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27 발리에서 첫 스피어피싱 경험
발리에 오면 꼭 해보고 싶은 것 중 하나가 바로 스피어피싱이었다. 발리에서 작살총으로 거대한 물고기를 잡고 그릴에 구워 먹는 영상을 보며, 저걸 해 봐야겠다는 나름의 로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평소 바다에 들어가면 바로 앞에서 알짱거리는 물고기들을 작살총만 있으면 다 잡을 것 같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불법이라 제대로 해볼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길리 섬에 도착하자마자 눈에 띈 스피어피싱 트립을 예약했다. 직원은 ‘오, 이걸 해보겠다고? 좋아 어디 한번 가보라고.’ 하는 느낌으로 예약을 받았다. 그리 하는 이가 많지 않은 도전적인 액티비티인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다음 날 아침 일찍, 만선의 꿈을 꾸고 호기롭게 배를 타고 나가, 기본적인 설명을 듣고 묵직한 작살총을 들고 깊은 바다 한가운데로 뛰어들었다.
한 발을 쏘기가 매우 조심스러웠다. 물고기가 도망치지 않게 조심조심 바닥까지 내려가서, 작살을 쏘기 좋은 각도와 거리 안까지, 내 숨이 남아 있는 시간 안에 타깃이 들어와 주는 여러 조건이 만족되기란 쉽지 않았다. 작살총 한 발을 쏘면 재장전이 꽤 복잡한 것도 이유였다. 줄이 꼬이지 않게 작살을 회수해서 올바른 방향으로 총에 꽂아 넣고, 작살에 연결된 줄을 일련의 순서대로 방아쇠에 돌려 감은 후, 두 고무줄을 하나씩 힘껏 당겨 걸이에 걸어야 한다. 이를 바닥이 보이지 않는 물 위에서 다리를 계속 저으며, 스노클로 호흡하면서, 물속에서 흐느적거리는 줄이 꼬이지 않게 하며 수행한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3~4번 쏘고 나니 조금 익숙해져서 혼자 재장전까지 할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호흡이 문제였다. 물고기가 떼를 지어 지나가지만, 근처로 가려고 발을 젖다 보면 어느새 다 도망쳐 버렸다. 바닥에 있는 몇몇 종들은 겨우 내려가면 얄밉게도 자기들이 만들어놓은 구멍이나 산호촉 속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함께 온 가이드이자 버디를 보니, 움직임을 최소한으로 하고 바닥까지 내려가서, 마치 가오리처럼 납작하게 엎드려 거의 최대 1분 정도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쏘던데, 난 10초 정도만 있어도 숨이 차 올라오기 바빴다. 물이 깊을수록 체류 시간은 더욱 줄어들 수밖에 없어서, 수심이 10~12미터 정도 되자 내려가는데 힘을 쓰다 보면 바닥에서 버틸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어 다시 허겁지겁 올라오기 바빴다.
공포심과 싸우는 것도 큰 부분이었다. 버디가 바로 옆에 붙어 편안하게 숨을 쉬며 유영하는 스쿠버 다이빙과, 혼자 혈혈단신으로 스피어건을 들고 바닥이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에 산소통 없이 내려가는 것은 전혀 다른 경험이었다. 어떤 포식자가 있을지 모르는 미지의 공간에 떨어져 호흡마저 제한된 상태로 위험에 완전히 노출된 사냥감이 된 듯한, 원초적인 공포감을 느끼지 않으래야 않을 수 없었다. 바닥이 보이지 않는 것도 큰 공포였다. 평소에 바다에 물질을 하러 갈 때도 늘 느꼈던 것이지만, 깊은 것보다 바닥이 보이지 않는 것이 훨씬 무서웠다. 아무리 깊어도 쨍하게 보이는 바닥은 높이에 대한 공포만 익숙해지면 수영장 바닥처럼 내려갈 수 있지만, 깊이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는 뿌연 물은 불확실성에 대한 원초적인 미지에 대한 공포를 준다. 어떤 영상에서 봤던 것처럼, 저 희미한 물 뒤에서 갑자기 거대한 백상아리가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굳이 하지 않으려 애썼다. 그럴 때면, ‘내가 포식자다. 무서워할 건 내가 아니라 쟤들(바다 생물들)이다.’라고 되뇌며 평정심을 유지하려 애썼다.
