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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기 Feb 13. 2023

술로 인생이 망해가는 과정

좋은 술, 나를 위한 술을 마셔야 하는 이유

  오늘은 제 이야기를 쭉 들려드리려고요. 저는 한때 소주 중독이었습니다. 술의존증이 분명히 의심될 정도로 술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 젊음 중 3년은 버린 것 같아요. 그리고 그때 쪘던 살로 인해서 지금도 제 젊음을 제대로 만끽할 수 없습니다. 술에 중독됐던 사람은 후유증까지도 앓게 되는거죠.


  현재 제 나이는 35살, 저와 비슷한 나이대의 분들은 어릴 때 억지로 강제로 술을 마셨던 경험이 충분히 있었을 겁니다. 저는 술을 그다지 싫어하진 않아서 주는 대로 다 받아 마셨습니다. 생맥주 500cc 잔에 소주를 가득 따라서 원샷을 시켜도 다 마셨습니다. 그리고 숙취로 하루 꼬박 고생하고, 또 술을 마시고, 또 숙취로 하루를 통으로 버리고, 또 술을 마시고.


  20살 21살 대학시절에는 이런 경험 많았을 거예요. 더군다나 저는 2년제 학교를 다니다 보니 공부를 그렇게 많이 하는 학교가 아니어서 성적 걱정도 없었으니 시험기간에도 술을 마셨습니다. 이렇게 선후배들과 그리고 동기들끼리 술 마시는 건 대부분 경험해 보셨을테고, 이때부터 인생이 망해간다는 얘긴 아니에요. 다만, 우리의 데이터에 누군가와 친해지려면 술을 마셔야 한다는 옵션이 생긴 것이 좀 우려할 부분이죠.


  군대를 제대하고 학교를 졸업하고, 2년제 학교다 보니 남들보다 좀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하죠. 돈을 일찍 벌게 되면 돈에 대한 가치를 배우기 어려운 것 같아요. 저는 술값으로 다 썼었거든요. 매니저직도 일찍 달게 돼서 술을 마시러 가면 제가 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뭐 보통은 제가 마시자고 했던 것 같아요. 100만 원 한도의 신용카드도 썼었는데 나중에 명세서를 보면 다 술값이에요. 4명 5명 데리고 가서 술을 마시면 못해도 보통은 7~8만 원은 기본이니까 10번만 마셔도 적어도 70만 원입니다. 한 달에 술값으로 100만 원 쓰는 거 어렵지 않아요.


  저는 좋은 일이 있으면 술을 마셨어요. 회사에서 거지 같은 일이 있으면 마음 맞는 애들과 같이 술을 마셨어요. 썸을 타다 깨져도 술을 마셨습니다. 술을 마셔야 하는 이유는 늘 있었어요. 그리고 저는 제가 술을 사야 사람들하고 친해지는 줄 알았어요. 그래서 사이가 멀어졌다 싶으면 술을 샀어요. 내가 술을 안 사서 멀어진 건가 착각했었죠. 그래서 술을 사면서 새벽까지 놀았죠.


  술을 사면 다 좋아하는 줄 알았어요. 근데 아니더라고요. 저는 제가 술을 사겠다고 하는데도 다음에 보자는 사람들을 보면 이해가 안 갔어요. 사고의 구조가 남들과 다르게 비정상적이었죠. 정말 친한 친구들이 있는데 최근에 만나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있었어요. 이 친구들도 나랑 노는 걸 좋아하는데 나랑 놀 때마다 술을 마시고 새벽까지 놀아야 한다는 생각에 점점 피하는 걸 알았어요. '오빠랑 노는데 술 안 마시고 일찍 들어가서 좋다'라는 말을 듣고 '아, 여태 내가 얘네들한테 그렇게 돈 쓰면서 술을 마시던 게 얘네들을 위한 게 아니었구나. 나 좋으려고 붙잡아 둔 거구나'


