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lf Dec 19. 2021

노을 진 솔잎

병영문학상 응모작 1

    "잠시 후 국기가 강하되겠습니다. 실외에 계신 분은 국기에 대한 예로…."     


    오후 6시. 오늘도 어김없이 국기가 내려온다. 늘 그렇듯 비슷한 자리에 멈춰서서 '조금 더 밟을걸' 후회한다. 그래도, 후임의 자전거를 망가트리고 잔소리를 듣는 것보다 멈춰 서 있는 편이 백방 낫다. 워낙 넓은 비행단에서는 자전거만큼 병사에게 소중한 교통수단이 없는데, 근래 타이어들이 하나씩 구멍 나는 바람에 자전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억울하다. 자기들이 17시 반에 퇴근한다고 18시에 방송을 트는 것이 분명하다. 그래도 룰은 룰이니깐, 투덜거리는 입을 집어넣으며 자전거에서 내린다.      


    말썽은 늘 애프터 근무 때 일어난다. 기상관측병은 교대 근무로 모닝, 애프터, 스윙, 미드 총 4타임을 돌면서 일한다. 문제는 12:30부터 18:00인 애프터 근무가 18:30까지인 석식 시간과 부딪힌다는 것이다. 타 근무자는 일과시간 중에 식사 시간이 보장되어있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았다. "관측자는 근무 중에 자리를 비울 수 없다."라고 [관측업무 지침서]에 명시되어 있는 까닭에 우리는 근무 시간이 끝나야만 밥을 먹으러 갈 수 있었다. 다행히, 병사 식당이 도보 10분 거리에 있어서 못 먹는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기상대에 살았을 때만 하더라도, 오늘처럼 열이 잔뜩 오른 아스팔트 위에 서서 국가를 듣는 일은 없었다. 현재와 달리 처음 전입 왔었을 때는 기상대 건물 2층에 따로 기상대 병사들이 거주하는 생활관이 있었다. 관측병들은 17:55에 퇴근해서, 방송이 끝날 때까지 아래층 생활관에서 기다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규정과 맞지 않는다는 감찰실의 지적에 우린 올해 초 통합 생활관으로 이동했다. 이사는 일장일단의 선택이었지만, 전과 달리 퇴근 후 떠버린 8분은 단점에 포함됐었다. 빨리 복귀해서 식사든 휴식이든 취하고 싶어도 국기 강하 방송에 그럴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가자니 방송이 중간에 발목이 걸리고, 안에서 기다리기엔 시간이 아까운, 그런 진퇴양난의 상황이었다. 가끔은 일찍 도착할 것이란 헛된 유혹에 넘어가 오늘처럼 도로 한가운데서 방송을 마주하곤 했다.     


    예전을 그리워하는 '라테 파티'가 머릿속에서 한창일 때 스피커가 호른 소리를 내며 '정지의 3분'을 알린다. 앞으로 있을 3분 동안, 전 장병은 가던 길을 멈추고 국기 내지는 스피커를 바라봐야 한다. 이 시간이 찾아올 때면 나는 세상이 멈춘 것만 같다는 인상을 받는다. 부대를 가득 채우던 정비 음이나 대화 소리는 온데간데없고, 말하거나 움직이는 이 역시 하나 없는 썰렁함은 겪을 때마다 낯설다. 전쟁을 위한 국가기관이지만 이 3분만큼은 한반도에서 가장 고요하고 평화로운 장소라니. 꽤나 근사한 모순 아닌가.

    물론, 방송에도 전혀 개의치 않는 사람들이 건물마다 있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심지어는 밖에서도 방송 정도는 쿨하게 무시하며 갈 길 가는 사람들도 봤었다. 작년 이맘때였나. 어김없이 방송에 멈춰 불평하던 나를 재끼곤 두 개의 자전거가 휙 지나갔다. 처음엔 벙쪘다. 처음 보는 광경에 '막 나가네?'라는 말이 절로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이내 혼자만 룰을 지키는 바보가 되어버렸단 생각에 짜증이 훅 솟구쳤다. '나만 당할 순 없지'란 오기에 자전거를 끌고 멀어지는 그들을 뒤따라갔다. 하지만 애석히도 난 그리 간이 큰 사람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자 발걸음은 탄력을 잃고 이내 멈춰버렸다. 꼼짝 안 하고 국가를 듣는 것만이 내 성미에 맞는 일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데까지는 몇 번의 시행착오가 필요했다.      


    "그깟 3분이 얼마나 길다고 매일같이 낭비해도 내 삶은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 머릿속으로는 분명히 인정하는 사실이었지만 자의가 아닌 타의로, 그것도 하필 소중한 휴식 시간을 3분이나 뺏어간다는 건 곱씹을수록 못마땅했다. 누군가는 이 시간에도 편히 생활관에서 쉬고 있을 텐데, 기상관측병인 나만 이 땡볕에 서 있으라니. 그렇다 하더라도 달리 방도가 없다. 어찌하겠는가. 받아들일 수밖에.     