하지만 그런 공포심을 조금만 극복하고 아래로 내려가다 보면, 이를 상쇄하고 남을 광경이 펼쳐졌다. 수면에서 내려다보면 산란되는 수많은 빛줄기가 발아래로 길게 뻗어내려 간다. 다큐멘터리에서나 보던 신비로운 광경이지만, 그 긴 빛줄기가 닿는 바닥이 보이지 않아 한편으로는 무섭기도 하다. 하지만 조금만 내려가다 보면 부유물 층을 지나면서 뿌연 색이 사라지고 시야가 맑아지며 물도 약간 차가워진다. 그 상태에서 주위를 돌아보면 마치 수족관 안에 들어온 것처럼 주위 모든 것들이 쨍하게 보인다. 바닥에 수없이 붙어 있는 푸른 산호초들도, 형형색색의 물고기들도 더욱 선명히 보인다. 수면 위를 보면 산란되는 하늘의 모습과 빛줄기도 그저 아름답게 느껴지고, 점점 무서움보다 황홀함이 마음을 채우기 시작한다. 같은 것이라도 보는 시점에 따라 이렇게 달라 보이는 것이 신기했다.
내려갔다 올라오는데 조금씩 익숙해지자 프리다이빙을 할 때 마인드 컨트롤이 중요하다는 말이 체감이 됐다. 사실 수영장에서 혼자 숨을 참으면 최대 2분 까지는 버틸 수는 있지만, 여기서는 30초도 버거웠다. 내려가기 위해 킥을 하려고 하면 할수록 호흡을 하고 싶어 졌고, 바닥에 오래 있지 못했다. 하지만 내려가려고 애쓰지 않고, 그냥 움직임을 최소한으로 하며 천천히 가라앉는다는 느낌으로 있자 그다지 숨이 차지 않았다. 마치 수영장에서 숨을 참고 있듯, 발 밑 풍경을 바라보며 수중 어느 정도 깊이에서 떠 있자 물속이 한결 편안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런 느낌으로 내려가면 더 오랜 시간 버틸 수 있었다. 다시 올라올 때도 빨리 숨을 쉬고 싶어 발을 빠르게 젖다 보면 더 숨을 쉬고 싶어지고, 더 힘들었다. 대신, 올라올 때도 '편하게 있다 보면 언제가 수면에 닿겠지…' 하는 느낌으로 아주 천천히 킥을 하다 보면 편안하게 수면까지 다다를 수 있었다.
호기롭게 시작한 첫 스피어피싱 성적은 총 7번의 슈팅, 유효슈팅 1, 득점 0이었다. 한 마리, 작은 물고기를 맞추기는 했지만, 올라와 보니 작살을 빠져나가 있었다. 다행히 함께 간 버디가 통통한 생선을 다섯 마리나 잡아 준 덕분에 이후 숯불 그릴에 구워 먹을 수 있었다. (참고로 열대 지역 생선은… ‘이게 맞나?’ 싶은, 물음표가 느껴지는 맛이었다.) 결과적으로 스피어피싱으로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지만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굳이 뭔가를 잡지 않아도 거대한 바다에 내려가는 경험 자체가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어떻게 보면 프리다이빙을 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날 저녁, 살짝 취한 채 낮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몽롱한 상태에서, 머리 위로 아득히 펼쳐진 푸른빛 아래 산호초 바닥에 엎드려 있는 나의 모습이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다. 마치 꿈속의 장면처럼, 이 이미지가 오랫동안 강렬한 잔상으로 남을 것 같았다. 공포와 신비함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며 평온함을 유지하는 것. 아마도 그런 마음가짐이 물속에 들어가기 위해서만 필요한 것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