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그손 <물질과 기억> 수업 후기 (20)
순수기억은 '꿈'의 세계, 습관기억은 '일상'의 세계
한 인간 존재가 자신의 삶을 사는 대신에 그것을 꿈꾸고 있다면, 아마도 그와 같이 그의 과거 역사의 무한수의 세부를 끊임없이 시야에 잡아둘 것이다. 『물질과 기억』앙리 베르그손
반대로 이 (순수)기억과 그것이 낳는 모든 것을 혐오하는 사람은 자신의 삶을 진정으로 표상하는 대신에 그것을 끊임없이 실행할 것이다. 즉, 의식적 자동인형으로서 자극을 적합한 반응으로 연장하는 유용한 습관의 경향을 따를 것이다. 『물질과 기억』앙리 베르그손
베르그손은 원 AB(순수기억)를 '꿈의 평면', 그리고 신체 (S)에 의해 구성된 평면 P를 '일상의 평면' 이라고 말한다. 순수 기억이 강한 사람들은 과거 역사의 무한수의 세부를 끊임없이 시야에 잡아둔다. 현재 처한 자신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모호한 순수 기억의 상태에 집중하게 됨으로써 일상 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어렵게 된다.
반면, 습관 기억이 강한 사람들은 일상의 세계에 살며, 순수기억과 그것이 낳는 모든 것을 혐오한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기를 꺼려하며 끊임없이 일상의 습관적인 활동들을 실행한다. 즉, '의식적인 자동인형'처럼 자신에게 들어오는 자극을 습관적 행동으로 처리해버린다.
직장인 시절, 거래처가 대부분 지방에 있어 외근을 다닐 때가 많았다. 동료와 함께 이동할때면 함께 차나 기차를 타고 이동하곤 했는데 그럴 때면 일에 대한 대화 뿐만 아니라 사적인 대화도 하게 되기 마련이었다. 직장이라는 공간은 전쟁터로 비유되곤 한다. 앞에서는 웃으며 호의적으로 대하던 사람들도 뒤에서는 비난하고 속이고 자기 잇속 챙기는 것이 일상인 공간이다. 내가 다니던 직장도 예외가 아니었다. 대화에서 다른 직장 동료의 험담과 뒷담화가 빠지지 않았다. 그 중에서 유달리 뒷담화가 심했던 동료가 있었다.
그 직장 동료는 깡시골에서 나고 자랐다고 했다. 그는 머리가 좋았다. 오로지 자신의 노력만으로 국내에서 가장 좋은 대학에 진학했고 졸업시기즈음 어쩌다가 선배의 소개로 인해 업계에 진입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는 그 누구보다 이 업계를 벗어나고 싶어했다. 내가 봤던 그는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실리적이지 않은 일을 하는 것을 싫어했다. 직접 현장 일선에 나가 일이 이루어지게 하는 '일 다운 일' 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를 제외한 사람들은 보여주기 식 업무로 시간만 때우거나, 본사에게 잘보이기 위한 프로젝트만 열중하거나, 관계 위주의 영업을 하기에 바빴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다른 사람에 비해 자신이 더 많이 일을 하는데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는 피해의식에 휩싸여 있었다.
그와 함께 외근을 갈 때면 귀에 피가 날 정도로 타직원들의 험담을 들어야 했다. 대부분의 그의 피해의식들은 '돈' 에 얽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직장동료는 어릴적부터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았던 것 같았다. 모든 정신적인 가치들을 돈으로 환원시키는 그를 보면서 처음에는 혼란스러웠다. 그는 사치를 부리지도 않았으며 동료들 중 누군가가 어려움에 처하면 츤데레처럼 굴면서도 가장 먼저 나서서 도와주곤 했기 때문이었다. 직장 일 외에 다른 취미라고는 없는 타 동료들과는 달리 그는 평소에도 운동을 즐겨했다. 운동의 종류도 흔히 영업용 운동으로 알려진 골프가 아니었다. 야구, 등산, 달리기, 사이클과 같은 운동들이었다. 알고보니 그는 대학시절내내 대학 야구부에서 강도 높은 훈련을 견디며 여러번 대학 리그와 선수권 대회에 출전했던 경험이 있던 사람이었다.
