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일
젠장, 일기 쓰기 습관을 기르겠다 어제 다짐했는데 벌써 귀찮다고? 너도 대단하다. 후딱 써버려 30분 만에.
9월 1일 개강. 이제 학부에 다닌 지 벌써 6학기가 됐고, 제법 과목들에서 전문적인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다른 친구의 말에 따르면 타 단과대 OT는 강의계획서를 한번 읽어주고 끝난 대지만, 물리학과는 어림도 없다. 교수님들은 첫 수업을 대게 수업에 필요한 기본적인 수학을 가르쳐주거나, 아니면 듣는 과목의 과학사적 맥락을 설명해주신다. 물리학과에 재학하면서 아무 교수나 수업할 수 있는 수업은 이미 다 들었다. 말하자면 역학, 전자기학 같은 과목 말이다. 가장 기초 학문들은 자신의 전공에 무관히 교수님들이 쉬이 설명하실 수 있다. 하지만 핵물리학, 일반 상대론처럼 제법 머리가 큰 과목들은 자신의 연구분야가 아니면 수업하기 부담스럽다. 교수가 돼보진 않았지만, 수업하시는 교수님의 연구는 대게 가르치는 과목에 뿌리를 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그런지 고학년 과목일수록 수업에는 수십 년을 통해 길러온 직관과 잠깐 엿보이는 교수님의 젊은 열정이 느껴진다.
우리나라 과학 교육의 문제 중 하나는 중요한 과학 지식을 너무 맥락 없이 배울 수 없는 환경이라는 것이다. 선생에게 교수의 혜안을 바라는 것은 문제이지만, 과외를 하다가도 열불이 뻗힐 때가 많다. 맥락은 과학사에 놓여있고, 더 구체적으로는 당대 과학자들의 치열한 고민과 수준 높은 담론에서 기인한다. 지식은 중요하지만, 암기할 필요는 없다. 인터넷에 세상이 담겨있는데 왜 이상기체 방정식을 알아야 한단 말인가? 오늘 '열과 통계물리' 때 나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줄의 일당량', '카르노 기관', '깁스의 자유에너지', '캘빈(절대온도 단위)' 등 어디서 본 듯한 이름들이 한 지붕 아래 있다는 사실은 교육과정이 얼마나 압축적인지 깨닫게 하였다. 교육부와 과학부(이런 말은 없겠지만)가 어디까지 가르쳐야 하나 투닥거리다가 "그래, 내가 졌어. 아주 얕게 배워도 괜찮으니 제발 우리 아이들이 깁스라는 이름을 들어보게 해 줘."라고 애원하는 과학부가 생각났다. 압력, 부피를 왜 물리에서 배워야 하는지, 통계물리가 어째서 매력적인 학문인지 오늘 교수님의 직관을 들으면서 내가 여태 얼마나 게을리 학습했는지 깨달았다. 압축의 피해자, 내지는 가해자였다. 당시에는 아마 그것이 최선이었을 것이다. 고등학생이 뭘 알겠는가. 그럼에도 비판적인 사고가 아닌 납득과 암기의 영역으로 접근한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말하자면 너무 쉽게 배웠달까. 19년도 콜로퀴움 때 다른 교수님이 한 말씀이 기억나는 밤이다. "모르죠. 지금은 잘 이해할 수도 없는 초끈이론이 20년 뒤에는 고등학생 교과서에 있을 수도 있죠."
다른 이야기. 일기가 너무 내가 했던 생각/말 중심으로 전개되는 것이 고민이다.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을 기억하고 싶어 쓰게 된 일기인데, 막상 집에 돌아오는 길에 되돌아보면 언제나 장면 주인공은 고정되어 있다. 어떻게 하면 남의 말을 더 잘 기억할 수 있을까. 애인 사이나 친구 사이 대화를 기억하려 하는 노력이 본질을 가릴까 봐 더 적극적인 노력을 못하기도 한다. 뭐 쓰다 보면 기억력이 좋아지길 바라며, 굿나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