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3.11 게임과 삶의 연대기_세모문 뉴스레터
‘나의 어린 시절을 단 한 장으로 표현하자면 바로 이것!’이라고 할 만한 사진이 있다. 7~8살쯤이었을까, 안경잡이에 홀딱 벗은 채로 거실 소파에 앉아 비디오 게임을 하고 있는 사진이다. 이때 플레이하던 게임은 기억나지 않지만, 사진 속 게임기는 국내에는 패미컴이라는 이름으로 출시된 NES(Nintendo Entertainment System)이다. 내가 태어난 해와 같은 해인 1985년에 처음 출시된, 게임 역사에 길이 남을 상징적인 게임기 중 하나이다. 당시만 해도 집집마다 거실에 하나밖에 없는 TV에서밖에 비디오 게임을 할 수 없었다. TV 앞 바닥에 앉거나 누워서 게임을 하면 눈 나빠진다는 소리를 지겨울 정도로 들었고, 잔소리를 피해 옆 동에 사는 사촌집에서 대부분의 게임을 플레이했다.
태어나서 처음 만난 소위 8비트 게임기의 대명사인 이 게임기로 플레이한 수많은 게임들은 지금까지 나의 인생 게임으로 기억되고 있다. 만화에서 보던 주인공 캐릭터가 되어 필살기를 사용하여 악당을 무찌르는 경험을 할 수 있었던 <드래곤볼 Z> 카드게임 시리즈, 런앤건 장르의 시조이자 한정된 8비트 소리만으로 수많은 감성을 자극하는 게임 OST로도 유명한 <메가맨 2>, 정확한 타이밍에 버튼을 눌렀을 때 필살기가 나가며 상대방의 캐릭터들을 화면 밖으로 날려버리는 <열혈 피구> 손맛은 어릴 적 뇌리에 깊게 박혔다.
한편으로는 어릴 적 아픈 추억이 있는 게임기이기도 하다. 어느 날, 아빠가 퇴근하고 오셨는데, 내가 인사도 제대로 안 하고 첫 문단에 이야기했던 모습으로 게임을 하고 있으니 아빠가 게임기를 던져 부숴버린 적이 있다. 그리고는 미안하셨는지 얼마 안 지나 다시 똑같은 게임기를 사주고, 얼마 안 지나 다시 똑같은 패턴으로 부숴버렸다. 아마 내 나이 때쯤의 남자아이들은 다들 비슷한 에피소드를 한 번씩은 겪었을 것이다. 어쨌든 그렇게 나의 첫 번째 게임기 시절은 강제 종료됐다. 하지만 곧 퍼스널 컴퓨터 시대를 맞아 “교육적”이고 게임도 할 수 있는 486 컴퓨터가 집에 들어왔고, 이후 내 게임 라이프는 PC로 옮겨가게 됐다.
당시만 해도 PC는 게임기에 비해 성능이 떨어지는 기기였다. 하지만 조작키가 몇 개 없는 게임패드 대신, 키보드와 마우스라는 새로운 인터페이스는 게임기와 색다른 게이밍의 세계를 열어 주었다. 그중 대표적인 게임이 바로 최초의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RTS: Real Time Strategy) <듄 2>였다. (얼마 전에 개봉한 영화 <듄>의 원작 소설을 기반으로 한 게임이다. 그래서 나를 비롯한 많은 아재들이 어릴 적 플레이하던 진영과 유닛이 거대한 스크린에 표현된 것을 보며 설레었을 것이다.) 전장을 위에서 내려다보며, 실시간으로 건물을 짓고 조그만 유닛들을 마우스로 조작하여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게임으로, 이는 기존에는 경험할 수 없었던 방식이었다. 내가 생산, 건설, 이동, 전투 등 화면의 모든 요소들을 컨트롤하며 장악하는 지휘자가 되는 경험은 내 취향을 제대로 저격했고, 이후 웬만한 RTS 게임은 모두 다 해봤던 것 같다.