한 때 그는 야구선수가 되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그 시절들을 보내면서 운동에 재능이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보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그런 마음을 접게 되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직장인 야구단에서 매주 운동을 하는 것을 빼먹지 않았다. 내가 가장 놀랐던 것은, 그가 그 야구단 내에서까지 인맥을 만들고 그 인맥을 직장일에 활용하곤 했다는 점이었다. 종종 그가 소개시켜주는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대부분의 경우 그의 취미 생활에서 관계가 시작된 경우가 많았다.
그와 함께 외근을 갈 때면 업무에 관한 대화와 험담 말고도 운동에 관해 대화를 나누곤 했다. 나의 착각일수도 있지만, 직장에 관한 대화를 할 때보다 운동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그 역시도 더 활기차고 즐거워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동료에게 꿈에 대해 물어보았다. 만약에 이 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무슨 일을 하게 되었을 것 같냐고. 그리고 이 일을 하면서 가장 행복하고 즐거웠던 때가 언제였느냐고 말이다. 그는 내가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을 싫어했다. 싫어하는 것을 넘어 혐오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돈'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우리 시대에 '돈'은 생존 뿐만 아니라 사랑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많은 경우 '순수기억'보다 '습관기억'에 치우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습관기억이 더 발달한 사람들을 비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특히 가난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의 경우, 현재 가난하지 않더라도 과거의 기억으로 인한 불안이 얼마나 치명적으로 현재에까지 영향을 미치는지 주변 친구들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느꼈다. 가난으로 불행했던 기억이 없는 나이기에 가난으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들의 삶을 함부로 왈가왈부 할 수 없다.
직장 동료를 보면서 아빠 생각이 났다. 철학을 배우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아빠에게 언젠가 꿈에 관한 질문을 했다. "아빠는 꿈이 뭐였어?" 나는 아빠의 어릴적 꿈이 축구 선수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축구 선수라는 대답이 돌아올 줄 알았다. 그런데 아빠의 입에서 의외의 대답이 튀어나왔다. "아빠는 아이들 여러명 입양해서 키우고 싶었다". 뒤통수를 한 대 얻어 맞은 것 같았다.
아빠와 정치 이야기를 하다가 자주 다투곤 했다. 나와 정치적 입장이 너무 다르기 때문이었다. 언젠가 내가 서운한 마음에 아빠에게 이야기했다. 아빠도 좋은 세상이 뭔지 알지 않느냐고. 아빠에게도 그런 세상을 만들어 나가고 싶은 마음이 있지 않느냐고. 그 때 아빠가 말했다. 아빠는 너무 많이 와버렸다. 지금 다시 되돌리기엔 너무 늦었어. 그 때 깨달았다. 내가 아빠를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아빠의 상처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으면서, 나 혼자 좋은 사람인 척 아빠를 비난하고 싶었다는 것을. 세상을 바꾼다는 것은 한 사람의 마음을 바꾸는 것이다. 한 사람의 마음을 바꾸기 위해서는 내 마음부터 바꿔낼 수 있었어야 했다.
순수기억은 '차이성', 습관기억은 '유사성'
전자(순수기억)는 결코 개별적인 것, 그리고 개인적인 것 밖으로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는 각 이미지에 시간에서의 날짜와 공간에서의 위치를 부여하면서, 그것이 어떤 점에서 다른 것과 다른지를 볼 것이지만, 어떤 점에서 다른 것과 닮았는지는 보지 않을 것이다. 『물질과 기억』앙리 베르그손
반대로 후자(습관기억)는 항상 습관에 이끌리기 때문에 한 상황에서 그것이 이전 상황과 실질적으로 닮은 측면만을 찾아낼 것이다. 『물질과 기억』앙리 베르그손
베르그손에 따르면, 정신이 순수기억에 치우쳐 있는 사람은 개인적인 것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개별적인 감정과 기억에 너무 쏠려 있는 나머지 세상 사람들이 무엇에 관심이 있고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해 관심이 없다. 그들은 자신 앞에 있는 대상이 어떤 점에서 다른것과 다른지만 구별해낼 뿐 어떤 점에서 다른 것과 닮았는지는 보지 못한다. 즉, 그들은 세계의 '차이성'은 볼 수 있지만 '유사성'은 잘 보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공통적인 감각인 상식 (common sense)이 부족한 이유이다.
