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동순 Dec 20. 2022

[수줍은 사찰 산책] 저절로 닿은 절

둘레길 산책

  수줍습니다.

  매사 수줍은 성격이라 산책을 좋아하나 봅니다. 둘셋 보다 혼자가 좋습니다. 발맞추기보다 제 속도로 허적허적 돌아다닙니다. 가족이 있습니다. 직장이 있습니다. 함께여야 할 시간이 꽤 많습니다. 그래서 혼자만의 시간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새벽과 산책. 저에겐 타협할 수 없는 '홀로 혼잡한 시간'입니다.

제가 사는 아파트 이름 맨 앞에는 북한산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산꼭대기에 있다는 거지요. 마트보다 둘레길이 더 가깝습니다. 자연스레, 둘레길이 저의 산책길이 되었습니다. 


  평일 아침에는 정해 놓은 산책로를 걷습니다. 똑같은 길이지만 똑같지 않습니다. 계절에 따라 기분에 따라 산책길은 늘 변합니다. 사시사철의 변화를 시나브로 느낀다는 건 당연하지만 신기한 경험입니다. '시절 인연'이라고도 하지요. 어제 보이지 않던 것이 오늘 눈에 들어오고, 예전엔 미치지 못했던 생각이 불현듯 떠오르곤 합니다. 때가 되면 만날 수 있다 생각하니, 늘 같은 길을 걸어도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매일 걸어도 매일 두리번거리게 됩니다. 멈칫하는 게 있으면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래서, 새벽 4시면 눈을 뜨는 놈이 회사는 늘 지각입니다.


  주말에는 조금 더 멀리 가봅니다. 동이 트면 나섭니다. 발길 닿는 대로, 걸을 수 있는 만큼 걷습니다. 소진이 아닌 충전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릴 듯합니다. 채워졌다 싶으면 대중교통을 이용해 집으로 돌아옵니다. 돌아오는 길에 '아점'으로 뭘 먹을지 생각합니다. 냉장고에 뭐가 있나 떠올려보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장을 봅니다. 집에 들어오면 아내와 아들은 방금 일어났거나 일어나기 직전입니다. 아점을 준비하고, 나눕니다. 식사를 마치고 내 방으로 들어오면 은근 '하루를 다 살아낸 듯' 뿌듯함이 밀려옵니다. 


  종종 거니는 둘레길 중 하나는 '절'을 통과하는 길도 있었습니다. 걷다 보면 저절로 절에 닿게 되는 길이지요. 길음동 쪽에서 수유 쪽으로 둘레길을 걸어보신 분들은 알 수도 있을 것입니다. 바로, '삼각산 화계사'입니다.

다음회에 계속

작가의 이전글 [수줍은 사찰 산책] 수줍은 첫발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