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기억해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시나요〉에서 이런 장면이 나온다. 여주인공의 이름은 ‘채송아’인데, 사람들은 그녀의 이름을 듣자마자 “뭐요? 뭐가 죄송해요?” 하고 되묻는다. 그러면 그녀는 아주 착한 여자 주인공이므로 미안한 얼굴로 다시 말한다. “제 이름은 채소 할 때 ‘채’, 송아예요.” 그제야 사람들은 “아, 그렇군요.”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나도 예전에 사람들이 가끔 ‘무슨 과를 나오셨어요?’ 하고 물으면 '국어교육과요.'라고 대답한다. 그러면 거의 모두 '아, 국어국문과요.'라고 내 말을 정정한다. 그럼, 나는 약간 상기된 목소리로 ‘사범대학 국어교육과요.’라고 못을 박는다. 이젠 아무도 물어보진 않지만...
대학 시절을 떠올려 보니, 유난히 기억나는 아이가 있다. 그 애 이름을 편의상 ‘오’라고 하겠다. 작은 소도시에서 살던 나는 조금 더 큰 세상을 보고 싶어, 한 시간쯤 떨어진 도시에 있는 대학에 갔다. 지금 생각하면 거리가 도찐개찐이지만, 그땐 그 한 시간이 마치 세상 끝에 닿는 것처럼 멀게 느껴졌다. 더구나 낯선 도시 사람들 속에서 외로움이 커졌다. 그래서 내 하루는 하숙집과 학교를 오가는 단조로운 반복뿐이었다.
그러다 아는 언니가 소개해 준 독서동아리에 가입하면서 나는 조금씩 사람들과 어울리게 되었다. 그중 괜히 마음이 가는 남자애가 오였다. 오는 키도 크고 얼굴이 미남이라 과에서나 동아리에서도 인기가 많았다. 특히 남자애들이 더 좋아했다. 아마도 오의 성격이 서글서글하고 모난 곳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학교에 가기 싫은 주중 수요일, 오전엔 두 시간짜리 철학 수업이 있는 어느 날이었다. 고작 두 시간 수업을 들으러 가는 게 억울했지만, 마음을 간신히 다잡고 강당으로 향했다. 그런데 강당은 휑했다. 나처럼 황당한 얼굴을 한 몇몇 학생들이 들리지 않게 욕을 내뱉으며 나갔다. 그제야 누군가 전날 공강 안내가 있었다고 중얼거렸다.
“젠장!”
나도 질세라 한마디 내뱉으며 복도로 나왔다. 그때였다. 내 모습을 보던 오가 피식 웃고 있었다.
“어? 너도 이 수업 들어?”
놀랍기도 하고 반갑기도 해서, 내 목소리가 평소보다 좀 컸던 것 같다.
“응, 나도 오늘 공강인 줄 몰랐어.”
우리는 잠시 서로를 바라보다가, 동시에 허망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정신 차려보니 어느새 우리는 나란히 교정을 걷고 있었다. 이런 경우를 두고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나는 속으로 오와 함께 걷는 게 너무 좋아 들떠 있었다.
오는 마침 잘됐다며, 시간 되면 함께 시내 구경이나 하자고 나를 이끌었다. 마치 마음씨 좋은 주인을 만난 애견 샵 강아지처럼, 그날 나는 하루 종일 그 애 옆에서 종알거리며 따라다녔다. 도로에서는 수요일을 찬양하듯 ‘비 오는 날의 수채화’가 마침 흘러나오고 있었다. 비 내리던 그 수요일, 그날의 장면은 지금도 내 기억 속에 한 장의 사진처럼 선명하다.
그날 우리는 마치 최후의 만찬을 즐기듯, 다양한 음식을 먹었다. 처음 가 본 카페에서는 파르페를, 넓은 잔디가 인상적인 레스토랑에서는 돈가스를, 다시 학교 근처로 돌아와 들른 카페에서는 빨간 앵두가 꽂힌 칵테일을 마셨다. 마로니에의 ‘칵테일 사랑’ 가사처럼 그때 우리는 향기로운 술에 취해 밤새도록 끝나지 않을 이야기를 나눴다.
결국 카페 문이 닫히자, 우리는 아쉬움에 다시 동아리방으로 향했다. 오가 캐비닛에서 초코파이 한 개를, 서랍에서 양초를 꺼내 불을 붙였다. 그 불빛 아래에서 흘러가던 공기는 묘하게 달아올랐다. 한여름밤의 꿈처럼 우리 사이에 알 수 없는 긴장감이 천천히 비현실적으로 흘러갔다.
그 밤의 고요함을 뚫고 내 귀를 두드리던 심장 소리가 첫사랑의 팡파르였다면, 달콤 쌉싸름했던 첫 키스는 날카로운 칼이 되어 내 대학 시절을 서서히 헤집어 놓기 시작했다. 난생처음 앓게 된 상사병은 이야기 속에나 나올 법한 낭만적인 병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 일상을 무너뜨렸던 불치병이었다.
그날 이후, 오는 나를 피했다. 이유를 알 수 없었던 나는 오를 더 자주 찾아다녔다. 오죽하면, 오의 단짝 비가 나를 따로 불러 세웠을 정도였다.
