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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또한 지나가리라

결국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by 자유

딸이 직장을 그만두고 친구와 점집에 다녀왔다고 했다. 나름 이성적인 아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뭔가 의지할 것이 필요했나 싶어 그저 “그래, 잘했다.”라고 말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사실 아무것도 없으니, 할 수 있는 건 말뿐이었다.


그곳에서 무슨 말을 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지나온 삶에 위로를 받고 다가올 삶에 희망이라도 품길 바랐다.

대학졸업후 임용고시 끝나자, 엄마는 나를 데리고 점집이라는 곳엘 갔었다. 지금은 기억이 흐릿하지만, 내 몸에 칼자국이 두 번쯤 날 거라는 말만은 이상하리만큼 또렷하게 남아 있다. 합격 여부가 궁금해 찾아간 자리에서 느닷없이 그런 말을 들은 엄마는 얼마나 놀랐을까.


그 후로 내 귀도 팔랑귀가 되어, 그 말이 종종 떠올랐다. 도대체 언제쯤 칼자국이 생긴다는 걸까 궁금하기도 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첫 번째 칼자국은 셋째를 낳을 때 제왕절개로 생겼다. 두 번째는 유방암 수술 자국이었다. 그리고 몇 해 뒤, 갑상선암 수술을 받으며 또 한 번 칼자국이 생겼다. 그렇게 보면, 점집의 예언은 절반쯤 맞고 절반쯤 틀린 셈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일에 마음 쓰지 않는다. 인생이란 결국 새옹지마. 어떤 일이든 지나고 나면 다 잊히더라. 일어난 일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이고, 그래서 또 굳이 어찌하고 싶은 마음도 생기지 않는다. 그저 “그런 일이 있었구나.” 하고 지나간다.


행복과 불행에는 총량의 법칙이 있다고 믿는다. 어느 한쪽으로만 기울지 않도록 삶은 늘 조화를 이루려는 것 같다. 그래서 불행이 닥칠 때면 생각한다.


‘아, 예전에 내가 많이 행복했구나. 그래서 지금은 균형을 맞추려는 거구나.’
그러면 또, 이 불행이 지나면 곧 행복이 오겠구나 싶어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진다.


여름, 부산에 사는 큰아들을 만나러 갔다가 평산책방에 들렀다. 부산과 가까워 가보고 싶다고 하자 큰아들이 선뜻 운전대를 잡았다.


책방 근처 주차장에 차를 대자 정자에 앉은 아주머니가 “방금 전에 문재인 대통령님 내외분이 집으로 들어가셨다”라고 말하며 우리보다 더 아쉬워했다. 그 덕에 ‘혹시나’ 하던 설렘은 내려놓고, 차분히 평산책방을 구경했다. 아담한 공간엔 사람들이 적당히 북적였고, 다들 책을 고르고 사진을 찍으며 그곳의 공기를 천천히 즐기고 있었다. 빈손으로 나오기 아쉬워 『내 삶에 새기는 쇼펜하우어』 한 권과 평산책방 로고가 새겨진 에코백을 샀다. 남편과 나는 책방 주변을 천천히 돌며 논두렁과 산자락을 눈에 담았다.


인생은 고통과 권태 사이를 오가는 시계추다.


집에 돌아와 그 책을 천천히 읽었다. 그래, 그렇기에 삶의 고통이 있어야 행복이 더 달콤하지 않던가. 빛과 그림자가 늘 함께하듯, 행복과 불행도 늘 짝을 이룬다. 결국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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