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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씨리Rhee Jun 26. 2024

잠과 화가 난 엄마

#미래 #잠 #고등학생


곧 수학여행이다. 2박 3일 제주도로 예정이 되어있는데, 아직도 방 짝꿍 정하는 것 때문에 골머리가 아프다. 오늘도 아침에 등교를 하자, 아이들이 제주도에 가서 어떻게 재미있게 놀지 궁리 중이다.

"야, 원피스를 입을까? 반바지에 나시티를 입을까?"

"술은 걸리니까, 텀블러에 싸갈까?"

"엄마한테 그 이야기하니까, 엄마가 선생님들 몰래 제주도 숙소로 술을 택배로 부쳐주겠데!!!"

"와하하하~~~ 너네 엄마 최고다!"

미네 엄마는 꽤나 마음이 열려계시다. 우리 엄마도 미네 엄마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마음이 너그러운 편이다. 나는 엄마를 잘 만난 것 같다.


학교를 마친 뒤 바로 영어 학원으로 향한다. 곧 있을 기말고사를 준비하기 위해서이다. 영어는 나는 너무 싫다. 수학은 왜 그런지 원리를 이해하면 바로 식에 적용하면 되는데, 영어는 왜?라는 나의 궁금증에 대한 대답 없이 미국 애들이 그렇게 쓰기로 만들어 뒀으니 그냥 무조건 외우라는 식이다. 나는 암기는 천성적으로 못한다. 그래서 내가 제일 못하는 건 벼락치기다. 벼락치기로 시험 전날 밤을 새워서 공부하고 성적 잘 나오는 애들이 나는 이 세상에서 제일 부럽다. 나에게 없는 능력이니까. 영어 학원을 마치고 물 먹은 솜뭉치 마냥 무거워진 몸을 이제야 집으로 향한다.


집에 오면서 엄마에게 전화를 했는데, 엄마가 전화를 안 받는다. 엄마는 참 전화를 잘 안 받는다. 어떨 땐 서운하기도 하다. 현관문을 열며 엄마를 불러본다.

"엄마~~~~~!"

"응 왔니? 얼른 손 씻고 밥 먹어라. 밥 먹고, 핸드폰 보지 말고! 바로 독서실 가! 또 그냥 누워있네, 핸드폰 보지 말랬지?"

휴.. 엄마는 내 얼굴은 쳐다보지도 않고, 엄마 하고 싶은 말만 한다. 나는 엄마 얼굴이 하루 종일 보고 싶었는데. 나는 친구들이랑 제주도 방 쓰는 일 때문에 짜증이 나는 것도 꾹 참고 학교 겨우 마쳤는데. 다가오는 기말고사 스트레스도 겨우 견뎌내며 학원까지 다녀왔는데. 나는 엄마의 다정한 한 마디가 필요했는데. 엄마 가슴에 폭 안기어서, 어리광도 피우고 싶은데.


독서실로 발길을 향한다. 독서실에서 나는 잠이 들곤 한다. 정말 너무 피곤하다. 계속되는 친구들과의 갈등, 끝도 없이 해야 하는 공부, 이제 내년이면 고3이라는 중압감에서 벗어나고 싶다. 그냥 책상 위에 엎드려 잠으로 빠져든다. 핸드폰이 울린 것 같은데? 어, 화난 얼굴을 한 엄마가 내 등뒤에서 있다. 나는 그렇게 잠이 들고 엄마는 저녁 12시가 넘어도 전화를 받지 않는 나를 데리러 온 모양이다. 화난 엄마와 집으로 향하는 발길은 천근 만근이다. 눈이 계속 감겨오고 무릎에 힘이 풀린다.

"야! 눈 안 떠? 그러다 넘어질래? 그리고 빨리빨리 안 걸어!!!"

엄마는 내내 화만 낸다.

"엄마 손 잡아끌지 마. 손 아파. 그리고 엄마 먼저 가든가~ 나 빨리 못 걷거든? 그리고 눈 감고 걸어도 넘어지지 않아. 다 보여!"

나도 나대로 짜증을 부린다. 엄마는 더 화를 내고, 언성이 더 올라간다. 나는 엄마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눈 빛 한 번 못 받아 보고 오늘도 이렇게 지나버렸다. 집에 돌아와서는, 비뚤어진 골반 때문에 항상 아픈 허리가 더 욱신거려서 한 발자국도 못 움직이겠다. 멍 때리고 앉아있자니, 엄마는 소리를 한차례 더 내신다.

"빨리 안 씻어! 안 씻냐고!!!! 대체 지금 새벽 한 시가 다 되어가는데!! 엄마도 내일 출근해야 할 것 아니야?"

나도 지지 않는다.

"엄마가 소리 지르니까 안 씻을 거야. 엄마가 들어가서 자면 나도 씻을 거야!!"

눈물이 흘러서 나도 모르게 울면서 소리를 질렀다.

엄마는 화를 내다가 방 문을 닫고 들어가 버렸고, 나는 여전히 졸리고 피곤하고 짜증 나고, 오늘 공부도 많이 못했는데, 다가오는 기말고사 때문에 중압감은 계속 들어서. 핸드폰을 집어 들고 방바닥에 그대로 누워버렸다. 그렇게 나는 씻지도 않은 채 잠에 스르륵 빠져버리고 말았다.


그다음 날 새벽에 엄마는 나를 흔들어 깨운다.

"왜 안 씻고 자니! 안 씻고 자길?! 불은 왜 켜 놓고 잠을 들어??? 대체! 빨리 안 일어나!!!"

여전히 엄마는 화가 난 얼굴이다. 나는 분명히 조금만 누웠다가 씻고 자려고 했는데, 왜 몸이 내 마음대로 움직이질 않지? 잘하고 싶었는데, 나는 엄마에게 따뜻한 눈빛 따뜻한 포옹 한번 주고받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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