또 이때쯤 접해서 엄청 열심히 했던 게임 중 하나가 <대항해시대 2>이다. 유럽 각국 출신의 인물이 돼서 선단을 꾸리고 미지의 바다를 탐험하고, 새로운 문물을 발견하고, 교역하며, 전투도 벌이며 각종 퀘스트를 수행하는 고전 명작 게임이다. 지금이야 오픈월드라는 장르가 있을 정도로 흔하지만, 당시 이 게임은 미지의 세계를 ‘탐험한다’는 경험을 처음으로 해볼 수 있는 게임이었다. 게임에서 실제로 배를 사고, 선원을 모집하고, 식량을 싣고, 파도와 해적과 각종 질병, 폭동의 위험을 감수하며 검게 뒤덮인 세계지도를 점점 넓혀갔다. 그것은 표면적으로는 약 700x400 정도 해상도의 세계 지도의 몇 픽셀을 확장하는 것처럼 보여도, 이를 플레이하는 내 머릿속에서 나는 세계를 항해하는 탐험가였다.
이렇듯, 그때 그 게임들은 내 어린 시절에서 빠질 수 없는 삶의 중요한 일부였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게임을 해서 결국 뭐가 남았을까? 어릴 적 나의 부모님이, 지금도 수많은 부모님들이 걱정하듯 나는 그렇게나 많은 시간을 전자오락에 '낭비'한 것이었을까? 물론, 게임 개발자로서 이 모든 경험은 훗날 게임을 만드는데 훌륭한 공부이자 자양분이 되어줬지만, 이는 게임 개발자가 되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일 것이다. 그럼 그저 한 사람으로서, 게임의 세계에 푹 빠져 지낸 시간들이 내게 남겨준 것은 무엇일까?
첫째로, 게임을 통해 새로운 지식을 습득했다는 점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어릴 적 <대항해시대>를 해본 사람은 이 게임으로 세계지도를 익혔다고 한다. 나 역시 세계지도와 온갖 도시의 이름과 유물을 이 게임으로 알게 되었는데, 그것은 어떤 나라에 대한 책을 읽거나, 세계지도를 보거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경험이었다. 나중에 실제로 그곳을 여행하게 될 때는, 게임에서 가본 곳이라 익숙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게임이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한국어로 번역되어 나오는 게임은 손꼽을 정도여서, 대부분 영어 또는 일본어의 게임의 뜻을 유추하거나 공략집의 번역을 봐가며 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해당 언어에 흥미를 가지게 되고, 이후 공부를 하게 되어 지금은 두 언어 모두 어느 정도 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어쩌면 이런 것들보다 더 중요한 것은 현실세계에서 쉽사리 될 수 없거나, 아예 불가능한 수많은 누군가가 되어 그들의 경험을 체험해봄으로써 길러진 마음이 아닐까 싶다. 게임 속에서 하늘을 날고 강해지는 영웅 캐릭터가 되며 무엇이든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마음을 키우기도 했고, 거대한 군대의 지휘관이 되어 친구들과 함께 플레이하며 때로는 경쟁심을 때로는 협동심을 기르기도 했으며, 전 세계 바다를 누비는 탐험가가 되어 모험심을 기르기도 했다. 비록 그것이 게임화되며 많이 단순화되긴 했을지라도, 게임의 경험이란 결국 그것의 원본이 되는 실제 세상의 경험을 정제해낸 것이기 때문에, 게임을 통해 길러진 마음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도움을 줬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즘에는 게임이 매체적으로 훨씬 성숙해져서, 내가 어릴 적 하던 게임들보다 훨씬 다양한 현실세계의 경험을 게임화한 작품들이 많다. 플레이어는 이름 모를 순례자가 되어 인생의 목표를 향한 여정을 떠날 수도 있고, 폐쇄적인 국가의 입국 검사관이 되어 다양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을 검열하며 도덕적인 딜레마를 겪을 수도 있고, 가상현실에서 사람들과 낚시를 하며 요트를 사고 자신만의 별장을 꾸미는 디지털 한량이 될 수도 있으며, 전쟁 중인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하는 민간인 생존자가 될 수도 있다. 게임을 통해 내가 현실세계에서 되어보지 못한 누군가의 입장에 설 때마다, 타인을 좀 더 이해할 수 있고, 세계를 좀 더 촘촘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게임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힘을 얻는 것뿐이 아니라, 게임을 통해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일로도 이어질 수 있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