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초기, 왜 그렇게까지 나를 증명하고 싶었을까?

by 승연

입사 첫날, 나는 시험장을 들어서는 듯 긴장한 마음으로 평소 습관보다 훨씬 이른 시간에 회사에 도착했다. 예전부터 엄마가 "너도 저런 회사 패찰을 목에 걸고 다님 멋질 것 같아."라고 했었는데, 그 패찰을 내가 목에 걸고 있다는 것이 이상하면서도 뿌듯했다. 나도 이제 회사원이 되었다.

입사 첫날뿐 아니라, 나는 늘 일찍 출근했다. 남들보다 일찍 와서 비어있는 사무실을 둘러보고 내 자리에 앉아 그날 할 일을 정리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좋았다. 조용한 사무실에서 혼자 숨을 고르며 하루를 준비하면 마음이 조금 놓였다. 나는 언제, 어디서, 무엇을 물어봐도 당황하지 않는 신입이 되고 싶었다. 어딘가 '준비된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다.

그러는 한편, 사실 마음 한켠에는 은근한 자신감이 있었다. 석사까지 공부하며 나름의 전문성을 갖췄다고 생각했다. 학교에서 배운 지식과 논리, 그리고 나의 생각하는 역량은 회사에서도 충분히 통할거라 믿었다. 나는 '그냥 신입'이 아니라 '잘난 신입'으로 출발하고 싶었다. 그래서 입사 초기에 열심히 의견을 내고,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말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본격적인 업무가 시작되자 나는 그 자신감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머릿속에 가득 담아왔던 이론과 전략은 실제 현장에서는 별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내가 낸 아이디어는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해."라며 묵살되기도 하였고, 어떤 때에는 "그런건 이미 선배들이 다 해 본거야."라는 피드백을 듣기도 했다. 내가 말을 마치기 전에 화제가 넘어가기도 했다. 그럴때에는 그 무안함에 회의실에서 나만 얼음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했다.

그러면서 나는 깨달았다.

'내가 지금까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전문성'은 조직 안에서 내가 당장 쓸 수 있는 도구가 아니구나.'


회사에서 문제를 풀기 위해 중요한 것은 지식의 양이 아니라, 그걸 누구와 협업하여 어떻게 풀어내느냐라는 것은 나중에 알게 되었다. 보고서 하나를 쓰려해도 어떤 양식으로 작성해야 하는지, 어떤 어조로 써야 하는지 알지 못했고, 누구에게 먼저 공유해야하는지도 몰랐다. 실무는 이론과 달랐고, 조직 안에서의 일은 '정답'보다 '맥락'이 더 중요했다.

이러한 깨달음은, 솔직히 말해, 나를 작게 만들었다. 스스로 준비된 사람이라는 자신감이 컸기에, 회사가 주는 새로운 기준앞에서 더 큰 자괴감을 느꼈다.

'나라는 사람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잘난 사람이 아니었구나.'

그 씁쓸한 감정, 그건 처음 맛보는 종류의 감정이었다. 겸손이라고 하기에는 내가 너무나 초라했고, 상실감이라고 하기에는 정리가 되지 않은 느낌이었다. 새삼 회사생활을 오래하신 분들이 대단해보였다.


지금 생각하면 그 당시 나는 서툴렀다. 그리고 성급했다.

나는 나를 증명하려 했고, 인정받기 위한 열망을 숨기지 않았었다. 그런데 그 열망의 바닥을 들여다보면, 그 속에는 '불안'이 늘 있었다. 이 분야에서는 드문 여성이었고, 사회 초년생이라는 위치, 조직이라는 낯선 집단안에서, 내가 과연 여기 있어도 되는 사람인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있었고, 계속 일할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도 업었다.

그래서 나는 불안을 숨기기 위해 더 열심히 하려 했다. '능력은 아직 모르겠지만, 성실함만큼은 보여주자.'고 스스로를 몰아붙였다. 그 상실감 이후로 나는 나 자신을 다시 정의해보고자 했다. 내가 가진 능력이 이 집단에서 통하지 않는다면, 그 다음으로 내가 해야하는 것은 그 집단을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를 '능력있는 신입사원'이 아니라, '배우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당장 결과를 보여주지 않아도 될 것 같아 내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그리고 불안한 마음이 좀 누구러들었다.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에게 말을 건넬 수 있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너무 빨리 증명하려고 애쓰지 마. 이미 너는 괜찮은 사람이야."

" 천천히 해도 괜찮아. 아직 너는 배우는 중이잖아."

그 말을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안다.

회사에서 오래가는 사람은 처음부터 잘난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배우는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