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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니 Apr 08. 2018

중경삼림 (Chungking Express, 1994)

헤어나올 수 없는 삼림의 한 가운데


몽롱하지만 분명한,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의 기분이 머무르는 순간.

영화를 마시고 취할거야 번지수는 #몽환의 숲



중경삼림 (1994)

감독 :  왕가위
주연 : 임청하(금발의 여자 역), 금성무(하지무 역), 왕페이(페이 역), 양조위(경찰663 역)


나는 영화를 사랑한다. 영화를 보고 나서 드는 그 비현실적인 여운에 취하는 게 좋고, 그 여운에 아직 젖어있는 동안 듣는 음악이 좋다. 하지만 늘 나는 좋은 영화는 이런 말초적인 느낌을 주는 것보다는 메시지가 있고 그걸 잘 표현했거나 깊은 공감과 도전을 부르는 작품을 좋은영화라고 생각하곤 했다.

그래도 내가 좋은 영화라고 생각하는 영화보다 애정이 가는 영화는 항상 전자였다. 그 왜 그런 것 있잖나, 머리로 옳다는 게 마음에는 안 끌리는데, 항상 마음이 좋다고 하는 건 머리로 생각하자면 그리 권장하지 못할 게 태반일 때의 속절없는 기분.
그런데 아주 가끔, 도무지 만날 수 없고 화해할 수 없어보이는 머리와 마음이 악수를 하는 순간이 있다. 그게 중경삼림이란 얘길 하려고 여기까지 늘어놓아 본다.

보통 여운이 강렬하다고 하면 뭔가 자극적인 기분이 들지만, 중경삼림은 전혀 자극적인 영화에 속하진 않는다. 그러나 영화를 본 직후에 느낀 그 기분이 며칠이 지났는지 모를 시간이 지난 지금도 여전하다면 그게 진정한 의미의 강렬한 여운이지 않을까.
왜 이 옅은 영화는 나를 그 감성에 머무르게 하는지,
나는 쓰면서 알아내 보려고 이 글을 쓴다.

영화의 오프닝은 마치 시력을 잃어가는 사람의 세반고리관이 흔들리는 것 같은 영상으로 시작한다. 투박한 스케일의 곡조와 그 위에 씌워지는 높고 깊은 어딘가를 아픈지 전혀 모르게 찌르는 것 같은 기타 소리. 거기서부터 나는 이미 어디가 끝인지 모를 이 삼림으로 걸어들어간 듯하다. 영화는 크게 두 가지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고, 처음에 나오는 이야기는 비옷에 썬그라스를 끼고 가발을 쓴 국적불명의 여자와 매일 헤어진 여자친구를 잊지 못해 파인애플 통조림을 사는 남자가 나온다.


항상 비옷을 입을 땐, 선글라스를 쓴다.
비가 언제 올지, 언제 화창한 날이 될지
모르니까


첫 이야기가 끝나가도록 여자는 여전히 정체불명처럼 느껴지지만, 눈이 어떻게 생겼는지 끝내 알 수 없는 그 고압적인 여자의 내면은 사실 겁이 많은 보통 사람의 그것임이 나타나던 순간이다.

두려움이 클수록, 어느것도 놓을 수가 없는 인간의 연약함의 결국에는 놓지 못하고 있는 그 어느것도 갖지 못하고 만다는 현실이 나는 지독하게 싫었다.
금발의 여자는 해가 들지 않는 우중충한 날씨에 썬글라스를 끼고 더욱 어둡게 세상을 보면서, 오지 않는 비를 기다리는 것도 혐오하는 것도 아닌 채 그 갑갑한 비옷 속에 갇혀 있고 마는 것이다.


세상에 유효기간이 없는 것은 없는 것일까?
기억이 통조림에 들었다면,
기한이 영영 지나지 않기를 바란다.


유통기한이 1일 남은 통조림을 사면서 누가 유통기한 1일 남은 것을 사냐며 그거 말고 새거를 사라는 가게 직원에게, 아직 남은 1일을 무시당한 기분을 안고 통조림 30개를 먹은 미련한 남자.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 결국 언젠가는 지나가고 썩어져 버릴 모든 것이다. 내가 지독하게 공허했던 순간은, 지금 내가 달콤하게 느끼고 있는 이 파인애플이 유통기한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이다. 차라리 기한을 모르고 먹는 파인애플이, 지나면 사라질 것을 아는 신기루같은 영화(榮華)보다 행복이지 않을까.


비옷을 입고 잠든 여자와 그 옆에서 샐러드와 감자튀김을 먹으며 영화 두 편을 본 남자의 최후가 아리송한 곳으로 가버렸을 때쯤 시작되는 두 번째 이야기는 음악을 시끄럽게 틀어놓고 핸드 푸드를 파는 가게에서 일하는 알바생 여자와 매일 샐러드를 사러 오는 남자 경찰관이 등장한다.


그래요, 몽유병이죠. 몽유병!
그날 오후 꿈을 꾸었다.
그의 집을 방문하는 난 깨어난 줄 알았다.
하지만 어떤 꿈은 영원히 깨어날 수 없다.


여자친구가 있어 보이는 경찰관을 좋아하는 알바생. 놀러오라고 했던 그의 말에 그가 집에 없는 시간을 골라 몰래 그의 집에 들어가 물건들을 정리하고 바꿔놓는 그녀의 마음을 한 단어로 말해준 순간.

캘리포니아에 가보지 못했을 때 이 영화를 볼 걸 그랬다. 그랬다면 알바생이 질기게 틀어댔던 그 노래에 나를 던지고 나도 몽유병으로 기어들어갔으려나. 평소 캘리포니아를 간절히 원하던 사람은 출국 전날 이 영화를 보길 추천한다. 지금의 내게 캘리포니아는, 결국 가 닿을 수 없는, 나만 혼자 좋아하는 남자의 마음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너무 야위었어 전엔 뚱뚱했었는데...
지금은 말랐어 왜 그래? 자신감을 가져...

그만 울어...계속 울기만 할 거야?
강해져야지...
이것 봐... 왜 축 쳐져 있는 거야?
내가 도와 주니 훨씬 더 편안하지?


떠나간 스튜어디스 여자친구를 잊지 못하는 경찰은 집에 있는 물건에게 말을 건다. 영화에서 가장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이기는 하나, 물건들에게 하는 말은 가장 현실적으로 와서 박힌다.

내가 이 영화를 강렬하게 기억하는 이유가 바로 이거다. 물건에게 말하고 있는 그 자체는 과연 몽유병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게 물건이 아니라 내면의 나에게 말을 걸고 있는 것이기에. 내면의 나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는 고독함은 비누가 야위고 수건이 울고 방이 감정이 생겨나 이렇게나 많이 울었다고 표현된 것이다.


기승전결 형의 스토리도, 쫄깃한 관계설정이나 배경도, 딱히 주제가 있는 메세지도 아닌데 이 영화는 내가 계속 초록빛의 삼림 속을 헤매면서 회색의 무감각함 속에 있는 듯한 기분을 안긴다.
교훈은 가르침으로도 줄 수 있고 계몽은 책으로도 할 수 있으며 이야기는 들려줄 수도 있고 재미는 무엇으로도 줄 수 있으나, 영화는 영화만이 가진 그 무엇이 존재한다. 그것을 날 것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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