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인간 마르크스 읽기

by 홍보경

5년 전쯤 부모님 집에서 독립을 할 때였다. 책장 정리를 하며 가져갈 책을 고르다가 책장에 꽂혀 있던 새빨간 표지의 『마르크스 평전』을 발견했다. 내가 이걸 언제 샀지? 기억을 더듬어보니 대학생 때 어느 중고서점에서 구입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났다. 잠시 고민하다가 자신없는 마음으로 책을 챙겼다.


2026년 1월, 반신반의하며 가져왔던 이 책을 펼치게 되었다. 작년부터 마르크스가 계속 눈에 밟혔다. 왜 그에게 관심이 생겼던걸까. 개인적이고 현실적인 어려움 때문이었다. 퇴사를 하고 통장 잔고가 바닥을 찍었다. 능력도 계획도 없이 무작정 퇴사를 했던지라 당장 할 수 있는건 몸으로 때우는 일 뿐이었다. 육체노동자로 1년간 살아보니, 몸이 자산이라는 말이 피부로 와닿았다. 잘못된 운동 습관으로 인해 생긴 부상이 잘 낫지 않았고, 그런 상태에서 육체 노동을 계속 하니 회복 속도가 더뎠다. 운동은 커녕 생계까지 위협이 받는 듯한 두려움에 위축되곤 했다. 몸이 튼튼해야 노동도 할 테니 말이다. 돈이 없어 쫄리는 느낌과 함께 희미한 나의 정체성 (내가 하고 싶은 일로 밥벌이를 하지 못한다는 위축감)으로 인해 한동안 괴로웠다. 두려울 때는 그 대상에 대해 공부를 해야 한다는 가르침이 떠올랐다. 그래서 마르크스와 자본주의에 대해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다른 이유도 있었다. 이 주제가 내가 써 나가고 싶은 글에 배경이나 공기처럼 깔려 있다고 느껴서이다. 현재 나는 미국 러시아계 유대인과 고려인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는 사람들, '집'에서 쫓겨나거나 떠돌아다니는 사람들, 뿌리를 잃은 사람들이다. 마르크스라는 인물도 유대인으로 핍박받았던 경험이 있으며 자신의 고향인 독일에 뿌리 내리지 못하고 여러 나라를 전전하며 추방자의 삶을 살았던 사람이었다. 그가 『자본론』을 집필했던 곳은 런던이었지만, 당대 영국은 마르크스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영국은 마르크스라는 인물에 대해 이중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면서 문득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 없는 질문이 떠올랐다. 왜 마르크스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소련이 가장 대표적인 공산주의 국가가 됐을까? 레닌과 스탈린이 마르크스 주의를 독재에 이용했다는 것을 수박 겉핥기 식으로 알고 있었을 뿐이었다. 어떠한 역사적 흐름에 의해 어떻게 마르크스의 사상이 왜곡 되었는지, 그 기저에서 인간의 마음이 어떻게 작용했기에 그런 역사가 펼쳐졌는지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 더불어 이데올로기, 한국의 남북 분단 상황 (이북사람인 외조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나의 혈통에 대한 자각과, 민족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트럼프의 반이민 정책에 대해서도 새롭게 바라보게 됐다. 새롭다는 표현이 맞을까. 아니다. 몽롱한 마취 상태에서 깨어나서 현실을 보게 된 것 같은 감각이다. 역사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는 핑계도 통하지 않을 정도로 얼굴이 붉어질 일이었다.


사실, 나부터가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사람이었다. 지금의 내가 방랑자이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스무살 이후로 정서적으로 어느 한군데에 발 붙히지 못하고 이리저리 떠돌아다녔다. 일과 취미 그리고 일상의 많은 부분에서 전방위적으로 말이다. 직장을 그만두고 나오며 부모님에게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다. 어쩌다가 집에 가면 아직 직장에 다니는 척 연기를 한다. 진짜 나의 모습을 소중한 사람들에게도 드러내 보이지 못하고 있다. 집이 없다는 느낌. 그리고 그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하는 방랑자라는 느낌. 그 느낌에 삶이 희미해져가는 것 같았다. 마르크스처럼 위대하고 고귀한 이유가 아니기에 부끄럽지만, 나의 결핍으로 인해 그에게 더 관심이 갔던 것은 사실이었다. 아마 나는 그의 삶의 여정과 그가 남긴 소중한 자산을 통해 나아갈 용기와 지혜를 얻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의 주저인 『자본론』을 읽기 전에 마르크스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지 않는다면, 표지부터 어딘가 학창시절 교과서나 참고서를 연상시켜 숨이 턱 막히는 이 책을 심장으로 읽을 수 없을 것 같았다. 한 인물에 대한 평전이기에 저자가 어떤 방식으로 그 인물을 해석하고 바라보았는지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이 책을 샀을 때 저자의 의도나 방향성에 대해 고려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찾아보니 저자인 프랜시스 윈의 경우 어려운 철학적 경제학적 사상보다는 마르크스라는 인물의 인간적인 모습에 더 주목했다고 했다. 시중에 나와 있는 마르크스 평전들 중 대표적으로 읽히는 건 대여섯권정도인 것 같다. 그 중에서 프랜시스 윈의 평전이 가장 대중적이고 읽기 쉬운 편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경제학이나 철학 그리고 자본주의에 대해 무지한 나로써는 우연히 이 책을 골랐다는 것이 행운이었다. 여유가 된다면 윈의 평전 말고도 다른 각도로 마르크스를 바라본 책들도 읽고 싶지만, 평전보다는 마르크스 자신이 쓴 저작을 접하는 것이 더 우선적인 목표이므로, 이 책을 읽어 나가며 접하게 되는 다른 자료들을 부분적으로 정리하는 방식으로 글을 쓰는 방식을 채택하려고 한다. 평전은 연대기 순으로 카를의 생애에 대해 다루며, 나 역시 처음부터 끝까지 이 순서를 따라 글을 쓰려고 한다.


