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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작가 Nov 26. 2015

#35 이겨내기(2/2)

언제나 위기, 언제나 기회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군생활이 끝났다. 자유의 몸이 된 나는 새가 되어 자유롭게 날기만을 희망했다. 하지만 사회는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었다. 나는 마치 초기화된 컴퓨터처럼 아무 응용프로그램도 없었다. 모든 것을 하나씩 다시 시작해야 했다. 학교의 학사 관련 행정 업무, 학교 친구들과의 관계, 아르바이트 등 모든 것이 도전이고, 좌절의 연속이었다.


2년간 울타리에 갇혀 있던 사자가 우리 밖을 나오니 자유의 목마름에 다시 예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일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2년간 나도 모르게 우리 집 경제사정은 피사의 사탑처럼 조금씩 기울었고, 그 결과 방 3개짜리 주택에서 반지하로 이사한 상태였다.


나는 다시 현실을 피하기 위해 학교 근처에 자취방을 잡고, 사회에 대한 불만과 우주를 논하며 허송세월을 보낸다. 전역을 하며 같이 가지고 나온 용기와 패기는  온데간데없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것이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사람은 끊임없이 노력해야 함을 알게 되었다. 어떤 한 번의 큰 깨달음으로 인생 전체가 바뀌는 일은 없다. 그저 묵묵히 그 깨달음에 맞는 실천을 이어나가는 것이 삶에 지침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전역 2년 후에 나는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가게 되었다.  27살의 나용민은 위기 속에 있었다. 대학교 4학년 졸업반이었지만 취직하기 위한 스펙이라 불리는 것 하나 제대로 갖춘 것 없었고,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을 계속할 때였다. 주변 사람들은  하나둘씩 취업하고, 조바심은 커졌지만 나는 나의 인생을 산다는 생각 아래 호주행을 선택한 것이다.


호주로 떠난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전쟁이라 불리는 취업전쟁에서 살짝 빠져나왔을 뿐 호주에서의 모든 것도 도전이었고, 좌절의 연속이었다. 처음 두 달은 가져온 돈 150만 원을 거의 다 써가며 농장을 전전했다.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채 고생하다가 극적으로 지인이 소개하여준 소공장에 들어갔고, 그 곳에서 1년간 일하면서 경제적 안정을 찾았다.


말이 1년의 시간이지 매일이 포기하고 싶은 날이었다. 하루에 12시간씩 일하면서 돈은 많이 벌지만 내 생활이 없어진다. 초심과 다르게 벌어놓은 돈은 있으니 점점 일은 나가기 싫어지고, 몸은 힘들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한국에 있는 동기들처럼 취직했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었다. 소공장에서 소고기 포장을 하는 일이었지만 정식으로 취직해서 일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모든 상황은 똑같았으나 생각을 바꾸니 하나씩 다르게 보였다.


나는 어느 순간 일에 몰입하고 있었다. 내 일이라 생각하니 일이 더 이상 일이 아니었다. 우리 파트의 주인인 것처럼 열심히 일했다. 그러니 어느새 슈퍼바이저라 불리는 매니저들도 인정해주고, 같이 일하는 동료 직원들도 하나, 둘씩 나를 인정해주었다. 내가 생각을 바꾸기 전의 일터에서의 나는 그저 돈을 벌러 온 외국인 노동자였다. 그런 나에게 그들이 좋은 감정으로 선의로 날 대할 이유도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겨내려는 나의 노력으로 태도를 바꾸니 사람들과의 관계도 좋아지고, 일도 재밌어졌다.

     

문제에 부딪혔을 때 우리는 그 문제에 욕하고, 피할 것이 아니라 그 문제를 천천히 잘 들여다봐야 한다. 이때 편견이라는 색안경을 쓰고 있다면 문제는 제대로 보이지 않을 것이다. 문제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지 못하고서 문제를 대하면 그 문제를 절대  해결할 수 없다.


천천히 살펴본 문제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보고 나면 그 문제, 문제를 이루고 있는 상황을 바꾸기 보다는 나를 우선 돌아봐야 한다. 나를 되돌아보고 나에겐 문제가 없는지, 나는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고나서 주변 환경을 돌아봐도 늦지 않는다.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환경 탓만 하는 것은 변명쟁이에 지나지 않는다.


어떤 일에 목표가 생겨 꾸준히 걷다 보면 만나게 되는 문제의 벽. 어떤 이들은 이것을 슬럼프라고도 부르고, 어떤 이들은 권태라고도 부른다. 그 어떤 것이든 좋다. 본질은 그것을 제대로 볼 줄 아는 안목을 기르는 것과 그것을 이겨내려 할 때 주변 상황보다는 자신을 돌아보라는 것이다.


‘어두울 때는 선글라스를 벗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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