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그손 <물질과 기억> 수업 후기 (19)
현실 감각은 무엇일까?
너는 현실 감각이 없어. 너는 너무 이상주의자야. 부모님, 애인, 선생님, 친구들이 나에게 말했다. 아주 어렸을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들어왔던 평가였다. 한번도 그것에 대해 깊게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 사람들이 내게 말했던 '현실 감각'이 무엇일까?
베르그손은 '역 원뿔 도식'을 통해 '잘 균형 잡힌' 정신이 무엇인지 설명한다. 그가 말하는 '잘 균형 잡힌' 정신은 현실 감각이 있는 정신을 말한다. 즉, 삶을 살아가는 '지혜'가 있는 정신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잘 균형 잡힌' 정신, 즉 삶에 완벽하게 적응한 사람들을 알아보는 것은 ... 이 두 상호보완적인 기억이 서로 맞아들어가는 정확성에서 오는 것 아닌가?『물질과 기억』 앙리 베르그손
베르그손에 따르면 잘 균형 잡힌 정신, 즉 현실 감각이 있는 정신은 두 상호보완적인 기억이 서로 정확하게 맞아들어갈 때의 정신을 말한다. 여기서 '두 상호보완적인 기억'은 '습관기억'과 '순수기억'을 의미한다. 우리들의 기억 (전체기억, 원뿔 SAB)는 순수기억, 상기억, 그리고 습관기억으로 이루어진 역 원뿔이다. 원뿔의 밑면인 순수기억 (원 AB)은 무의식 속에 존재하는 뿌연 기억들이다. 이 기억이 현재의 특정한 마주침으로 인해 의식화되면 상기억 (원 A'B', 원 A''B'')의 형태로 존재하게 된다. 상기억이 실제로 운동으로 나타날 때, 즉 행동의 평면 (P)와 맞닿을 때, 우리의 신체는 그 기억을 현실화시키는 행동을 하게 된다. 습관 기억 (S)은 전체기억이 하나의 점으로 응축된 결과이다.
베르그손은 잘 균형 잡힌 정신을 설명하기 위해 균형잡히지 않은 정신의 예를 든다. 습관기억에 치우친 사람의 정신 (충동인)과 순수기억에 치우친 사람의 정신 (몽상가)이다.
몽상가 (순수기억)와 충동인 (습관기억)
행동적 인간을 특징짓는 것은 주어진 상황에 도움이 되도록 그와 관계된 모든 기억을 불러내는 신속함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에게 무용하거나 무관심한 기억들은 의식의 문턱에서 넘어설 수 없는 장벽을 만난다. 완전하게 순수한 현재 속에 사는 것, 자극에 대한 그것을 연장하는 직접적인 반응으로 응답하는 것은 하등동물의 고유한 특징이다. 이렇게 처신하는 사람은 충동인이다. 『물질과 기억』 앙리 베르그손
과거 속에 사는 즐거움을 위해 거기서 사는 그런 사람은 행동에 그다지 적응하지 못한다. 그에게 기억들은 현재 상황에 대해 별 이득도 없이 의식의 빛으로 나온다. 그는 더 이상 충동인이 아니라, 몽상가이다. 『물질과 기억』 앙리 베르그손
습관기억에 치우쳐 사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들어오는 자극에 대하여 하등동물처럼 즉각적으로 반응한는 사람이다. 예를 들어, 주어진 상황에 상관 없이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고, 섹스하고 싶으면 섹스 해야하는 사람들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이러한 충동성은 '돈'을 상징한다. 지금은 "돈이면 다 돼!" 라는 구호가 상식이라고 통용되는 시대이니까. 베르그손은 돈만 버는데 혈안이 된 사람들을 충동에만 휩싸여 사는 충동인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삶을 진정으로 풍요롭게 만들어 줄 사랑, 우정, 예술, 철학에 대해 알지 못해 불행해진다.
순수기억에 치우쳐 사는 사람들은 과거 속에 산다. 그들은 행복하고 상처받지 않았던 과거만을 떠올리며 공상하며 사는 몽상가다. 당장 해결해야 하는 생계문제가 닥쳤는데도 돈은 벌지 않고 취미생활을 하거나 여행을 다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불행해진다.
