쪼다웃음 짓는 남편
#남편 #아이들 #키즈카페 #연애
약속 시간보다 약 20여분 일찍 도착해서, 추위를 피하기 위해 근처 마트 지하로 내려간다. 어디 잠깐 엉덩이 붙일 곳이 없나 두리번거리다가, 키즈 카페 앞에 놓여 있는 벤치에 잠시 앉는다. 요즘 나는 인스타를 열기만 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문이 닳도록 보기가 일쑤다. 시간 죽이는 데는 SNS만큼 멍 때리기 좋은 게 없지. 하릴없이 화면을 내리다가 엇. 하고 시간을 보니 약속 시간이 거의 다 되었다. 역시 시간 도둑이라니까. 하고 무거운 엉덩이를 일으키자, 무심히 키즈카페가 눈에 다시 들어온다. 그러려니, 하고 발길을 돌려 약속 장소로 다시 향하려는데, 아이들 어린 시절 추억이 급 떠올라 발길을 되돌려 사진을 찍어 한 장 남겨둔다.
부모동반 없이 키즈 카페 출입 가능한 연령이 있다. 그때가 아마 36개월 이상이었던 것 같다. 매주 토요일 혹은 일요일에 마트를 찾곤 했는데, 아이들 옷 입혀서 나가는 일이 회사 출근하기보다 힘들던 그때였다. 나는 회사 시간 외에는 아이들 둘을 매미처럼 앞에 한 마리, 뒤에 한 마리 붙여서 주말을 보내곤 했기 때문에, 나만의 자유로운 시간이 절실하던 시기였다. 작은 애가 드디어 36개월을 넘기고, 마트의 키즈 카페에 보호자 동반 없이 맡길 수 있는 시간이 왔다. 큰 놈, 작은 놈 차례대로 카페에 애들을 입장을 시키고, 나는 남편과 단 둘이 마트 카트 앞에 남았다! 이 순간은 아직도 결혼식장 확약서에 도장 찍어 엄마 집을 떠날 그 시간을 확보한 그 순간보다, 더 큰 해방감을 맛보았던 순간이라고 단언컨대 말할 수 있다.
너무 엄격한 엄마 밑에서 성장기를 보낸 나는 남편과 마음 편하게 데이트도 못해보고 결혼을 했다. 결혼하자마자 첫 째 낳고, 21개월 만에 둘 째 낳고 이렇다 할 여유로운 데이트도 둘이 여행도 별로 기억에 없다. 이런 나에게 마트 장을 볼 동안, 편안하게 남편 팔짱 끼고 구석구석 단. 둘. 이 돌아다닐 수 있는 여유가 있을 수 있다니, 가히 내겐 파격적이었다. 나는 단 둘이 마트 장 보는 것에 행복해하는 참 손쉬운 여자다. 이런 손쉬운 여자를 항상 울고 불고 하게 하는 남편이 난 신기하다. 나는 작은 것에 쉽게 행복해하는 사람인데. 그런데 남편은 내가 어렵다고 한다. 왜지?
어쩌면 그것은 남편의 방랑 기질에 기인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극 "E"성향인 남편은 밖에 나가면 연예인이 서러워할 만큼의 팬서비스와 화려한 쇼맨십에 외부사람들에게 극하게 환영받는다. 남편은 새로운 만남일수록 흥분해하고 에너지를 몽땅 쏟아붓는 성격이다. 첫 만남에서 내가 그에게 온통 마음을 빼앗겼던 이유도, 워낙 그 순간 모든 에너지를 그가 나에게 다 쏟았기 때문이었다. 그때 알았어야 했다. 그에게 있어 모두와의 첫 만남은 모두 격렬한 순간이었고, 나도 그중 한 명이었던 것을 말이다. 많이들 공감할 것 같다. 배우자가 내게 하는 어떤 행동이 좋아서 결혼했는데, 알고 보면 모두에게 그렇게 하는 그는 그런 사람이었음을.
나는 둘이서 동네 한 바퀴 산책 등의 오붓한 데이트를 원하는데, 남편은 항상 친구들을 초대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낯선 곳에 자신을 던진다. 그래서 항상 바깥으로 나가는 남편에게, 주말이면 나는 앞 뒤로 아이들을 매미처럼 붙이고는 으르렁대다가 아이들 어린 시절은 다 보냈던 것 같다. 그는 으르렁 대기만 하는 나를 달랠 줄도, 잘해주는 법도 몰랐다. 바깥에서는 그렇게나 화려한 사람인데, 나한테만 오면 그는 아주 쪼다 바보가 되었다. 어김없이 나는 주말에 아이들 두 녀석을 커다란 마트 카트에 실어 키즈 카페로 향하고 있었고, 그는 지인들과 해외 출타 중이었다. 키즈 카페 앞에서 난리 난 두 녀석을 진정시키느라 정신이 없는데, 그에게 여러 장의 사진이 날아든다. 해외 유적지 앞에서 함께 간 지인들과 아주 쪼다 같은 미소를 짓고, 옆에 더 쪼다 같이 미소 짓고 있는 그 친한 형님들과 누님들이다.
나는 주중에 회사 일로 넉다운이 되어 주말이라도 좀 쉬고 싶은 마음을 뒤로하고, 아이들 옆을 못 지켜준 죄책감을 키즈카페로 달래어 보는 중인데. 그는 해외 유적지 앞에서 쪼다 같은 웃음을 짓고 있는 사진을 나에게 보내고 있다니, 대체 무슨 마음인 걸까? 나는 해외에서 잘 놀고 있으니, 너는 한국에서 이 사진 보고 마음을 달래어라? 사진을 보고 너도 나와 함께 해외에 온 듯한 기분을 함께 느껴보자? 뭐 굳이 애써 좋게 해석해 보자면 이런 식일 것 같다. 십오 년이 지난 지금도 키즈 카페만 보면 아이들에게의 해방감과, 카톡으로 날아든 그의 해외여행 사진에 대한 기억이 동시에 떠오르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인생이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언제나 모르겠는 진행 중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