반대로 정신이 습관기억에 치우쳐 있는 사람은 항상 습관에 이끌리기 때문에 눈 앞의 대상이 다른 대상과 닮은 측면만을 찾아낸다. 즉, 그들은 세계의 '유사성'은 볼 수 있지만 '차이성'은 잘 보지 못하는 것이다. 이들은 사람들을 카테고리화하여 구분하고 분석한다. 모든 인간 관계를 자신에게 이득 (금전적, 정신적, 육체적...)이 되는지 되지 않는지로 판단하는 경우 습관기억이 강한 정신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제작년즈음 황윤 감독의 다큐멘터리 <수라>를 보았다. 자연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아프다는 느낌. 그 느낌을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처음 느꼈다.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 단장으로 활동하고 계신 오동필 단장님은 군산에서 나고 자라서 지금까지 터를 잡고 생활하고 있다. 그는 바닷물이 가로막힌 새만금호에 해수 유통을 촉구하는 운동, 시민들과 일반 사람들이 수라 갯벌을 방문하고 그에 관해 설명을 듣게 하는 체험 운동, 그리고 새만금신공항 취소를 촉구하기 위한 운동을 시위와 서명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 진행하고 있다.
현장에 있으면 일부러 말을 만들어야 할 상황이 와요. 이름이 주어져야 시작되는 싸움이 있거든요. 어떤 고유명사가 퍼지는 과정도 싸움이고요. 특히 장소를 지키려면 그곳의 이름을 기억하는 게 중요하죠.... ('해수 상시 유통'이라는 단어에 대해 설명하며) 그 이름을 걸어야 싸움이 돼요. 운동은 싸움이거든요. 이미 주어진 말의 방향을 틀 수도 있지만, 전혀 새로운 이름을 거는 것도 운동이에요. -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 오동필 단장님 인터뷰, 오마이뉴스 김누리 기자 2025 환경생태 현장르포 2화 中
군산시 옥서면 남수라마을 옆의 이름 없던 갯벌에 '수라'라는 이름을 찾아준 것도 오동필 단장님이라고 한다. '수라'는 '비단에 새긴 수'이다. 이 이름은 지도에 없는 이름이다. 제작년, 다큐멘터리를 보고 무작정 새만금의 '수라'를 찾아 나섰다. 네이버 지도에도, 다음 지도에도, 그 어디에도 '수라' 라는 지명을 찾을수가 없었다. 다큐멘터리에서 봤던 기억 속 풍경을 더듬어 신공항 공사중인 통제 도로 근처를 헤메었다. 갯벌 저 멀리 까만 점점이 새떼가 무리지어 앉아 있었다. 서해 갯벌에 새들이 이렇게 많다는 걸 처음 알았다. 가드레일 너머 무작정 들어가 본 그곳은 바싹 말라 갈라져 있었다. 처음 보는 식물들이 아무렇게나 자라 얽혀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피부 아래로 비쳐 보이는 모세혈관들 같았다. 불어오는 바람을 등져서 피하기 위해 돌아본 하늘 너머로, 새떼가 무리지어 날아오르고 있었다. 아름다웠다. 그리고 욱신거렸다.
함께 갔던 친구가 아쉬워하며 귀가하던 내가 마음에 밟혔던 것 같다. 어느 날 그 친구가 인스타그램에서 '수라갯벌에 들기' 체험에 참가를 모집한다는 게시물을 보내주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기간이 지나 있었다. 풀이 죽어 단념하고 있던 차였는데 갑자기 친구가 기쁜 소식을 전해왔다. 황윤 감독님에게 디엠을 보내서 뒤늦게라도 참가신청을 해서 수락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친구가 나를 언급하면서 감독님에게 사정을 설명했다는것이 감동이었다. 친구에게 참 많이 고마웠다.
