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카 Jun 16. 2022

망가진 노트북

화가 났다.


노트북에 흠집이 났다. 


'흠집 하나 가지고 뭘.'


그렇게 생각이 들면서도 화면에 생긴 기다란 칼자국이 거슬린다. 어디 가서 고치자니 간편한 노트북 사는 것만큼의 가격이 든다. 돈이 아깝다. 내 피 같은 돈.


이 사건의 전말은 이러하다. 


따님이 칼로 화면을 긁어놓은 것이다. 


"칼날이 나온 줄 몰랐어."라고 변명을 하셨다. 한숨을 한 번 쉬었다. 그래, 몰랐다는데... 화를 참으며 화면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검색했다. 심각한 표정에 따님은 옆에 와서 내 눈치를 살핀다. 궁금하면 저지르고 보는 성격은 누굴 닮은 걸까? 조심성은 왜 없는 걸까? 내가 뭔가 잘못 가르친 건 아닐까? 그나저나 노트북은 어쩌지? 하는 생각들이 머릿속에 한꺼번에 떠올랐다.


치약을 바르면 의외로 깨끗해진다는 정보를 얻었다.


실패했다.


아무리 바르고 문질러도 복구가 되지 않는다. 결국은 갈아버리는 수밖에 없는 듯하다.


이래서 노트북은 공유를 하는 게 아닌가 보다. 그런데 어쩌랴, 자기 것이 있어도 엄마가 쓰는 걸 공유하는 게 더 좋은 나이인 것을.


앞으로는 조심하겠지, 하는 마음으로 아이에게는 화를 내지 못했다. 기계보다 중요한 게 사람인데, 고작 이것 가지고 화내면 내가 쪼잔해 보이는 거 같아서 관뒀다.


노트북은 여전히 칼집을 자랑하고 있다. 


이 노트북에 관한 사연이 하나 추가되었다. 


이런 사연을 가진 노트북은 세상에 내 것 하나뿐일 것이다. 희소하고 특별한 기억. 그래, 그거면 됐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