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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우리를 게임에 뛰어들게 하는 마법

있어 보이는 게임 잡학 #2

by 박루디

우리는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재미를 찾는다. 게임을 할 때, 영화를 볼 때, 친구들과 대화를 나눌 때, 우리는 늘 재미를 추구하고 몰입한다. 그런데 이 재미란 대체 뭘까? 우리는 왜 재미를 원하고 게임은 어떻게 우리를 재미있게 만드는 걸까?



재미는 어디서 왔을까?


재미의 개념은 시대와 문화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정의되어 왔다.

일례로 영어 'Fun'은 바보짓이나 속임수를 의미하는 속어에서 비롯되었으며 이후 즐거운 경험이라는 뜻으로 변화했다는 설이 있다. 독일어 'Spiel'은 놀이와 더불어 연극, 경기라는 뜻도 가지고 있어 재미를 추구하는 행동인 놀이가 경쟁과 역할 수행까지 포함하는 개념임을 보여준다. 프랑스어 'Jeu'는 놀이와 스포츠 심지어 예술적인 표현도 아우른다. 이처럼 언어는 재미가 단순한 감각적 즐거움을 넘어 인간의 경험과 가치를 반영하는 중요한 개념임을 넌지시 속삭인다.


철학자들은 재미를 삶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로 바라봤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 선(善)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유희가 필수적이라고 보았다. 그는 놀이가 삶을 풍요롭게 만들고 궁극적으로 행복을 실현하는 요소라고 말했다. 니체 역시 인간이 재미를 좇으며 생겨난 창조성으로 삶의 의미를 발견한다고 보았다.


역사학자 요한 하위징아는 인간을 노는 존재, 호모 루덴스(Homo Ludens)로 정의하며 유희가 문화의 기원이자 발전을 이끌어가는 힘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언어, 철학, 역사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존재감을 드러낸 재미는 어디에서 온 걸까? 과학적 관점에서 보면 재미는 인간의 생존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우리가 무언가를 성취했을 때 느끼는 쾌감은 '도파민 폭발'이나 '도파민 중독' 같은 말로 한결 친근해진 신경전달물질, 도파민과 관련이 깊다. 도파민은 목표를 달성했을 때 분비되어 기쁨을 느끼게 한다. 인간이 계속해서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고 배움을 지속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연구에 따르면 게임을 할 때 도파민 분비량은 현실에서 보상을 받을 때와 유사한 수준으로 증가한다. 다시 말해 우리의 뇌는 게임 속 가상의 목표를 이루는 것을 마치 현실처럼 받아들이고 그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낀다.

이때 중요한 것이 '보상 예측'이다. 우리가 예상한 것보다 더 큰 성취를 이루면 도파민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반대로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분비량이 감소한다. 게임이 재미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이를 '몰입'이라는 개념을 들어 설명했다. 난이도가 너무 낮으면 지루하고 너무 높으면 포기하게 되지만, 적절한 도전과 성취의 조화가 이루어지는 순간 우리는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게임에 빠져든다는 것이다.



재미의 네 가지 얼굴


한편 사회학자 로제 카이와는 놀이의 구조를 분석하며 인간이 재미를 느끼는 방식을 네 가지 유형으로 구분했다.
첫 번째 유형은 아곤(Agon)으로 경쟁을 통해 재미를 추구하는 것이다. 체스나 스포츠처럼 기술과 전략을 겨루며 승패를 가르는 과정에서 참가자는 자신의 실력을 증명하고 성장하는 성취감을 느낀다.
두 번째 유형은 알레아(Alea)로 운에 의해 결과가 결정되는 것이다. 주사위 놀이, 복권, 카드 게임은 참가자의 기술보다 우연성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이처럼 알레아는 통제할 수 없는 요소에 대한 기대와 긴장감을 동반하며 예측 불가능한 결과 속에서 짜릿한 감정을 경험하게 만든다.
세 번째 유형은 미미크리(Mimicry)로 역할을 맡아 다른 존재가 되어보는 것이다. 연극, 코스프레, 롤플레잉 게임 등이 이에 해당한다. 사람들은 현실에서 벗어나 다른 인물이 되어보는 과정에서 몰입감을 느끼며 상상의 세계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탐색하는 재미를 경험한다.
마지막 일링크스(Ilinx)는 감각적 쾌감을 동반하는 유형으로 롤러코스터를 타거나 빙글빙글 도는 놀이처럼 일시적인 균형 상실과 혼란 속에서 강렬한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다. 빠른 속도, 높은 곳에서의 낙하, 어지러움 등은 위험과 스릴을 동반하며 인간이 본능적으로 짜릿함을 추구하는 경향을 보여준다.
많은 게임은 이 요소를 복잡하게 얽는다. 예를 들어 온라인 게임에서는 경쟁과 역할 수행 그리고 운이 결합되며 일부 콘텐츠에서는 감각적 쾌감까지 더해진다. 카이와의 분석은 우리가 왜 게임을 즐기는지, 어떤 요소가 플레이어를 끌어들이는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또 카이와는 사람들이 크게 두 가지 원동력으로 재미를 찾아 나선다고 보았다.
첫 번째는 파이디아(Paida)로 자유롭고 즉흥적인 에너지를 뜻한다. 아이들이 규칙 없이 뛰어놀거나, 앉은자리에서 만들어가는 놀이처럼 구조보다는 창의성과 감각적 즐거움이 중심이 된다. 파이디아적 재미는 본능적이고 자발적인 형태로 나타나며 제한 없이 흐르는 자유로운 경험 속에서 인간은 가장 원초적인 즐거움을 찾는다.

반면 루두스(Ludus)는 규칙과 도전에 기반한 에너지로 체계적인 규칙을 따르며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 중요하다. 체스처럼 복잡한 전략이 필요한 게임, 레벨업과 퀘스트 수행을 기반으로 하는 MMORPG(Massively Multiplayer Online Role-Playing Game, 대규모 다중 사용자 온라인 역할 수행 게임)등에서 루두스를 찾아볼 수 있다. 이런 형태의 놀이에서는 승리, 성취, 정교한 계산과 계획이 중추적인 역할을 하며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이 깊은 몰입감을 제공한다.

현대의 게임에서는 이 두 가지 요소를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다. 예대 수많은 지형지물을 자유롭게 탐색할 수 있는 오픈월드 게임에서는 파이디아적 요소가 강조되고 전략과 규칙이 중요한 e스포츠에서는 루두스적 요소가 강하게 나타난다. 결국 재미는 인간이 놀이 속에서 규칙과 자유를 넘나들며 끊임없이 탐색하는 과정에서 탄생하는 것이다.



우리가 만들고 즐길 재미는 무엇일까?


우리는 어떤 종류의 재미를 원할까? 경쟁에서 오는 쾌감일까, 아니면 우연이 만들어내는 긴장감일까? 몰입을 통한 또 다른 자아의 경험일까, 감각을 뒤흔드는 강렬한 자극일까?

게임을 기획하는 것은 곧 우리가 어떤 재미를 만들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이다. 그리고 게임을 즐기는 것은 우리가 어떤 재미를 원하는지 탐색하는 과정이다. 우리는 게임을 통해 다양한 재미를 경험하며 때로는 현실에서 부족했던 감각을 채우고 새로운 세상을 탐험하면서 또 다른 자신이 되어본다. 그리고 그 재미 속에서 또다시 새로운 놀이를 만들어간다.


당신은 어떤 재미를 찾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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