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호프 단편선-관리의 죽음을 읽다가 든 생각
체호프의 단편 『관리의 죽음』은
그야말로 별일 아닌, 정말 사소한 ‘재채기 하나’로 인생이 무너지는 이야기다.
한 오페라 극장에서 평범한 회계 관리 체르뱌코프가
크게 재채기를 한다.
하필이면 그 침이… 앞 좌석에 앉아 있던 장관 브리잘로프의 목덜미로 톡 튄다.
민망해진 그는 공연이 끝난 뒤 정중히 사과한다.
장관은 “괜찮소”라고 말한다.
하지만 체르뱌코프는 그 말이 진심이 아닐까 봐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때부터 계속 사과하고, 또 사과한다.
결국 짜증이 난 장관은 “꺼져!”라며 쏘아붙이고,
체르뱌코프는 충격을 받은 채 집으로 돌아와 그대로 숨을 거둔다.
체르뱌코프의 배 속에서
무언가가 터져 버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상태로
그는 문을 향해 뒷걸음질 쳤다.
그리고 흐느적흐느적 밖으로 걸어 나갔다.
기계적으로 집에 돌아온
그는 관복도 벗지 않은 채 소파에 누웠다.
그리고…… 죽었다.
마지막 문장.
"그리고…… 죽었다."
아니, 이렇게 죽는다고?
그게 진짜 끝이야?
처음엔 웃음이 났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웃음 뒤엔 묘한 씁쓸함이 남았다.
그러다 문득, 잊고 있던 과거가 떠올랐다.
30대 초반이었다.
당시 학교에 새로 오신 교감 선생님은
매우 엄격하고 날카로운 분이었다.
그분께 사소한 지적을 받을 때마다
저도 모르게 위축되고,
더 완벽하게 해내야 할 것 같았다.
그날 이후로 출근길은
항상 긴장된 시간으로 변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분은 그저 자신의 방식대로 일했을 뿐인데,
그때의 나는 모든 걸 내 탓으로 돌리며
‘윗사람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 일을 떠올리자,
체르뱌코프의 죽음은
단순한 희극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그의 끊임없는 사과와 불안은,
그때 내가 겪었던 하루하루와 겹쳐졌다.
나는 왜 권위 앞에서 이렇게 작아지는가?
내 작은 실수는 왜 이토록 나를 괴롭히는가?
‘잘 보여야 한다’는 강박은
체르뱌코프의 재채기보다
더 무거운 짐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무게는 오페라 극장에도,
출근길에도 똑같이 내려앉아 있었다.
체호프는 아주 짧은 이야기로
그 무게를 날카롭고도 유머러스하게,
그러나 결코 가볍지 않게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