그렇게 두 번째 수라 여행을 떠났다. 휴게소에 들렀을 때 우연히 잼버리 축제에 참가하는 세계 각국의 청소년들을 보았다. 그 땐 잼버리 축제가 우리가 지금 향하고 있는 새만금 간척지와 연관이 있을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후에 뉴스에서 이슈가 되는 것을 보고 많은 감정이 들었다. 새만금 갯벌이 사라지면 한국에서만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라 뉴질랜드에 있는 철새군락지에까지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런 이유로 새만금 방조제 사업이 실시될 당시 뉴질랜드 마오리족도 방문해 반대 운동에 참여했다. 다큐에서 그 장면을 보며 호주에서 만났던 뉴질랜드인들과 친해져 그들을 키위 (도요새)라고 놀렸던 기억이 났다. 작년 12월 말, 무안 국제공항에서 조류 충돌에 의해 제주항공 항공기가 추락하여 대참사가 발생했다. 새만금신공항백지화 행동가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수라 근처에 새만금 신공항이 들어선다면 조류 충돌의 위험을 피할 수 없다고 경고해왔다. 세계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 하나하나 사건들의 연결고리를 볼 때마다 숨이 막혔다.
'현실 감각'과 '균형잡힌 정신'은 '사랑'이다.
새들이 갯벌에 없어. 공허감이 밀려와요. 괴롭고 슬프고, 아름다움을 본 죗값을 치르는 것 같아요. 너무 아름다운 걸 봤기 때문에 책임감이 있더라고요. 못 봤고 몰랐으면 나도 그냥 직장 다니고 그랬을 거 같아요. -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의 오동필 단장님 인터뷰, 다큐멘터리 <수라>
'아름다움을 본 죗 값'. 그 말이 날카로운 유리조각이 되어 마음 속 깊숙히 박혀 빠지지 않았다. 모이기로 한 장소에서 오동필 단장님을 만났다. 그 날은 비가 오고 바람이 매섭게 불었다. 그 추위에도 그의 눈은 무언가를 장작삼아 활활 불타고 있었다. 매번 체험때마다 직접 설명을 하신다고 했다. 처음 갯벌에 들어섰을때엔 황무지같은 펄 뿐이라 여기에 뭐가 있을까 싶었다. 점점 안쪽으로 걸어들어가니 숨겨진 수라의 변화무쌍한 얼굴이 드러났다. 습지와 염습지 그리고 초지가 예측할 수 없게 펼쳐져 있었다. 단장님은 앞서 걸으며 설명을 보탤만한 생명의 흔적이 있으면 멈춰서서 연설을 하곤 했다. 풀이나 해초들을 함부로 밟아도 되는건지 걱정됐다.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는지 그는 우리가 밟는 걸음이 생명 다양성이 주어지는 조건이라고 말해주었다. 그것이 회복력을 배우고 기를 틈을 만들어주는 보존 그 자체라고 했다. 인간과 자연이 서로를 적극적으로 누리는 과정이라고 했다.
새들마다 다 먹이 먹는 모습이 달라요. 좀도요같은 경우는, 바닥의 유기물같은걸 먹으니까 천천히 걸어다니면서 톡톡톡톡톡...톡톡톡.. 톡톡톡톡톡.. 이렇게 쪼죠. 그런데 민물도요는 부리가 좀 크지. 부리가 크고, 다리 걷는 폭도 좀 크다보니까 투투툭 툭 툭.. 툭. 툭. 툭툭. 툭.. 이런 식으로, 쪼죠. 뒷부리도요같은 경우에는 뭔가 살아있는 애들을 먹어야 하니까 전력질주를 하죠. 쫙 뛰어다니고.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서 부리가 좀 달라지기도 해요. 얘는 큰뒷부리도요거든요. 근데 부리가 쪼끔 꺾이면 그대로 갯벌에 넣을수가 없기 때문에 몸을 돌려요. 이렇게. 이렇게 몸을 돌리지. 그런데 부리가 큰 흑부리도요는 몸을 돌릴 필요가 없지. 그냥 이렇게 꽂으면 되니까. 그런 미소한 차이들이 개체마다 다 있는 거예요. 흰물떼새같은 경우는 움직이는 애들 잡으니까, 가만히 주시했다가 ... 토르르르르르륵 톡. 또 주시했다가 토르르르르륵 톡. 이런 식으로.