왜 주변 사람들이 나에게 현실 감각이 없다고 말했는지 알 것 같았다. 나는 많은 경우 몽상가에 가까웠다. 현실적인 문제 (돈) 앞에서도 나는 꿈과 이상을 생각하곤 했다. 상식에 약하고 생활력이 없었으며 일상 생활에서 자잘한 실수가 잦았다.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있느라 지하철역을 놓치기 일쑤였다. 지갑과 핸드폰 (너무 자주 잃어버려서 분실신고와 재발급 재구매가 일상이었다), 노트북 (해외 출장 갔을때 회사 노트북을 다른 사무실에 두고와서 비행기 타기 2시간 전에 안 적도 있다), 에어팟 (지금 에어팟이 세번째 구매다) 같은 고가의 물건들을 자주 잃어버렸다. 멍때리고 다니다가 부딪혀서 다치거나 넘어지곤 했다. 돈을 어디에 쓰는지 모른채 통장 잔고가 줄어들었다. 한마디로 나는 굉장히 산만한 사람이었다.
내가 왜 몽상가가 되었는지 알고 있다. 내 기억이 순수기억에 치우쳐 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현실적 조건이 되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부모님의 아낌없는 지원 덕분에 경제적으로 부족함 없이 자랐다. 그렇기에 나에게는 언제나 꿈이 중요했다.
스물 두살쯤, 처음으로 깊이 교제하게 된 남자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는 어린시절 가난했다. 나는 그 친구의 생활력 강한 모습에 매력을 느꼈다. 그 친구가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는 언젠가 우울해하면서 "더 이상 내 힘으로 할 수 있는게 없다고 느낄 때 우울해" 라고 했다. 나는 그의 말이 의아했다. 그 때 당시 나는 내 힘으로 할 수 있는게 있다는 걸 알게 됐을 때 더 우울했기 때문이다.
그 친구와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왔다. 집을 알아보고, 일자리를 구하고, 살림을 꾸려나가고 하는 모든 면모에서 그 친구는 나보다 현실에 훨씬 더 잘 적응했다. 그 친구가 없었더라면 어떻게 타지에서 일년이나 버틸 수 있었을까 싶다. 우리는 종종 싸웠는데, 주된 이유가 바로 '꿈 (경험) vs. 현실 (돈)' 에 대한 주제였다. 그는 현실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호주에 온 이유도 돈을 벌기 위해서라고 했다. 나는 꿈과 경험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호주까지 왔는데 돈만 벌다 갈 수 없다고 했다.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다.
호주 여행을 마치기 전, 우리는 로드트립을 계획했다. 서호주부터 호주 중앙 그리고 멜버른까지 가는 나름대로 대장정이었다. 여행기간을 결정하는 것부터 갈등이 생겼다. 그는 최대한 짧게 가고 싶어 했고 나는 최소 한달은 여행을 다니고 싶었다. 그가 그런 주장을 했던 이유는 돈 때문이었다. 일년이나 허비했는데 돈을 조금이라도 모아가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 나는 일년을 허비했다고 하는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나에게는 돈보다 경험과 여행이 더 중요했으니까.
결국 우리는 2주라는 기간으로 합의를 했다. 다음은 이동수단이었다. 나는 캠핑카를 타고 가고 싶었다. 캠핑카를 그냥 대여하면 굉장히 비싸다. 생활력 강한 그가 묘수를 냈다.그는 이런 가정을 했다. 퍼스에 있는 렌트카 업체에서 누군가 멜버른까지 편도로 차를 타고 갔다면, 그걸 다시 리턴해주는 사람도 필요하지 않을까? 검색해서 찾아보니 그런 일을 일반인들이 대행하게 해주는 서비스가 있었다. 그것도 굉장히 싼 값에 말이다. 우리는 덕분에 저렴하게 호주 대륙을 횡단할 수 있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그는 금융공학을 공부하기 위해 대학원에 갔다. 그 친구의 가족들을 만나보고 그가 왜 그렇게 현실적이 될 수 밖에 없었는지, 왜 그렇게 악착같이 살아왔는지, 어떻게 그렇게 책임감이 강할 수 있었는지 알 것 같았다. 반대로 나의 환경을 돌아오면서 내가 왜 그리 현실 감각이 없었고, 의존적이며, 책임감이 없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 친구는 충동인이었을까? 아니었다. 분명 돈에 많이 매여 있긴 했지만 마음속의 꿈을 놓지 않았다. 그는 로드 트립을 갈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을 찾아냈다. 기타를 좋아했던 그는 아직까지도 자신이 만든 밴드에서 기타를 연주하고 곡을 만들고 공연을 하며 살고 있다. 그는 적어도 나보다 현실감각이 있는, 즉 '잘 균형 잡힌' 정신으로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뜬구름 잡는 꿈에서 진짜 꿈으로
그 두 극단 사이에 현재 상황의 윤곽을 정확하게 따라갈 만큼은 충분히 유연한, 그러나 모든 다른 부름에는 저항할 만큼 충분한 힘을 가진 기억의 적절한 대비 상태가 존재한다. 양식, 또는 현실 감각은 이와 다른 것이 아니다.『물질과 기억』 앙리 베르그손
다시 일상과 꿈 중에서, 꿈을 쫓겠다며 퇴사를 했다. 퇴사를 하고 초반 2~3개월은 좋았다. 마음껏 책을 읽고, 글도 쓰고, 철학 수업도 듣고, 영화도 보고, 여행도 다니고, 하고 싶었던 취미도 시도해보고, 그 동안 못 만났던 사람들도 만났다. 그런데 그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통장 잔고가 줄어들자 불안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여전히 몽상가적인 기질이 다분했던 나는 아무런 준비 없이 퇴사를 한 셈이었다. 수중에는 고작 퇴직금 뿐이었다.