    마침 나보다 딱한 것이 눈앞에 있다. '저 소나무는 운이 지지리도 없지. 하필 여기에 뿌리를 내려서 매일같이 저 국가를 듣냐.' 만날 같은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연민은 엉뚱한 각도로 튀었다. 지금 방송이 성가신 이유가 오히려 가끔 듣기 때문이 아닐까. 당연히 소나무엔 청각 기관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만에 하나라도 방송이 식물 성장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지 않은가. 다른 노래도 아니고 조선의 얼이 담긴 애국가니깐 말이다. 실없고 유치한 생각이었지만 원래 그런 것들이 더 재밌고 흥미로운 법이다. 달리 할 것도 없는 거, 남은 3분 동안 두 시선을 모두 소나무에 두어 관찰하기로 마음먹는다. 소나무를 봐서였을까, 아니면 애국가를 들어서였을까. 한 소절이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저렇게 비틀어져 있는데 철갑이라 부르는 걸까. 지조와 절개의 소나무답지 않게 껍질은 생각 외로 말라 있었다. 최근 비 소식 없던 장기간의 무더위가 껍질을 더 어그러트렸나 보다. 내가 목이 말라서 그런지, 안쓰럽게 갈라진 목피(木皮)는 내게 물을 달라고 이야기하는 듯했다. 나무껍질뿐만이 아니었다. 소나무는 어딘가 모르게 애처로워 보였다. 다른 나무처럼 곧게 뻗지도 못한 채 중간에 크게 휘어져 있었으며 잔가지도 그리 많지 않았다. 열매라기엔 너무도 투박한 솔방울이었고 주위 나무들이 여름철을 맞아 제마다 무성히 달아놓은 수엽(樹葉)과 대비된 탓에 솔잎은 더욱 볼품없어 보였다.     


    소나무를 이렇게 오래 봤던 적이 있으려나. 눈은 소나무를 떠나지 못했고, 어느 순간부터는 시선이 닿는 곳마다 소나무는 어색한 존재로 변모하고 있었다. 생소하고, 생경한 이미지들이 시선을 틈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빠져나온 형상들은 세상이 멈췄다는 착각과 화학작용을 일으키며 영감으로 바뀌었다.


    한결같다는 것은 저리 미련한 것이다. 사고는 영감 속에서 멋대로 번지며 이제는 사색의 단계로 접어들었다. 초라하게 비틀어진 껍질도, 녹말 이쑤시개만 같은 솔잎도 모두 사시사철 푸르기 위해 소나무가 포기한 것들이었다. 변함없는 청록은 소나무에게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예로부터 소나무는 지조의 상징이었다. 푸른 빛을 잃지 않는 소나무는 어떤 시련에도 제 뜻을 굽히지 않는 것처럼 보였으니깐 말이다.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정체성을 잃지 않는다는 것이 나무의 모든 외형을 버리면서까지 사수할 가치 있는 것일까. 순간, 옛 문인이나 된 것마냥 무게를 잡는 것 같아 스스로가 오글거렸지만, 한번 걸린 시동에 이 정도의 사유론 멈출 수 없었다.


    어쩌면 소나무는 두려웠을지도 모른다. 지금 손에 가진 잎이 떨어지면, 다시는 잎을 못 틔우지 않을까, 그리고 그건 결국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또는 앙상한 나무들은 애써 무시하며, 계속 잎을 붙들고 있는 것만이 진정으로 자신을 지키는 일이라 암시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뭐가 되었든 집념은 성공했고 그에겐 뒤틀린 껍질과 초라한 잎만이 남았다.


    사색의 시선이 소나무를 돌아 나로 향했다. 나에게 솔잎은 자기계발이었다. 다른 병사는 몰라도 나만큼은 휴식, 연등, 심지어 일과시간에도 솔잎을 놓아선 안 된다고 믿었다. 하지만 내게 너무 무거운 솔잎이었나보다. 갖가지 이유로 기상 시각은 점점 느려졌고, 책과 노트엔 먼지가 계속 쌓였다. 대부분 이유는 익숙지 못했던 군 생활에서 기인했다. 을(乙)로 마주한 첫 사회는 업무를 익히고 사람을 배우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회고하자면 그게 최선이었다. 해내지 못했다는 자책을 더 이상의 솔잎은 떨구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온전히 잇곤 했으니 말이다. 그래도 최선이 능사는 아니었다. 여유를 잃어버린 시도가 실패로 이어지는 것은 뻔한 일이었다. 높은 도약은 언제나 그렇듯 정확한 도움닫기에서만 나오기 때문이다.      


    병장이 되고 전역이 100일이 남았을 때가 돼서야 나는 한결같아야 한다는 강박을 벗을 수 있었다. 어찌 보면 용기가 생긴 것이다. 소나무와 달리 단풍나무는 겨울을 나기 전 자신의 잎을 떨어트린다. 시련의 메타포인 겨울이지만, 어째 단풍나무는 겨울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되려, 단풍나무는 적갈색의 축제로 도로를 단풍잎으로 수놓으며 다가오는 시련을 반갑게 맞아들인다. 가을이 지나고 찾아온 추위에 단풍나무 역시 여지없이 움츠리지만 어디선가 단풍의 미소가 느껴진다. 단풍은 알고 있는 것이다. 결국, 시계는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다시 봄은 오고, 다시 새잎은 피어난다. 단풍나무는 겨울 때문에 잎을 잃었다거나 자신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다. 그저 잠시, 잎을 내려놓았을 뿐이다.     


    생각에 젖을 때쯤, 미국 국가마저 끝났다. 도로 위 자동차들이 다시 엔진 소리를 내며 움직이고, 정비 음도 다시 들리기 시작한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세상은 돌아가기 시작했고, 나도 다시 자전거에 올랐다. 자전거 바퀴가 구를수록 내가 머물다 갔다는 사실은 점차 희미해져 갔다. 그저 불굴의 단풍나무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작가의 이전글 흔하디 흔한 글풀이 - 병영문학상(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