작년 한 해 동안 글을 계속 썼다. 혼자서 쓴 글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몇 편은 타인에게 보여준 적도 있었다. 그 두 방법의 차이가 꽤 크게 느껴졌다. 홀로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와닿는 부분들을 발췌해서 생각을 적어보고 관련된 자료와 영상들을 찾아보고 공부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혼자 쓰는 글은 외부에 공개하는 글에 비해 덜 생생하게 와닿는 것 같다는 느낌이 있다. 누군가에게 보여줄 때의 글이 나에게 더 깊게 각인된다는 선명한 자각이 있었다. 타인을 염두에 두고 쓰기 시작하는 글은 그 글에 임하는 긴장도 자체가 다르다. 그 긴장이 불러 일으키는 활력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된다. 그렇기에 이러한 개인적인 공부와 정리 목적의 글이라도, 공개를 염두에 두고 적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카를 마르크스(뒷줄 왼쪽)와 프리드리히 엥겔스, 그리고 마르크스의 첫딸 예니헨(아래 왼쪽부터), 막내딸 엘레아노어, 둘째딸 라우라. 1864년에 촬영.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이 책의 뒷부분에 있는 부록을 소개하고자 한다. 마르크스와 그의 딸 셋은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응접실 게임인 '고백'을 좋아했다고 한다. 1860년대 중반에 그녀들은 아버지를 불러서 심문을 했다. 아래는 그의 답변인데, 마르크스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잘 나타내주는 것 같아 웃음이 났다.


당신이 제일 좋아하는 미덕은: 단순함
당신이 남자에게서 제일 좋아하는 미덕은: 강함
당신이 여자에게서 제일 좋아하는 미덕은: 약함
당신의 주요한 특징은: 목적의 단일함
당신이 생각하는 행복이란: 싸우는 것
당신이 생각하는 불행이란: 굴복하는 것
당신이 가장 쉽게 용서할 수 있는 악덕은: 속기 쉬움
당신이 가장 혐오하는 악덕은: 노예 근성
당신이 가장 싫어하는 사람은: 마틴 터퍼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대중 작가)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은: 책에 파묻히기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은: 셰익스피어, 아이스킬로스, 괴테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산문 작가는: 디드로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영웅은: 스파르타쿠스, 케플러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여주인공은: 그레트헨 (괴테의 『파우스트』 1부 주인공)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꽃은: 월계수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색깔은: 빨강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이름은: 라우라, 예니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생선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경구는: Nihil humani a mealienum puto (인간적인 것 가운데 나와 무관한 것은 없다)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좌우명은: De omnibus dubitandum (모든 것은 의심해보아야 한다)


이 설문게임을 보며 부끄럽고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나는 좋아하는 사람의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 에 대해 얼만큼 알고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마르크스의 가족에 대한 사랑이었다. 그는 혁명가이자 망명자라는 자신의 불안정하고 궁핍한 처지로 인해 고생하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항상 미안해했다. 이 게임을 하며 그것을 기록으로 남겼을 딸들과 아버지를 떠올리면 마음 한켠이 따스하면서도 아리다.


제일 좋아하는 미덕이 단순함이라는 것과, 행복과 불행이 각각 싸우는 것과 굴복하는 것이라는 점, 그리고 가장 혐오하는 악덕이 노예 근성이라고 답한 부분에서는 웃음이 났다. 정말 마르크스다웠다. 그리고 가장 좋아하는 이름으로 딸과 아내의 이름을 댄 것에서는 미소가 지어졌다. 가장 좋아하는 경구로 '인간적인 것 가운데 나와 무관한 것은 없다' 를 꼽은 것도 인상적이었다. 최근 읽고 있는 소설에서도 이 구절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이런 순간마다 이 경구가 말하는 것처럼 '인간적인 것 가운데 나와 무관한 것은 없다'는 것을 실감하여 경이로움을 느끼게 된다.


이제 인간 카를 마르크스를 만나러 갈 시간이다. 이 시리즈를 완성하고 나면 무섭게만 생각되었던 『자본론』의 첫 페이지를 조금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펼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