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꿈은 아이의 성공
아이의 성공이 곧 나의 성공이라고 믿었다.
아이 출산과 동시에 내 일은 접어두고 오직 육아에 전념했다. 아이에게 온갖 정성을 쏟아부었다. 아이에게 올인하여 아이를 잘 키우고 교육하는 일이 나의 역할이라고 자신했다.
사립 초등학교에서 전 학년 영어 담당 강사로, 또 대치동에서 오래 기간 동안 영어강사를 많은 초등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동안 쌓아온 경력과 대치동의 사교육 정보에 정통한 덕에 내 아이는 적기?에 사교육을 잘 활용할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막상 내 아이 6세 후반부터는 미리 계획했던 이상으로 사교육을 시켰다. 소위 말하는 최상위 로드맵으로 달리기 시작했다.(물론, 혹자는 6세 후반이면 적정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문제는 9세 아이의 과제는 밤 11시가 되어 그 끝나지 않는 날이 점차 많아졌다. 급기야는 자정 넘어 잠자리에 드는 날들도 있었다.
아이는 순하고 하라고 하면 하는 착한 성향이다. 사교육을 시키는 대로 아웃풋도 나오니 내 욕심은 자꾸 커져만 갔다. 아이가 잘하는 부분보다 부족한 부분이 훨씬 커 보였다. 늘 부족한 부분을 어떻게 채워줄 수 있을까? 가 관건이었다. '이렇게 해서 아이가 되고 싶어 하는 자동차 디자이너가 될 수 있을까? 그러려면 수학 과학 영어는 기본이고 독일어도 어릴 때 시작하면 좋은데!' 나의 기우로 인해 아이의 학습량은 점점 더 늘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이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스쳤다. 아이보다도 내가 신나서 달려온 이 길이.. 말로는 다 내 아이를 위한 것이라지만, 솔직히 아이보다도 나를 위한 것은 아닌지? 어쩌면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외면해온 것일 수도... '이게 정말 내 아이를 위한 것일까? 내 이성은 그렇다 하더라도, 그럼 내 아이는 진정 행복할까?' 무엇보다도 앞으로 10년은 더! 자정 지난 새벽 시각까지 책상 앞에 앉아있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상상을 하니 괴로웠다.
지금껏 '이 길뿐이야. 현재 이 교육시스템과 사회 제도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나의 작은 힘으로는 바꿀 수 없잖아. 내가 맞춰야지 어쩌겠어.'라고 생각하며 달려왔다. 나의 판단에 의심이 든 순간, 어둠 속 한줄기 빛을 보며 따라갔던 그 길이 칠흑같이 깜깜해졌다. 이제 겨우 초등학교 2학년인데... 학년이 올라갈수록 주어진 과제가 많으면 더 많았지 줄어들 리는 없었다. 게다가 나는 그동안 지금의 초중등 학생들이 얼마나 많은 양의 공부를 하는지 숱하게 봐오지 않았던가. '비상'이라는 문구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 즈음, 동네에서 유명한 수학학원에 '레벨테스트'를 보러 갔다. 이미 초등 Top3 수학학원의 레벨테스트는 다 보았고, 이곳은 새로운 곳이라 왜 유명한지 커리큘럼도 궁금하고 테스트 결과는 더 궁금했기 때문이다. 며칠 후, 결과 들으러 갔다가 놀라운 사실을 접했다. 수학을 좋아했던 내 아이의 테스트 성적은 우수해서 top 반에 배정받았지만, 심리 문제에서 수학을 싫다고 했다. 수학은 잘하지만, 수학이 싫다! 오, 마이 갓!! 내가 뭔 짓을 한거니?TT
아이러니하게도 '비상'사태에서 나는 바로 그만두지 못했다. 그동안 내 아이에게 투자한 시간과 돈이 얼마인데... 오랜 시간 동안 공들인 게 아까워 망설였다. 혹시라도 내가 잘못 판단한 거면 어떡하지? 내심 내가 잘못 판단했길 바랐던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까지 해오던 것과 똑같이 계속 밀고 나갈 수도 없었다. 한시라도 빨리 그 상황을 해결하고 싶었다. 그때부터 미친 듯이 책을 읽고 강의를 들으며 요즘 세상 돌아가는 상황 파악에 힘썼다. 과연 내 판단이 옳은 건지 알고 싶어 친인척들과 지인들, 인맥을 총동원했다. 대학교수, 대기업 임원 면접관 등으로 재직하시는 분들을 만나 뵙거나 전화 통화를 하며 질문을 쏟아냈다. 학벌과 스펙 vs 실력 어느 것인지? 미래의 교육, 어떻게 생각하고 예측하시는지?
그제서야 비로소 세상 공부를 시작했다. 이때부터 교육서가 아닌 다른 분야의 책들을 미친 듯이 읽었다. 그로부터 1년, 내가 성인이 된 후 여태껏 읽었던 책들보다 더 많은 책들을 읽었다. 세상의 흐름과 미래교육, 미래예측에 관한 강의는 비싼 강의라도 다 듣고자 노력했다. 되돌아보니, 이 과정에서 내가 많이 성장했다. 애초에 '나의 성장'에 목적을 두지 않았음에도 결론적으론 내가 성장했다. 아이의 교육문제를 개선하고자 한 노력이 나를 변화하게 했다. 부족함이 많다고 생각했던, 순하고 착한 내 아이 덕에 거꾸로 엄마가 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