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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동순 Mar 27. 2023

포스터에 낚인 썰.jpg

[수줍은 표지 산책] 영화 타르 포스터

이 이미지는 보는 이에 따라 스포일러로 보일 수 있겠다

처음이었다
포스터에 끌려 극장을 찾았다

어떤 내용의 영화인지도 몰랐다

얼추 시간도 맞고 

전단지라도 한 장 얻을까 싶어

회사 근처의 극장으로 향했다 


전단지는 없었다

아예 안 찍었는지

인기가 많은 건지 모르겠지만

전단지를 진열하는 부스에

비어있는 곳조차 없는 걸로 보아

더 이상 가질 수 없는 건 확실해 보였다 


평소엔 미련 남기는 편이 아닌데

요상하게 요건 욕심나더라

영화를 본 후 포스터를 사야겠다는 생각이 일었다

물론, 그 생각은 영화를 다 보고 집에 도착할 즈음 떠올랐다 

게다가 영화 내내 졸았다

재미없어서라기보다, 그때 내 상태가 그랬다


이 정도면 포기할 만도 한데 그래도 갖고 싶었다

방법을 생각해 보다 팀 아트 디렉터에게 부탁해

회사 프린터로 뽑으면 어떨까 싶었다

개인적인 부탁받는 걸 부담스러워해서

개인적인 부탁하는 것 또한 꺼리는 편인데

이건 그 정도로 욕심이 났다 


상사의 철없는 부탁에

아트디렉터는 한 술 더 떠

보드지에 예쁘게 붙여주기까지 했다 

회사 사람과 회사 자산으로 

개인적인 욕심을 채운 것 같아

마음 한 구석이 괜스레... 뿌듯했다 

내 존재 자체가 회사의 손해이기에

이 정도 손해는 티도 안 날 것이다 

내 사리사욕에 희생된 아트님께 

이 자리를 빌려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전한다


고개를 젖힌 채

온몸에 힘을 꽉 주고 서 있는

누군가가 보인다 


극단적 로우 앵글이어서

배우의 정체를 알아볼 수 없다

가슴을 있는 힘껏 펼친 탓에

성별조차 모호해 보인다 


오른손에 쥐고 있는 

가늘고 긴 막대로 미루어 보아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일 듯하다 


두 팔의 격렬한 떨림과

상반신 외에는 어둠에 가려있어

얼핏 보면 날갯짓하는 '새'처럼 보인다 


아니지,

저리 힘을 꽉 쥐고 나는 새는 없을 것이다 

달리보니

'비상'이 아닌 '추락'으로도 보인다

그것도 시커먼 어둠 속에서

바닥을 가늠할 수 없는 끝없는 추락 


'희열'로도 보이고

'분노'로도 보인다

'절정'으로도 읽히고

'절망'으로도 읽힌다 


다분히 의도된 앵글도 인상적이지만

그림 한가운데를 거침없이 침범한 글자들도 멋지다

격렬한 이미지를 방해하지 않으려

감성적인 카피를 버리고

꼭 필요한 정보들만 추려 한 곳에 모았다

특히나 A 위에 찍힌 점은 화룡점정이다

저거 없었으면 꽤나 답답해 보였을 듯하다 


저 레이아웃을 지키기 위해

아트디렉터는 얼마나 싸웠을까 


여러모로

간만에 묘했고

간만에 낚였다

그것도 포스터 한 장에 


부러웠다

나도 저리 낚고 싶다


이 포스터도 꽤나 멋지다. 아트가 누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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