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도국 주재원이 되었습니다

방글라데시에 뼈를 묻겠습니다

by K 장남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해 보세요." 면접관이 말한다.


"저는 체질적으로 우수합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장기간의 해외 생활 중에 크게 아픈 적 없었습니다. 특히, 방글라데시와 열악한 환경이 비슷한 인도 콜카타에서도 예방 주사 한 방도 맞지 않고 말리리아, 뎅기열 같은 풍토병도 안 걸렸습니다."


그날 본인의 체질의 우수함을 어필하는 면접자는 나 밖에 없었다. 얼토당토 안 한 답변에 옆에 있는 지원자들은 그저 피식 웃는다. 반면, 면접관들은 답변이 일리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결국 같은 조 면접자 중 1차 면접은 나 혼자 합격했다. 입사 후, 마지막 질문을 하신 팀장님께 왜 나를 채용하셨냐고 여쭤봤다. 방글라데시 같은 개발도상국은 의료시설이 낙후해서 일단 몸 건강한 게 장땡이고, 일반 면접과는 다른 방글라데시 주재원 면접의 포인트를 잘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고 말씀해 주셨다.


사실을 말하자면 말이다. 1차 면접 전에 방글라데시 사전 조사에 오랜 시간을 할애했다. 먼저 유튜브와 구글을 활용했다. 방글라데시의 가난, 비위생적인 음식과 관습, WTP 같은 국제기구의 국가 원조에 대한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다음으로 살펴본 코트라 해외시장 자료에는 국가 개황, 산업별 현황이 담겨 있었고 저임금을 바탕으로 세계의 공장(NEXT CHINA)으로 부상 중인 방글라데시의 국가 유망성을 엿볼 수 있었다.


여기에 더해, 방글라데시 현장 경험이 있는 분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불현듯 드는 생각. '방글라데시도 결국 해외니까 내가 외대 출신임을 활용해 보자. 방글라데시 학과 교수님에게 면담 신청을 해봐야겠다.' 웬걸 학교 홈페이지에는 관련 학과가 없었다. 정보가 잘못되었나 싶어 부리나케 학교 안내처에 전화를 걸어 물어봤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그런 학과 없습니다."


어안이 벙벙했다. 외대 아시아학과에는 몽골어과, 태국어과, 심지어 터키-아제르바이잔어과도 있는데, 공식 인구 1억 7천만 명의 방글라데시 관련 학과는 왜 없을까? 뒤늦게 찾아오는 싸한 느낌. '합격하더라도 방글라 주재원 생활이 순탄치는 않겠다..'





비장한 각오로 진행된 2차 면접일. 면접에는 임원진이 참석하셨다. 면접실에 '만다라트'를 들고 들어가 무릎 위에 가지런히 올려두었다. 내가 가져온 물건이 궁금하셨는지 연세가 들어 보이는 임원 한 분께서 보여달라고 요청하셨다.


"제가 준비한 것은 만다라트라는 회사에서의 인생 계획표입니다."


만다라트는 미국 프로야구(MLB)에서 특급 활약하고 있는 일본인 야구선수 오타니 쇼헤이가 중학생 때 만들어서 화제가 된 인생계획표다. MLB 구단 신입 드래프트 전체 1순위라는 상위 목표가 정가운데에 적혀 있고, 이를 성취하기 위한 하위 목표 아홉 가지가 상위 목표 주위에 위치해 있다. 또다시 그 하위 목표들을 이루기 위한 실행 목록이 자세히 기재되어 있다.


오타니의 형식을 그대로 가져와서 '방글라데시 지역전문가'를 상위 목표로 변경하고 나만의 만다라트를 완성했다. 이를 위한 아홉 개의 하위 목표로는 시기별로 신뢰받는 신입사원, 방글라 현지 적응, 방글라 최고전문가, 퇴직 후의 삶을 포함했다. 실행 목록으로는 30분 일찍 출근, 벵갈어 숙달, 현지 국토 대장정, 현지 노동법 연구와 같은 깊게 고민한 흔적을 남기려 애썼다.


2018년 취준생 시절에 작성한 '방글라데시 지역전문가' 만다라트


이런 노력과 절박함이 면접 때 빛을 발했다. 임원께서는 만다라트를 손자에게 보여주고 싶다며 가져가도 되겠냐고 물어보셨다. 나이로 구분해서 현지에서의 업무 역량은 얼마나 될 것인지, 언어 수준은 어느 정도에 도달할 것이고, 다른 한국인 관리자/현지인들과 어떠한 조직적 성과를 낼 것인지를 부가 설명드려서 만족하셨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임원께서는 미심쩍은 부분이 있으셨던 것 같다.


"한 가지가 빠져 있네요.. 왜 방글라데시죠? 방글라데시 같은 개도국에서 근무하기에는 고스펙인 것 같은데.. 다른 좋은 회사에 취업해서 편한 환경에서 근무할 수도 있지 않나요?"


"정말 솔직히 말씀드려도 되나요?"


"네. 당연하죠."


"돈을 많이 벌고 싶습니다. 채용 공고에 성과급까지 포함된 정확한 고연봉이 기재되어 있어서 지원했습니다. 집안 형편이 어려운데 장남이라 책임져야 할 것이 많습니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김우중 회장님께서 젊은이들의 도전 정신을 강조하셨습니다. 대기업에서 인턴 생활을 잠시 해보니 업무가 제한적이라 회사의 부속품 같아서 답답했습니다. 방글라데시 같은 개도국에 가면 이바지할 일이 많을 것 같고, 업무를 주도적으로 해보고 싶습니다."


모 아니면 도였다. 붙거나 떨어지거나. 다행히도 답변을 들으신 임원께서는 웃으시며 겁모르는 지원자의 솔직함을 좋게 봐주셨고, 나는 12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최종 합격했다.




입사 후 사내 교육 기간을 거쳐 진행된 신입사원 발표회가 열렸다. 임직원들 앞에서 그간 뭘 배웠는지, 어떤 걸 느꼈는지에 대해 발표하는 자리였다. 발표회의 마지막에는 입사 동기들과 함께 회사생활에 대한 각오를 말하는 순서가 있었다. 내 순서는 마지막. 모두가 지켜보는 이벤트의 대미를 장식해야 했다. '뭐라고 해야 임팩트가 있을까?' 몇 차례 고심을 하던 중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저는 방글라데시에 뼈를 묻겠습니다!!"


'와!' 하는 함성 소리와 함께 회사 임원진, 선배들의 쏟아지는 박수갈채, 또다시 찾아오는 불길함. '큰일 났다.. 방글라 파견 갔다가 한국으로 영영 못 돌아오는 거 아냐?'


그로부터 5개월 후 나는 방글라데시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6년 간의 그 많은 갖은 고초를 예상치 못한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