많이 보다보니까 이런 색깔이 아니라 행동하는 것으로 보는거지.
예를 들면, 학교 운동장에 그 운동회를 하고 있어. 막 수십명의 애들이 있어. 거기서 도영이가 뛰는 모습 찾아낼 수 있죠? 똑같애요. -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의 오동필 단장님 인터뷰, 다큐멘터리 <수라>
베르그손의 순수기억과 습관기억을 배우며 <수라> 다큐멘터리와 오동필 단장님의 말이 많이 생각났다. 그는 순수기억은 '차이성'을 밝혀낸다. 다큐멘터리에서 20년동안 새들을 관찰하고 기록한 그는 새들을 색깔이 아니라 '먹이 먹는 모습'으로 구분해 낸다고 했다. 이것을 마치 운동회에서 수십명의 아이들 중 자신의 아이가 뛰는 모습을 보고 아이를 찾아낼 수 있는 것에 비유했다. 문득, 초등학교 운동회 때가 떠올랐다. 엄마는 운동회때면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엄마가 만든 맛없는 야채김밥과 과일과 간식 그리고 얼린 음료수통을 바리바리 챙겨서. 내가 아무리 많은 아이들 틈에 있어도 귀신같이 나를 찾아내서 내 사진을 찍어주곤 했다. 그 때엔 그게 사랑인 줄 몰랐다.
사랑하는 사람은 그 누구와도 대체되지 않는 단독적인 '너' 이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순간은 '순수기억' 속으로 저장된다. 우리가 사랑하지 않으려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 아니던가. 한창 누군가를 좋아할 때 직장생활을 할 때 실수가 잦았다. 일상의 평면, 즉 '습관기억'이 극도로 약화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종종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원망하기도 한다. 나의 일상이 '사랑하는 너'에게 너무 많은 영향을 받기 때문에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견딤이다. 만약 '사랑하는 너'에게 영향을 받아 힘들어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자신을 조금은 따뜻하게 바라봐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건 당신이 너무 아름다운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자신이 약하기 때문이라고 탓하지 말라고 말이다.
나는 다큐멘터리 감독들이 좋다. 그들은 '순수기억'과 '습관기억'을 잘 균형 잡아서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사람들인 것 같다. 황윤 감독의 연출방법 중에 정말 좋았던 부분이 있었다. 오동필 단장님이 생계로 집을 고치고 가구를 만드는 장면과, 새들이 갯벌에서 먹이를 잡는 장면을 교차해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나무에 드릴을 박아넣는 장면과 소리가 나오다가 장면이 전환되며 새들이 갯벌에 부리를 박고 쪼고 비트는 장면을 보여주는데, 새들이 부리질과 드릴 소리를 싱크시켜 연출하는걸 보고 전율했다. '공통점' (군산이라는 생계의 장소) '차이점' ('인간의 집짓기'와 '드릴이라는 도구'과 '새의 먹이사냥'과 '부리라는 도구')에 존재하는 '보편성'을 찾아냈다고 생각했다. 그건, 사랑이 아니라면 창조해 낼 수 없는 표현이었다.
진정으로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순수기억'이나 '습관기억'의 한쪽에만 매몰될 수 없을 것이다. 차이점만 지각해서는 '너'의 세계에 가닿을 수 없고, 공통점만 지각해서는 단독적인 '너'를 발견할 수 없을테니까. 그러니, '현실 감각'은 '사랑'인 것이었다. 그 지독한 균형을 견뎌내는 것. 그것이 바로 아름다운 것을 본 사람들이 짊어지고 살아가는 고통이었다. 나는 그 고통을 얼마나 짊어질 수 있을 것인가? 아니, 아름다운 것을 바라볼 용기가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