“오는 널 좋아하지 않아. 그러니까 그만 쫓아다녀. 계속 그런 식이면, 너만 다쳐.”
그러던 어느 날, 내 상사병은 뜻밖의 장소에서 완치되고 말았다. 학교 정문 앞을 지나던 중, 우연히 나는 데모 중인 학생 무리와 마주쳤다. 혹시 그 애가 있을까? 얼굴을 들자, 맨 앞에서 주먹을 불끈 쥐고 민중가요를 외치는 오가 보였다. 우리는 잠시 시선을 마주쳤지만, 오는 곧 고개를 돌렸다.
나는 묻고 싶었다. 왜 그날 나에게 키스했냐고. 그게 너한텐 아무것도 아니었냐고. 내가 싫어졌다면, 그냥 말해달라고. 하지만 그런 말을 던지기엔 상황이 맞지 않았다. 대의를 외치는 학생들 사이에서 ‘이제 날 좋아하지 않는 거냐’ 고 미친 척 묻기엔 진짜 미치지 않아 그만뒀다. 대신 그 데모 무리 뒤를 따랐다. 혹시 데모가 끝나 그 애가 혼자 있게 되면 다가가 물어볼 생각이었다.
“난 너의 뻐드렁니까지 좋아했단 말이야. 그런데 넌 어쩜 그렇게 무심하니!”
시내로 이어지는 행렬을 따라가며, 나는 오의 뒤통수를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나를 향해 웃어주던 오의 미소를 한 번만 더 보고 싶었다.
그러나 데모 대열의 발걸음은 점점 빨라졌고 어디선가 시커먼 전경들이 기다란 곤봉을 들고 달려오기 시작했다. 콩주머니를 쏟았을 때 콩알들이 쏴아—하고 굴러가듯, 대열은 순식간에 흩어졌다. 다들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수 없었다. 그 모습에 식겁한 나는 그 순간, 상사병에 빠진 가녀린 여주인공에서 단숨에 전경에게 쫓기는 운동권 학생이 되어 있었다. 전경들에게 잡히지 않으려고 숨이 턱까지 차오르도록 달렸다.—그 와중에 나는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이런, 젠장!”
다리가 풀리고, 몸이 앞으로 고꾸라질 듯한 그 느낌—다시는 겪고 싶지 않았다. 처음 와보는 동네 골목 사이를 이리저리 뛰면서, 머릿속에선 오로지 하나의 생각만 맴돌았다. 다시는 누구를 좋아하지 않으리라. 다시는 누군가를 따라다니지도 않으리라. 그리고 전경에게 붙잡혀 곤봉에 맞는 상상을 했다. 그 소식을 듣고 혼절할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다.
‘안돼! 안돼!’
한참을 헉헉거리며 달리는 나를 향해 저 멀리서 할머니 한 분이 손짓하셨다.
“학생, 여기야. 여기로 와, 어서.”
할머니는 내가 들어오자마자 문을 잠그고, 창고 방을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학생, 걱정하지 말고 조용히 기다려. 전경들이 다 지나가면 말해줄게. 괜찮아.”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나는 그 말에 이끌려 창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이미 한 남학생이 숨어 있었다. 나를 안심시키려는 듯, 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걱정 마요. 할머니께서 우리 잘 숨겨주실 거예요.”
“네... 훌쩍훌쩍.”
우리는 한참을 숨소리만 내며 가만히 있었다. 다행히 잠시 후, 할머니가 와서 문을 열어주셨다.
“이제 괜찮아. 전경들은 다 갔어. 조심해서 집에 가.”
우리는 공손하게 두 손을 모아 인사를 드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그렇게 낯선 골목을 나왔을 때는 이미 땅거미가 세상을 덮고 있었다. 천당과 지옥을 오간 듯한 기분에 온몸이 여전히 떨렸다. 다리도 풀려 걷는 것조차 버거웠다.
“괜찮아요? 어느 학교 다녀요?”
옆에서 내 보폭에 맞춰 걷던 남학생이 물었다. 캄캄한 밤이라 그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전경에게 잡히지 않고 이렇게 안전하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 않아, 떨린 숨만 몰아쉬었다. 머릿속엔 빨리 하숙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래서 그때 내가 뭐라고 대답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서로 “잘 가세요.”라는 인사를 나누고, 큰 도로에서 헤어졌다는 것만은 또렷하다.
그날 이후, 나는 오를 다시 찾지 않았다. 동아리도 미련 없이 그만두었다. 오를 생각할 때마다, 그날 밤의 공포가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한바탕 소나기처럼 지나간 첫사랑의 가슴앓이는 결국 시간 앞에서 한 장의 추억으로 남았다. 그 추억이 아름답다고 말하고 싶진 않다. 내 첫사랑은 예쁘게 실패한 이야기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그 시절을 떠올리면, 사랑보다 먼저 전경의 곤봉이 떠오른다. 하지만 굳이 내 뇌를 ‘자동 완성된 언어’로 덮어씌워야 한다면—그냥 그때, 그건 풋사랑으로 기억하라고 명령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