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사랑이라는 우주의 붕괴

가장 강력한 사랑이 나를 무너뜨린 순간

by 달 Moon


정말이지 일어나지 않았으면 내 인생이 바뀌었을 두 순간이 있었다. 가장 강력했던 사랑이어선지 그 순간들을 잠시 떠올리기만 해도, 상처가 가까스로 아문 부위를 다시 할퀴어 생채기를 내는 듯한 기억이어서 도무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순간이었다. 그 이후 사랑을 시작할 때 느끼는 설렘은 곧 거대한 두려움과 같았고, 막상 어렵게 사랑을 시작하고 나서도 나의 온전한 100을 꺼내 보이면 사랑받지 못할 거 같단 두려움이 나를 덮쳤다.


신작가님의 클래스를 신청한 이유는 그래서였다. 이제 그 순간을 강제적으로라도 직면해야 할 시기라 생각해서. 평생 극복하지 못할 것만 같던 사랑의 두려움을 직면해 보겠노라고. 얼마큼 눈물을 흘리던, 얼마큼 바닥을 치던, 얼마나 망가지던, 그 누구에게도 차마 하지 못한 말과 처절한 상황들을 글로라도 적어 최소한 마주해 보겠노라고.

나를 무너뜨린 두 가지 순간 중 하나는 별에 관한 이야기다. 별은 우리 할머니. 내게 가장 소중한 존재. 문제는 그녀가 세상을 떠났을 때, 뒤늦게 가장 소중한 존재라는 걸 깨달았다는 거다. 세상은 내가 사춘기든 뭐든 철이 들 때까지 기다려 주지 않았다. 그리고 위대한 사랑을 외면한 나에게 조금의 자비도 베풀지 않았다. 영혼이 뒤틀리고 몇 번이고 소멸하라는 벌을 끝없이 주었다.


때는 2010년 어느 가을, 관리 감독이 타이트하다고 소문난 학원에서 늦은 자습을 마치고 체력을 아끼라고 집 앞까지 필요치 않은 일방적인 친절을 베풀며 데려다주는 버스에 몸을 실었을 때였다.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다.


‘어, 나 번호도 바꿔서 아는 사람이 없을 텐데….’라는 의아한 마음으로 차창 밖을 바라보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누구세요?”
“이모다.”
차갑게 식고 정 없는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렸다.


“응? 내 번호 어떻게 알았어?”
“할머니 돌아가셨다. 엄마 옆에 계시니?”


순간 감정을 느낄 새도 없이 하염없이 뺨에 투명한 액체가 흘렀다. 무조건적인 사랑에 신체가 반응하며 동시에 머릿속은 바빠져 물음표로 가득 찼다.


'도대체 왜? 왜 지금?'

'연로해서 돌아가셨나? 갑자기 왜? 분명 건강하셨는데돌아가실 분이 아닌데 도대체 무엇 때문에!'


쓰러질 것만 같았다. 그리고 무거운 죄책감이 나를 내리눌렀다. 자매 중 항상 고된 일을 도맡고 생계를 책임져 집안생계를 도운 우리 엄마가 할머니를 봉양하다 무거운 현실이 짓눌러 이모 집으로 할머니는 잠시 거처를 옮겼기 때문이다. 불과 몇 달도 채 되지 않은 지금인데. 도대체 무엇 때문에!! 알 수 없는 상황에 순간 쓰러질 것만 같았다. 그저 달리는 학원 버스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눈물을 흘리는 일, 이걸 엄마에게 어떻게 전하면 좋을지 공황 상태 속 인생 최대의 두려움을 온몸으로 느끼는 수밖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마치 허리케인 속으로 빨려 들어가며 차라리 빨리 생을 종료시켜 달라고 애걸복걸하고 싶었다.


이후 13년간 거대한 슬픔에 완전히 잠식됐다. 심리적 독립도 학업도 마치지 못한 20세의 문. 내 영혼의 전부가 이 세상에 없다는 슬픔만큼만 영정사진 앞에서 감당하던 그때로부터, 한 해가 지날수록 엄마 본인만 껴안고 있던 잔인한 사실을 하나씩 풀어 같이 감당하자고 들려줄 때마다 나는 번번이 더 큰 위기에 직면해야 했다. 여기까지. 더 이상 자세한 묘사는 아직 감당할 수 없다. 그 위기는 대략 한 해가 지날수록 할머니를 이모와 이모부가 어떻게 내몰았는지, 이모부의 어머니 즉 사돈지간이던 할머니가 얼마큼 잔인했는지, 그 방식이 끝까지 별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남겼을지 그걸 알고 생각할수록 거대한 분노가 곧 내가 되었고 인간과 세상에 대해 이루 말할 수 없는 냉소에 빠졌다.


여전히 너무 사랑해서 그런데 너무 뒤늦게 깨달아서 돌이킬 수도, 고칠 수도, 용기를 낼 수도 없던 그 상황이 나를 망친다. 이 세상엔 이기적인 사랑만 존재할 뿐이라던 극단의 냉소는 13년의 세월 간 아주 조금 거둬졌지만, 여전히 난 사랑을 시작하지 못하는 고질병을 치유하지 못했다.


나머지 하나는 첫사랑이 보내려고 한 청첩장에 담긴 도무지 알 수 없는 마음 때문이었다. 아 물론 청첩장 그래 보낼 수야 있지. 하지만 우리라고 부르기도 싫은 사이에서 그걸 건네주려는 의도가 내 마음을 할퀴었다.
헤어진 지 1년 이후 갑작스럽게 온 톡. (그때라도 ex는 칼차단이라는 국룰을 신뢰했어야 했는데)


“잘 지내?”
“왜 무슨 일인데.”
“한 번 볼 수 있을까?”
“왜.”
“만나서 말하면 좋겠는데. 장소는 종로쯤.”


쓸데없는 이기적 친절까지 제안하며 부탁하던 어조에 때론 가족같이 느껴져 모질이 챙긴다는 측은지심으로 집에 뭔 일 있나 싶어 알겠다고 답했다. 그러고는 며칠 뒤, 청첩장을 건네려던 것임을 알게 됐다. 건너 들어 다행인 건지 불행인지 몰라도 난 그 이후로 완전히 무너졌다. 청첩장을 건네려던 그 사실 때문이 아니라, 왜 그걸 나에게 굳이 건네려고 했는지 이기적인 마음이 폭력처럼 느껴지며 극심한 배신감을 느끼며 치를 떨었다. 결국 난 그 이후 그를 일절 보지도 대화도 하지 않기로 결심했고, 맺지 못한 결말로 인해 수년간 생각했다. 그가 왜 마지막을 그렇게 잔인하게 끝내려고 했는지, 내가 뭘 잘못했는지 복기하려는 병신 같은 노력을 하며.


‘내가 먼저 처음에 사랑을 표해서 쉬워 보였나?’

‘내가 만만해 보여서 청첩장까지 건네며 오라고 했을까?’

‘사랑을 시작하고선 마음이 식었다고 한 걸 복수하려고?’


오만가지 뇌피셜이 머리에 지나가게 방치했다. 어떤 각도로도 이해되지 않던 그의 이기심에 이불을 덮고 소리 내지 않고 펑펑 우는 법을 한 해간 배우고 나서야 누구에게도 내 마음의 100을 보일 순 없음을 실감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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