그맘때쯤 스승의 베르그손 연재에 한창 '충동인'과 '몽상가' 에 대한 글이 올라오고 있었다. 나의 꿈은 '뜬구름 잡는 꿈' 이었다. 주변에 '진짜 꿈' 을 꾸는 친구들이 보였다. 더 잘 준비해서 슬기롭게 퇴사한 친구들, 직장 생활을 견디며 하고 싶은 일을 어떻게든 해내는 친구들, 지금 당장 이루고 싶은 꿈은 없지만 착실하게 직장에 다니면서 꿈을 찾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친구들이 있었다. 직장을 핑계로 꿈을 이루지 못한다고 핑계댄 것은 아닌지 부끄러웠다.
종의 변형은 언제나 그것들의 특별한 이익에 의해 설명될 수 있다. 『창조적 진화』 앙리 베르그손
'꿈의 실현'은 '진화'이다. 사람들이 꿈을 이루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억이 과도하게 습관기억에 쏠려 있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그런 경우 자신의 순수기억 속 꿈이 무엇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순수기억을 통해 꿈에 대한 어렴풋한 상을 발견했다고 해도 이것을 이루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잠재적 상 (순수기억)을 현실적 상으로 실현시키는 것은 종의 변형, 즉 진화를 의미한다. 그것은 반드시 그 종에게 있어 특별한 이익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특별한 이익의 가장 최소한의 단계는 바로 최소한의 생계 유지일 것이다.
돈을 벌어야 했다. 순수기억을 뒤졌다. 글을 쓰는 시간과 에너지를 확보할 수 있는 일이어야 했다. 십여년 전, 대학시절 카페알바를 하며 즐거웠던 기억이 났다. 이십대때 이디야와 탐앤탐스에서 주말 알바를 했고 호주에서 세차장에서 캐시잡을 할 때 캐셔를 보며 커피를 내렸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커피를 좋아하기도 했고 (맛을 구분할 정도는 안되었지만), 카페에서 일을 하며 함께 일하던 동료들과 즐겁게 일했던 기억이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었다.
동네에 있는 카페에 지원을 했다. 하루 두 시간의 아르바이트라 벌이는 얼마 안되지만 우선 시작이라도 하는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아침부터 오전까지는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오후 12시부터 2시, 카페에 출근하기 시작했다. 점심시간, 카페인을 찾아 몰려드는 직장인들의 주문을 쳐내다보면 두 시간이 후딱 갔다. 커피와 음료를 만드는건 재밌었다. 그래. 나 누군가를 위해 음료를 맛있고 예쁘게 제조해주는 걸 좋아했었지. 크리미한 갈색 크레마가 올라간 샷을 일정하게 내리는 것. 물이나 우유에 얹을 때 아지랑이처럼 퍼져가는 모습. 고소한 커피원두향. 비록 가격이 저렴하더라도, 손님은 신경쓰지 않을지 몰라도, 미묘한 디테일에 따라 보이는 것도 맛도 조금씩 달라진다는 것을 옆에서 보며 배우게 된다. 이십대때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고작 10평 남짓의 작은 점포를 운영하는 데에도 얼마나 많은 노고가 드는 일인지 어렴풋이 느껴졌던 기억이 났다.
작년 겨울, 친구가 부탁을 해 왔다. 친구 어머님을 뵈러 지방에 내려가 있는 동안 키우는 강아지를 돌봐줄 수 있냐는 부탁이었다. 강아지는 은퇴 안내견이어서 착하고 순했다. 장애인에게 봉사하도록 길러져서 기본적인 욕구를 참도록 훈육되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친구를 보면서 내가 예전에 길렀던 강아지가 생각났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으로 길렀던 시츄였다. 나는 그 아이를 소중히 대해주지 못했었다. 그 아이의 죽은 몸, 딱딱하게 굳은 몸이 생각났다.
