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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채영 Jan 30. 2020

여행자가 일상으로 돌아와서는 어떻게 사냐고?

장채영의 음악여행기

여행 이야기의 마지막 장면은 항상 열린 결말이다. 의문이 든다. 


'그래, 여행 좋지. 즐겁고, 깨달은 지혜도 많고. 알겠어, 근데 여행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와서는 어떻게 사는데?' 


뒷이야기가 궁금하지만 적어도 내가 읽고 본 여행 이야기의 어느 페이지 어느 장면에서도 일상으로 돌아와서 사는 이야기는 해주지 않았다. 여행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온 사람들. 마치 한 번도 여행한 적 없는 사람인 것처럼. 다시 반복된 삶을 살아서 그런 걸까. 지금 당장 떠나라고. 독자들이 여행 이야기를 읽으며 느낀 벅차오르는 감정을 방해하지 않기 위한 보호막일까. 빛과 어둠은 공존할 때 더 빛나고 더 어두운 법이라는 뻔한 이야기. 여행도 일상이 있어야 더 여행다운 법. 그럼 일상에서는 어떻게 여행해야 할까?


'세계여행과 내 이름으로 된 책 내기' 


학창 시절부터 꿈꾸던 인생 버킷리스트였다. 17년 여름에서부터 18년 7월 여름까지 아일랜드 워킹홀리데이를 떠나 1년 365일 하고 20여 일, 12개국 30여 개 도시를 여행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만난 한국인 유학생들과의 대화를 엮은 책 <지금 여기, 더블린 사람들처럼>을 냈다. 꿈을 이루고 나니 더 이상 이룰 꿈이 없었다. 열정이 고갈됐다. 여독을 빼느라 에너지를 모두 소모하기도 했고 무기력했다. 


왜 그런 거 있지 않나? 피겨스케이팅 김연아 선수도 금메달만을 보고 달려왔는데 막상 금메달을 따고 나니 

삶의 이유가 없어진 듯했다고. 김연아 선수만큼이나 세상의 관심을 받으며 내 꿈을 이룬 것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나만의 금메달을 손에 쥐었다. 그것만 보고 달려오기도 벅찬 터라 그 이후의 삶을 그리지 않았다.


여행을 마치고 책을 내고 2년 만에 학교에 왔다. 언제 여행했냐는 듯 여행자에서 4학년 복학생 장채영으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났다. 반가운 마음도 잠시 한국에서 23년을 살아놓고 고작 해외에서 1년을 살았다는 이유로 일상에 돌아오니 인간관계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각자의 속도가 있다는 것을 여행하며 깨달았으나, 막상 눈앞의 현실로 나타나니 마음이 분주해졌다. 한국에서는 25살이면 대체로 취업을 이미 했거나 준비하고 있을터. 그런 친구들에게, 목표들을 모두 이루어 공허하다는 느낌을 고민이랍시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럼 다른 버킷리스트를 생각해보면 되지 않을까?' 


친구는 말했다. 그렇게 무기력한 일상에서 여행하던 행복한 나를 기억하며 하나둘씩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맞아 아이슬란드에서 오로라를 보며 시규어 로스 음악을 듣고 싶었고, 영국 글라스톤 베리 페스티벌도 가보고 싶었고, 베를린에서 데이빗 보위가 자주 갔다던 카페도 가보고 싶었고, 인도에서 요가도 하고 싶었고..”


아일랜드에 살면서 1년이라는 한정된 시간에서 모두 할 수는 없었던 터라, 선택하지 못했던 다양한 꿈들이 있었다. 하나둘씩 적어놓고 보니 무기력한 이유를 알게 됐다. 꿈을 모두 이룬 것이 아닌데 모두 이룬 것처럼 착각을 한 것이다. 여행에서 만든 근육은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꿈을 적어 내리게 하는 힘이 되었다. 그 적어 내린 시간들이 꿈이라는 물병에 가득 차게 되면 그때 또 여행을 떠나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나는 물병이 가득 차기를 기다리지 않았다. 물병에 물 또한 남이 아닌 내 스스로 부어야 한다는 것도 잊었다. 반복되는 일상에 치여 과거의 행복했던 나의 여행만 추억했다. 그런 내게 감사하게도 길에서 얻은 지혜가 쌓여 지금 내 옆의 사람, 친구라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리곤 나에게 한 번 더 꿈을 물었다.


선택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 후회하는 것이 아닌 아쉬움은 일상으로 하여금 용기로 변신했다. 일상으로 돌아왔다고 여행이 끝난 것이 아니었다. 여행은 일상에서 또 다른 여행을 꿈꾸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될 때 비로소 진정한 여행이 시작됐다. 


그렇게 나는 오랫동안 닫아놓았던 나의 기억의 서랍 속 깊은 칸에 있던 꿈의 도시, 

글라스톤베리라는 서랍을 다시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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