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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인간이 만든 가장 오래된 이야기

있어 보이는 게임 잡학 #1

by 박루디

어린아이가 모래성을 쌓고 나뭇가지를 휘두르며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울 때, 그 순간엔 어떤 목적도 필요 없다. 그저 재미있으니까. 하지만 이 단순한 감각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인간은 왜 놀이를 즐길까? 또 그 놀이는 어떻게 발전해 왔을까?



게임의 시작, 인간의 시작


‘놀이’와 ‘게임’은 같은 듯 다르다. 우리는 일상에서 두 단어를 혼용하지만, 학문적으로는 구별해서 사용한다. 놀이는 규칙이 없는 활동이며 게임은 일정한 규칙과 목표를 갖춘 활동이다. 예를 들어 아이가 공을 차며 노는 것은 놀이지만, 두 명 이상이 모여 골을 넣으면 점수를 얻는다는 규칙을 정하면 게임이 된다.


놀이에서 게임으로 발전하는 과정은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다.
고대 이집트에서 즐기던 보드게임 세네트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게임 중 하나로 꼽힌다. 기원전 3100년경의 유적에서 발견된 이 게임은 파라오들의 무덤에서도 출토될 만큼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비슷한 시기,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우르의 왕실 게임이 유행했다. 전략과 규칙을 갖춘 이 게임은 인간이 사회적 관계를 맺으며 사고하는 방식을 발전시키는 데 기여했다.

인간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얻을 수 있는 재료로 게임을 변화시켜왔다. 돌과 나무 조각으로 바둑과 장기를 만들었고 종이가 발명된 후에는 카드 게임이 탄생했다. 산업혁명 이후에는 금속과 플라스틱을 활용한 보드게임이 등장했고 20세기 중반 전자 기술이 발전하면서 디지털 형태로 변모했다.



게임,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다


학자들은 인간이 놀이와 게임을 즐기는 이유에 대해 다양한 이론을 제시했다.

철학자 프리드리히 실러는 인간이 ‘잉여 에너지’를 해소하기 위해 놀이를 한다고 보았다. 이후 허버트 스펜서가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잉여 에너지 이론'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 이론은 어린이가 피곤한 상태에서도 놀이를 지속하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는 한계를 가진다.

이에 반해 칼 그로스는 놀이가 생존을 위한 연습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동물들이 놀이를 통해 사냥, 도주, 싸움 같은 생존 기술을 익힌다고 설명한다. 인간 또한 어린 시절 놀이를 통해 현실에서 필요한 기술을 연습한다고 보았다. 하지만 이 이론은 성인이 된 후에도 지속되는 놀이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심리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놀이를 심리적 관점에서 해석했다. 그는 놀이가 무의식적인 욕망을 표출하고 억압된 감정을 해소하는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그의 정신분석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놀이를 통해 갈등을 해소하고 심리적 안정을 찾는다. 하지만 놀이가 반드시 치료적 기능만을 가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논란이 있다.

사회학자 에릭 에릭슨은 놀이를 ‘사회적 역할 학습’의 도구로 보았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타인과의 관계를 배우고 사회적 규범을 익히며 자아 정체성을 형성한다고 주장했다. 이 이론은 놀이가 일차원적이고 개인적 경험이 아니라 사회적 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현대 게임 이론을 연구하는 기획자 예스퍼 율은 게임을 고정된 규칙 속에서 이루어지는 구조화된 놀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게임이 규칙과 허구가 결합된 것이라고 보았다. 예를 들어 바둑은 규칙이 명확하지만 허구적 요소가 없다. 반면 롤플레잉 게임은 규칙과 가상의 세계관을 모두 갖추고 있다.


이 모든 이론을 하나로 묶어 보면 결국 게임은 인간이 더 나은 삶을 살아가기 위한 본능적인 활동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우리는 게임을 통해 신체를 단련하고 세상을 이해하며 타인과 연결된다. 마치 아이가 술래잡기를 하며 전략을 배우고 장난감 병정으로 세상을 탐구하는 것처럼.



게임, 인간이 만든 가장 오래된 이야기


고대인들이 밤하늘 아래에서 조약돌을 굴리던 순간부터 우리가 손끝으로 컨트롤러를 움직이는 지금까지 게임은 계속해서 우리와 함께해 왔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놀이를 하고 자라면서 게임을 배우며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게임을 즐긴다. 보드게임이든 스포츠든 비디오 게임이든 상관없다. 우리는 게임을 통해 더 나은 자신이 되고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한다.


게임은 단순한 오락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자, 인간이 만든 가장 오래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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