종종 친구의 강아지를 잠시 맡아주고 목욕을 도와주었다. 처음 키웠던 강아지에게 너무나 미안했던 것은, 산책을 그렇게 좋아하던 아이인데 그 오랜 기간동안 산책을 거의 시켜주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 아이는 항상 잠을 잤다. 기운이 없고 무기력하고 무감각해 보였다. 나는 그 아이를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았을 뿐 진짜 사랑해준 적이 없었다.
강아지 산책 알바를 하고 있다. 보호자들 중에서는 너무 많은 개를 키워서 혼자서 다 산책시키기 어렵거나 몸이 불편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과거의 나처럼 자신이 산책시키는 수고를 감당하고 싶지 않아서 돈을 주고 맡기는 경우가 많았다. 뒷산 산책을 하며 머리를 식히거나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는게 좋다. 강아지는 다시 인형이 되었다. 돈을 받으면서도 그 상황이 참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했다.
호주에 있을 때, 물류 창고에서 재고관리를 하는 일을 했었다. 첫 오지잡이었다. 그 때 처음으로 그 일로 돈을 벌며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났다. 당시 나는 스물 다섯쯤이었는데, 나보다 어려보이는 아이들부터 해서 백발의 할아버지 할머니들까지 있었다. 그 때까지 나의 세상에 '밥벌이로서의 일'로는 화이트칼라를 연상시키는 직업들밖에 없었던지라 그런 그들의 삶의 모습이 더욱 신기했다. 호주의 최저시급이 한국의 두세배이기 때문에 가능한 삶의 방식이었겠지만 그럼에도 그 일은 다른 직업에 비해 급여가 낮은 일이었다. 그들을 보며 순수 노동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저렇게 즐겁게 살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됐다.
일주일에 하루정도 쿠팡 물류센터 알바를 한다. 물류 일중에서도 비교적 쉬운 공정을 골라 일을 하지만 8시간씩 몸을 쓰는 일이니 쉽지만은 않다. 다행이라면 나는 체력이 강한 편이라는 것이다. 물류센터 일을 하면서 가끔 사람들과 대화를 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본업이 있다고 했다. 참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삶의 방식들이 있다. 이렇게 살면서 느끼는 것은 회사를 다니며 많은 돈을 벌 때보다 덜 부끄럽다는 것이다. 떳떳하게 노동해서 돈을 번다는 느낌이 좋다. 앞으로의 삶에서는 이 느낌에 근접한 삶을 방식을 찾아가고 싶다.
꿈은 꿈꾸지 않는 시간에 결정된다
잠재적 상이 실현되는 과정은 이 상이 몸으로부터 유용한 행동 방식들을 얻는데 이르는 일련의 단계들과 다른 것이 아니다. 『창조적 진화』 앙리 베르그손
요즘 아빠 생각이 많이 난다. 나는 내 삶 하나 책임지는 것도 매일이 수행 같은데 아빠는 어떻게 네 식구의 삶을 짊어졌을까? 아빠에게도 꿈이 있었을텐데. 62년생인 아빠는 아직도 회사에 다니신다. 자꾸만 이명이 들린다고 하셨다. 병원에 가도 그저 '신경쓰지 말라'고만 한다고 했다. 병원에서 주는 약을 먹으면 졸립고 무기력해진다고 했다. 엄마 말로는 우울증 약이라고 했다. 그런 아빠에게 유일하게 이명이 찾아오지 않는 시간이 있다. 주말에 별장에서 농사일을 할 때였다. 하루종일 몸을 움직이며 고되게 일을 하는 동안에는 그 지긋지긋한 이명이 찾아오지 않는다고 했다.
제작년 아빠가 전기기사 자격증을 땄다. 그리고 작년에는 소방설비기사 자격증을 땄다. 아빠는 끊임없이 노후준비를 하신다. 일하는게 좋다고 한다. 예전에는 그런 아빠가 답답했다. 난 어리석었고 철이 없었다. 세상을 완전히 잘못 보고 있던 건 나였다.
올해 1월 1일. 남산에 해돋이를 보러 갔다.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던 해 대신에 한 마디가 대신 새해를 열어주었다. "'하고 싶은 일'들과 '해야 할 일'들을 일치시켜 가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 꿈을 꾸는 사람에게는 꿈이 없다. 꿈꾸지 않는 사람에게는 꿈이 있다. 그 여는 말을 잘 받아서 곱게 간직하다가 한 해가 끝나는 날 부끄럽지 않게 잘 돌려줄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