  나이가 점점 들고 20대 후반 정도 되면서 혼술을 슬슬 하기 시작했어요. 처음엔 소주 한 병을 다 마시는 것도 힘들었는데 1달 정도 혼술을 하다 보니 2병을 마셔도 거뜬해졌습니다. 어릴 땐 이게 자랑인 줄 알았죠. 여전히 기회만 되면 누군가와 술을 마시지만 그렇지 않은 날엔 이제 혼자 술을 마시며 보내기 시작하는 거예요. 이때부터는 정말로 술을 매일 마셨어요. 제가 말하는 매일의 수준이 365일 중 360일 정도를 매일 소주 2병씩을 마셨습니다. 어릴 때라 1년을 이렇게 마셔도 사실 몸이 안 좋아진다는 느낌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술을 마셔도 각성 상태라 그런지 소주 2병 정도에는 숙취가 그렇게 심하지 않아서 건강하다고 착각까지 했습니다.


  혼술은 발전을 하게 되고, 이제는 국밥집에서 뿐 아니라 이자카야, 수제맥주집, 횟집, 동네 소주방, 피자집, 심지어 고깃집까지 갈 수 있는 철면피가 되어 있었습니다. 무슨 자랑이라고 보글보글 끓는 국밥에 빨간 뚜껑 소주 사진을 인스타에 거의 매일 올렸습니다. 어릴 때의 저는 빨간 뚜껑 소주나 한라산을 2병까지 거뜬하게 마실 수 있는 게 하나의 자부심이었습니다. '참이슬 빨간 거 어떻게 마셔요...?'라는 말을 듣는 게 뭔가 뿌듯했습니다.


  아마 이때부터 슬슬 살이 찌기 시작한 것 같아요. 소주를 마시면 식욕이 비이상적으로 늘어나는 거 알고 계시나요? 소주 안에도 과당이 정말 많아서 인슐린 문제로 식욕을 엄청 당긴다고 알고 있어요. 저도 과거에 보면 제 기억 중 정말 충격적인 것 중 하나가 콩나물국밥집에서 콩나물국밥 하나와 제육볶음 하나, 그리고 국밥을 또 한 그릇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저는 많이 들었던 말 중에서 '너는 4차를 가도 매번 1차를 온 것처럼 먹네'라는 말이었어요. 70kg이었던 제가 순식간에 90kg까지 찐 이유는 '술'때문입니다.


  저는 돈을 제대로 모아보질 못했습니다. 정말 창피한 이야기지만 사업을 한다고 질러놓고 리스크 관리도 안 하고 매일 술을 마시다 보니 빚만 몇천 남아 있습니다. 물론 이건 술이 원인은 아니겠죠. 그렇지만 술도 한 요인이 되었다 말할 수 있습니다. 술값으로 쓰던 카드값이 날이 갈수록 늘어났죠. 혼자 술을 마셔도 3~5만 원은 기본이었는데, 직원들 데리고 술 마시러 가면 12~15만 원은 우습게 나갑니다.


  그리고 또 다른 문제는 아무 성과도 없이 지나간 사업가의 하루를 술로 달래며 마무리한다는 것입니다. 우선 소주를 마시면 그날의 계획과 일정은 그대로 마비됩니다. 소주가 한 모금 들어간 순간부터 그날 하루의 발전은 없습니다. 소주를 마시면 취하기 전까지는 성에 차지 않습니다. 거하게 취할 때까지 마실 수밖에 없어요. 사업에 대해 제대로 고민하고 설계하기도 부족한 시간에 술이나 마시면서 시간을 보내니 일이 제대로 될 수가 없죠. 그리고 다음날엔 아무리 숙취가 없다고 해도 멍한 상태로 아침을 보내게 됩니다. 창의적인 뇌활동은 불가능하고 on/off로 된 일만 하게 되는 거예요.


  코로나로 인해 직장도 사업도 방황하게 되었을 때, 혼자 제가 운영하는 와인샵에 주구장창 앉아 있는 날이 많았어요. 이 참에 언제 잘릴지 모를 직장보다 사업에 몰두해 봐야겠다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늘 현장에서 뛰고 고객 응대하는 일만 하던 사람이 책상에 앉아서 마케팅을 위주로 업무를 하려고 하니 할 줄 아는 게 있어야죠. 여태 해보지 않았던 어려운 일을 하려니 너무 막막했어요. 그러다 거울을 보면 살찐 모습에 매번 놀람을 금치 못했죠. 그러다 그 모습에 또 우울해지면 소주를 마셨습니다. 그렇게 회피하고 내일 또 같은 하루를 보내고 우울함에 소주를 마시고...악순환이었죠.


