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하는 이유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자기소개서를 써야 하는 둘째 아들이 심각하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스탠드에는 불이 켜져 있고 아이는 책상에 엎드려있다.
한글파일에는 “나는 김재욱입니다.”한 줄 있다.
제출날짜는 다가오고 그동안 어떤 성장배경이 있었고 입학을 한다면 학교생활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서술해야 하는 것을 못하는 것이다.
일기숙제도 없는 세대라서 그것조차 글이라는 것을 꾸준히 써 본 적 없는 중학생 아이가 고등학교를 간다고 글을 써야 한다니 갑작스러운 것도 당연하다.
내가 중학생 때 [흐르는 강물처럼]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영화를 본 사람들은 브래드피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영화의 줄거리는 너무 오래되어서 가물가물하지만 유독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목사인 아버지는 두 아들을 학교를 보내지 않고 홈스테이를 한다.
아버지가 아이들에게 하는 학습은 글쓰기와 낚시가 유일하다.
책을 요약하는 것을 숙제로 내주면 처음에는 한 장으로 다음에는 더 짧게 요약해 보고, 20자로 계속 간단한 문장으로 요약하는 것을 시킨다.
그 당신 나의 경험으로 보면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이었다. 책 읽고 요약하고를 반복하기만 하는 것이 학습이 될까?
성인이 되고 나서 전공과 상관없이 직업의 종류와 상관없이 글 쓰는 힘이 있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대학시절 동아리방에 가면 대학노트에 오며 가며 다 같이 쓰는 노트가 있었는데 같은 에피소드도 재미있게 쓰는 학생의 글이 선후배에게도 인기가 있었다.
성당에서 주일학교 봉사를 할 때면 아이들에게 교리교육을 하기 위해 교안을 작성해야 했고. 가끔 학생미사 때 강론을 하라고 하실 때면 미리 강론할 내용을 글로 써서 검사를 받아야 했다. 직장에 취직해서도 글과는 전혀 상관없는 운영팀 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안의 내용은 일목요연하고 간결해야 했다. 그나마 나는 결과보고서를 쓰지 않아 이 정도였다.
어린이집에서 보육교사로 활동한 적도 있는데. 매일매일 아이들의 생활은 엄마들에게 글로 알려줘야 했고 보육일지며 면담일지며. 직업과 상관없이 글쓰기는 일상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영역이었다.
한때는 논술이 대학입시에 반영되어 논술학원이 유행하기도 했다. 역시 우리나라는 모든지 대학입시와 관련되면 기를 쓰고 연습시킨다. 평소에 글 쓰는 연습을 안 하고 학원에서 한두어 달 스킬만 배운다고 글쓰기가 향상될까? 글쎄 논술학원을 다녀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
큰아이는 인천에서 꽤 경쟁률이 있는 교대부설초등학교를 운 좋게 합격하여 입학하게 되었다.
작은 아이들도 시도는 했지만 그 행운이 작은아이들에게까지 닿지 못하였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면서 자연스럽게 비교되는 부분이 바로 글쓰기였다.
엄마들이 그렇게나 보내고 싶어 하는 부설초등학교에서는 글쓰기가 생활이었다.
일기 쓰기는 기본이고, 문화체험학습을 다녀오면 그 결과를 써서 제출하는 것이 의무였고.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는 것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학교에서 학습을 하는 것과 별계로 일상생활에서 꼭 이루어져야 하는 것들 이였다.
그런 과정을 6년을 훈련해서 인지 고등학생이 된 큰아이는 생각이나 감정을 잘 정리할 줄 알고 항상 기록하면서 쓰는 습관이 있다.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실천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행동해 나아간다.
그것이 부설초를 다니지 않은 다른 둘째 셋째 아이와의 차이이다.
따라서 글쓰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학교를 찾게 되었고 고등학교도 큰아이에 이에 둘째 아이도 지원하게 되었다.
왜 나는 글을 쓰고 싶을까?
언제부턴가 무의미하게 매일을 사는 내 모습이 계속 소모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마저 자고 일어나면 휘발되어 또 살아가고. 마치 어린 왕자에 나오는 술주정뱅이의 행동처럼 술 마시는 부끄러움을 잊기 위해서 또 술 마시고 그것이 부끄럽고 잊기 위해서 술 마시는 것처럼.
소모되는 나를 채우는 방법 중 하나가 글쓰기였다.
스쳐가는 생각을 잡아서 기록해 두고, 어제와 다른 다육이의 싹을 보면서 기록한다.
아이들이 했던 행동과 말을 적어보고 감사한 것들을 적어보았다.
볼펜으로 끄적거렸을 뿐이데. 점점 욕심이 생긴다. 긴 이야기를 쓰고 싶어지고. 머릿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들을 잡아서 모양으로 만들어 보고 싶다.
글을 쓰고 나서 나중에 돌아보면 부끄러울 때도 있지만 또 다른 나를 만나게 된 다.
무엇인가 완성했다는 뿌듯함에 스스로 인정하게 된다.
글쓰기를 하면 할수록 다른 것에 도전할 의욕도 생기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긴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내가 참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계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