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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화 Feb 14. 2022

종종 꾸는 꿈

2020.07.29 태백 한달살이를 하던 어느 날 꿈을 꾸고 나서의 기록

  종종 꾸는 꿈이 있다. 그 꿈에서 주로 난 고등학교의 교실에서 수업을 들으며 빼곡한 시험 문제를 풀고 있다. 문제는 하나같이 배배 꼬아 놓아서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깨닫는다. '아, 나 대학에 대학원까지 졸업했지?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지? 이거 풀어봐야 무슨 소용이지?' 그리고 곧 밀려오는 답답함, 분노, 현타에 시험을 때려치우고 교실을 박차고 나간다.


  10여 년 전부터 종종 이런 꿈을 최소 10번은 넘게 꾼 것 같다. 나는 꿈의 의미나 해몽 따위는 별로 믿지 않지만, 어떤 꿈이 오래전부터 자꾸 반복된다면, 그 의미에 관심을 좀 가져줘야 할 것 같다. 처음에는 마치 군대를 다시 가는 꿈처럼, 수능이 트라우마로 남아서 다시 꾸는 것이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난 한 번에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고, 이후 수능이란 단어는 곧바로 인생에서 지워버렸기 때문에 그것이 트라우마로 남을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꿈은 다른 것과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어젯밤에는 10년 전에 만든 한 게임의 리마스터의 무료 버전에 달린 몇몇 유저들의 불만을 해소하고자 업데이트 작업을 하고 있었다. 간단할 줄 알았던 작업이 들어갈수록 복잡하고, 복잡하고, 복잡했다. 어느 정도 하다가 도저히 하고 싶지 않아서 유튜브나 보면서 딴짓을 하다가 잠이 들었다.


  사실, 얼마 전부터 그 꿈의 의미를 확신하고 있다. 일찌감치 마무리하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어야 하지만, 과거가 족쇄가 된 듯 그 게임을 놓지 못하고 패치에, 업데이트에, 포팅에 끊임없이 스스로를 밀어 넣고 있는 자신에게, 이제는 제발 좀 그만하라고 무의식이 소리치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30대 중반인 내가 고등학교 시험을 치고 있는 것 같은 상황과 동일한 것이다.


  다들 앞으로 나아가는데, 나는 뒤로 향하는 러닝 머신 위에서 제자리걸음하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 떠오른다. 그것은 딱히 그 게임만이 아니라, 새로운 멋진 게임을 만들어서 과거의 영광을 되찾고자 하는 모습을 포함한다. 얼마 전 읽은 한 책에서, 그런 모습이 바로 자아의, 에고의 모습이라고, 스스로를 파멸로 몰아넣지 않기 위해 반드시 경계해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나에게 필요한 말들인 것 같아 전 책을 필사까지 했지만, 여전히 에고는 나에게 진하게 새겨져 있는 듯하다.


  얼마 전부터 강원도 태백이라는 곳에서 한달살이를 하고 있다. 왜 그까지 갔느냐고 하면 새 게임 작업에 집중하기 위해서라고 했지만, 사실상 한 달의 4분의 3이 지나도록 새 게임은 건드리지도 못했다. 어쩌면 그보다 중요하고 나에게 필요했던 것은 이 마음의 불협화음을 정리하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그토록 좋아하던 게임 만들기가 손에 잡히지 않은 지 오래됐다. 의식과 무의식이 서로 싸우고 있으니, 하는 일에 신이 날 수가 없었던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


  마치 긴 터널 같은 이 상태를 언제 빠져나올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문제를 인식하는 것이 해결의 출발점일 것이다. 아니 사실 인식은 한 지는 꽤 됐지만,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보여줌으로써 그 공백을 숨기려고 한 내 모습이 있었음을 고백한다. 인식을 넘어 인정함으로써 출구에 조금 더 다가섰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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