  살이 찌고 사업이 어려울 때 나에게 남은 자부심은 '술을 많이 마시는 것, 술을 매일 마실 수 있는 것, 술을 마시고도 아르바이트를 갈 수 있는 체력'뿐이었습니다. 이때부터는 정말 심각했던 게 오늘은 술 마시지 말아야지라고 생각을 해도 저녁 8시부터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하면서 그날도 어김없이 소주 두 병을 사 옵니다. 그리고 유튜브를 보면서 라면이나 찌개, 부침개처럼 온갖 살찌는 안주란 안주는 다 만들어서 먹었습니다. 제가 또 음식을 하던 사람이라 음식 만드는 건 뚝딱 해냅니다.


  이러다 살이 90kg에서 100kg 직전까지 살이 찌게 되고... 이때 또 친한 동생이 저에게 했던 말이 있었습니다. ‘오빠는 왜 이렇게 얼굴이 시멘트색이야..?’ 저는 이 시점부터 '아 이대로는 안 되겠다 정말로...' 이렇게 생각하고 마음을 바로 잡았습니다.


  하지만 마음을 바로 잡았다고 해서 바로 습관이 고쳐지진 않았죠. 우선 인정을 했습니다. '나는 술을 아예 끊지는 못하겠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제가 찾은 답은 와인이었습니다. 소주가 생각날 때마다 와인을 사 왔습니다. 편의점에서 파는 병당 5,000원에서 10,000원 사이의 와인을 마셨습니다. 저는 직업이 외식업이고 와인 쪽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제 성에 차지 않는 맛없는 와인을 일부러 마신 거죠.


  와인이 절 살렸습니다.


  초반엔 습관처럼 와인 한 병을 다 마시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며칠이 되지 않아서 와인이 점점 입에 들어가지 않더라고요. 소주와 다르게 더부룩함이 있어서 많이 마실 수 없는 술입니다. 그리고 많이 마셨을 때 숙취가 소주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심합니다. 그렇게 점점 마시는 양을 줄여나갔죠.


  이 단계가 지나고 나니 저는 술을 건너뛰는 날이 점점 생겼습니다. 이제 술을 매일 마시지 않아도 괜찮았던 거죠. 매일 취한 상태로 내가 몇 시에 잤는지도 기억을 하는 날이 거의 없었는데, 언제 하루는 술기운 하나 없이 침대에 누워서 천장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느낌이 너무 생소했습니다. 진짜 나를 위로하고 돌아보는 건 술로 모든 것을 회피하고 잊는 게 아니라 그것을 마주하고 해결했을 때 정말 나를 위한 위로였구나를 깨달았죠. '일반인들은 저녁을 7시에 먹고 11시나 12시에 자는구나'라는 걸 새삼 느꼈습니다.


  그리고 느꼈던 생소한 기분 중 하나는 다음날 아침에 속이 거북하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저는 늘 목구멍까지 가득 채우고 그대로 잤습니다. 소화할 시간 따윈 없었습니다. 먹고 취하고 그 상태로 잠들었죠. 그러니 당연히 아침마다 속이 거북할 수밖에 없죠. 하지만 이걸 매일 느끼면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 그대로 몸이 이 느낌대로 적응해 버립니다. 그러니 깨끗한 소화기간의 상태가 굉장히 생소하게 느껴지겠죠. 지금은 전날 과식하고 소화할 시간도 없이 자버리면 다음날이 너무 힘듭니다.


  전 그래서 좋은 술을 마시기로 했습니다.


  술을 또 아예 마시지 않는 사람은 저와는 결이 맞지 않더라고요. 저는 맛있는 음식이 있을 때 이 음식에 어울리는 와인을 찾는 걸 좋아합니다. 이건 소주를 먹다가 식욕이 올라서 과식을 하는 개념과는 달라요. 식사에 대한 만족감을 느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그런 걸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좋아요.


