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시현 Feb 22. 2023

친구가 죽었다

죽음을 결심하는 마음이란

친구가 죽었다. 아빠친구아들인 K는 나의 몇 없는 남사친이었다.


마지막으로 연락했을 때는 코로나를 피해 두 딸을 데리고 한국에 들어가 있을 때였다. 잠깐 우리 집으로 오겠다는 K와의 약속을 깬 건 나였다. 그냥 귀찮았던 것 같다. 지금은 정신이 없으니 나중에 보자고 했다.


K의 결혼식장에서 예쁜 신부의 손을 잡고 결혼하는 친구가 낯설었다. 나는 괜히 어색해서 네가 결혼을 한다니 구제해 준 와이프에게 평생 잘 하라며 웃었다. K의 부부와 우리 부부가 처음 만난 자리에서 청첩장을 받았다. 어린 시절 친구가 다 커서 결혼을 한다는 사실을 두고 새삼 서로를 기특해했다. 아마 같은 마음이었을까 내가 첫째 딸을 출산했을 때 K는 내게 통 큰 선물을 보냈다.


취준 하던 힘든 시절, 우리는 종각역에 있는 이자카야 술집에서 만나 가운데에 소주병을 두고 서로 신세한탄을 했다. 아니 내가 공부가 안 된다고 신세한탄을 하면 그런 나에게 나약한 소리 하지 말라며 욕을 했던 것 같은데 그게 묘하게 위로가 됐다. 미친 대학생이었을 때 했던 수많은 미팅 중 일부는 K의 친구들이었다. 테이블에 마주 보고 앉은 친구들 사이에서 사회를 보며 우린 키득거렸다. 주로 내 친구들이 그의 친구들을 맘에 안 들어해서 나는 주선자 K에게 핀잔을 줬다.


끊겼던 연락을 다시 했던 건 중학생 때였다. 싸이월드 미니홈피에서 무심코 이름을 검색해봤는데 K의 프로필 사진을 보고 배꼽 친구의 얼굴을 알아봤다. 얼굴이 그대로네?! 라며 내가 반갑게 아는 척 하자 K는 종종 내가 잘 살고 있는지 궁금했다고 했다. 우린 멀리 살았지만 방명록을 남기며 친해졌다. 어릴 때 추억이 많았던 친구라 오랜만에 연락해도 할 말이 많았다.


어린 시절 사진을 보면 유독 K와 찍은 사진이 많았다. 아빠 친구의 아들과 난 단 며칠 차이로 태어났는데 동갑내기인 우리를 데리고 두 가족은 철마다 자주 여행을 떠났다. 엄마들은 임신기간을 함께 보내고 공동 육아를 하면서 친해졌을 거다. 겨울엔 스키장 여름엔 콘도에서 시간을 보냈다. 지나고 보니 그 시절 부모님이 지금 내 또래였다. 어른들이 거실에서 술을 마시면 우리는 동생들과 방 불을 끄고 무서운 이야기를 했다. 꺅 소리를 지르면 부모님이 빨리 자라고 소리쳤고 우리는 이불속에 숨어 뭐가 그리 웃기는지 키득거렸다.


언제로 돌아가면 친구의 죽음을 막을 수 있었을까? 내가 약속을 취소하지 않았다면, 연락을 좀 자주 했다면, 내 말을 줄이고 그의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따뜻한 말 한마디를 더 해줬으면 그 일을 막을 수 있었을까. 아님 네가 나에게 그랬던 것 처럼 나약한 소리 하지 말라고 욕이라도 실컷 해줄껄. 그럼 좀 나았을까. 어린 딸과 예쁜 아내를 두고 가야 했던 너는 대체 어떤 마음이었을까.


아빠가 카카오톡으로 보내준 부고엔 K의 영정 사진이 있었다. 부고도 청첩장처럼 카톡으로 전달된다는 사실이 낯설었다. 낯익은 부모님과 아내, 딸아이의 이름을 한참 쳐다보다가 쓰여 있는 계좌번호로 돈을 이체했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더 이상 없는 건가. 외국에 사느라 장례식도 가보지 못했다. 그의 가족들에게 이제와서 오랜만에 연락을 할 용기는 없었다. 며칠 동안 멍했다. 답변이 없을 거라는 것을 알고도 sns로 dm을 보냈다. “아니지?” 그의 sns엔 여전히 행복한 사진들로 가득 차 있는데. 금방 답변이 올 것 같았는데 당연히 오지 않았다. 다 장난이고 꿈같았다.


와이프와 어린 딸이 옆 방에서 자고 있을 때 몰래 목을 매는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야속한 마음이 지나자 이해를 해 보려고 노력한다. 나이가 들어 삶의 무게가 더해질수록 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종종 있다는 것을 이해한다. ‘죽을 용기로 살아보지’라고 원망하다가 그 말이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이 절박한 사람에게 얼마나 잔인하게 들릴지 가늠해 본다. 자꾸만 떠오르는 너의 얼굴을 지우고 싶어서 sns를 차단하려고 했다가, 그러면 혹시 나중에 맘이 바뀌었을 때 다시 친구수락을 해줄 네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난 마흔을 앞둔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있지만 나는 처음 겪는 친구의 죽음을 감당하기 힘들다.


그곳에서 지금은 좀 편해졌는지. 시원하게 욕하고 장난기 있는 표정으로 키득키득 웃던 그 모습으로 돌아왔는지. 대답 없는 안부를 자꾸만 묻는다.

keyword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