 면류관과 이 생에서의 축적한 공로를 크게 인정받고 환영받으실 모습이 기대가 돼요. 이 생에서 펼쳐보지 못하신 엄마의 꿈과 엄마만의 이기적인 삶을

천국에서는 맘껏 펼쳐보셨으면 좋겠어요. 이 생에서의 희생과 헌신은 충분을 너머 과분할 정도이셨으니까요.

그리고, 엄마. 사랑해요.

천국에서 꼭 지켜봐 주세요. 엄마가 그곳에서라도 행복해하시도록 더 열심히 더 아름답게 

세상을 사랑하며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아갈게요. 

엄마처럼요'





작가의 이전글 종말을 품은 하늘빛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