  제가 컨설팅한 친구의 가게에 어떤 앳된 손님이 오셔서 신분증 검사를 했더니 딱 오늘부터 성인이 된 분이더라고요. 제가 20살이 됐을 때와 정말 많이 달라졌구나 느꼈던 것이 있습니다. 우선 이 가게는 현재는 소주를 팔지 않습니다. 가격대가 좀 있는 술을 팔죠. 그분이 와인을 추천해 달라고 해서 친구가 입문자용의 좋은 와인을 추천해 주고 오픈해 주며 와인을 따라줬죠. 그리고 그분은 한입 마시더니 '이 와인이 내 인생 첫 와인이야! 나 이거 사진 찍을래'. 정말 저 어릴 때 부어라 마셔라 죽어라 했을 때랑은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습니다. 요즘 이렇게 술을 강요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고 좋아하는 술을 찾는 지금 세대가 사뭇 아름다워 보입니다.


  저도 이제 술에 대한 태가 많이 바뀌었습니다. 이제는 술자리가 없는 것에 아쉬워하지 않아요. 오히려 술 약속이 생기면 살짝은 부담스럽습니다. 체력이든 돈이든 무조건 피해가 생기게 되어 있어서. 그리고 소주를 마시면 이제 한 병을 비우기가 어렵습니다. 찌개를 기가 막히게 끓여서 오늘은 좀 마셔볼까 싶어서 소주를 사 와도 반 병 마시면 손이 가질 않습니다. 이제야 조금은 정상범위 안에 들었다 생각합니다.


  어떤 술을 마시는 것이 좋은지 이야기해보고 싶어요. 저는 사실 소주 말고는 다 괜찮다 생각해요. 여기서 말하는 소주는 설탕물에 알코올 섞어서 만드는 우리가 아는 일반 소주를 말합니다. 이건 맛이 없는 술이에요. 소주는 맛이 없어요. 와인뿐 아니라 위스키, 수제맥주, 진 등 좋은 술을 마셔야 해요. 인사불성으로 취함으로써 위로를 주지 말고, 좋은 술과 음식을 적당히 즐기며 맛으로서 만족할 수 있는 술을 드세요.


  그럼 술을 어떻게 마시는 것이 좋은지, 제 전문 분야가 와인이니 와인으로 이야기하자면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떠올리고 그 음식에 맞는 와인을 찾아보세요. 가격이 싸지도 않은데 음식과의 궁합을 생각할 수 있는 재미정도는 있어야죠. 그리고 내가 얼마나 만족하는 식사를 하고 있는지 음식과 와인에 대해 잠깐이라도 이야기해보세요. '야, 이거 신선한 아오리 사과 같은 향이 나. 초밥이랑 먹어봐 마무리가 진짜 좋아'와 같이 친구들과 이야기하며 이 식사 자체를 즐기는 겁니다.


  그리고 소주 문화에서 좀 벗어나야 해요. 소주는 건배하고 홀짝 들이키고 '크~' 한 번 해준 뒤 안주를 먹죠. 이건 뭘 의미하냐면 소주가 맛이 없다는 걸 의미합니다. 소주의 맛을 얼른 가시기 위해서 안주를 밀어 넣는 거죠. 와인은 음식을 먼저 먹습니다. 음식의 맛을 깊게 느낀 후 어느 정도 입에 음식물이 있을 때 와인을 마시며 조화를 느껴보는 거죠.


  또, 위스키와 와인, 칵테일과 같은 술은 안주가 굳이 필요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와인의 경우 와인마다 다르긴 하지만 어떤 와인은 음식의 맛이 와인의 맛을 해칠 수 있기 때문에 와인만 마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 저처럼 좋아하는 와인이 있다면 나만의 시간을 보낼 때 와인과 함께 보내보세요. 요즘 저의 최애 취미는 와인을 마시며 이렇게 글을 쓰는 것입니다. 이런 매력을 많은 사람이 알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그리고 저처럼 소주 중독에 괴로워하고 계신 분들이 있다면 오늘 저의 얘기로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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