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글라데시, 미지의 땅으로

달갑지 않은 첫 인상

by K 장남

2018년 11월 1일, 여전히 파견 일자를 기억한다. 늦가을에서 초겨울로 접어든 환절기라 체감상 너무도 쌀쌀했던 날씨. 새벽 5시, 광명 경찰서 앞에서 인천공항으로 가는 공항버스를 타려고 손을 호호 불어가며 이민 가방을 끌고 집을 나섰다. 나보다 두 달 늦게 입사한 같은 팀 후배와 함께다. 경유지인 태국 방콕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에 도착했다.

타이항공 비행기 안에는 각 계층의 방글라데시인들이 오밀조밀 앉아 있었다. 메카 성지 순례를 다녀오는 순백색의 종교복 차림의 무슬림, 단체로 붉은색 모자와 진녹색 티셔츠를 입고 산업 교육을 다녀오는 엔지니어 공무원, 명품을 온몸에 두르고 1등석에 앉아 한껏 자신을 과시하는 듯한 부유층까지. 비행기 파이널 콜에 맞춰 스무여 명의 중산층 가족이 탑승했는데 이불, 장갑과 같은 수많은 생활필수품을 보따리에 꽁꽁 싸매어 양손에 바리바리 들고 있었다. 어찌나 물품이 다양하고 많았던지 보따리 사이로 삐져나온 물품들이 기내에 떨어지기도 했다.

'왜 이불을 해외에서 사서 가져가는 걸까? 방글라데시에는 이불이 없나?' 혼자 생각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알게 되는데 한 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방글라데시의 겨울은 12월부터 2월 정도인데, 이 기간을 제외한 연평균 기온은 36.7도로 매우 덥고 습하다. 이로 인해 현지인들이 겨울 날씨 적응에 애를 먹는다. 여기서 겨울이라고 해봐야 한국 기준으로는 늦가을에서 초겨울 사이 날씨 밖에 되지 않지만, 무더운 날씨에 적응되어 있던 사람들이 갑자기 기온이 떨어지니 길거리에서 다수가 동사하기도 한다. 이곳에서 여섯 번의 겨울을 나는 동안 현지 미디어에서 사람이 동사했다는 뉴스를 보는 것은 연례행사가 되었다. 파견 당시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었지만 지독히도 가난한 방글라데시의 걸인들을 봐왔기에, 이제는 해외에서 양질의 이불을 사가는 현지인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확장 중인 다카 국제공항의 제3터미널. 24년에 완공 된다고 했는데 26년인 현재도 미운영 중이다.

도착한 다카 샤잘랄(Shajalal) 국제공항. 비행기를 내리자마자 뛰어 나가는 동양인을 발견한다. 역시 한국인이다.


왜 그들이 뛰어가는지 10분 뒤 이해했다. 다카 공항에는 인천 공항처럼 무인 입국 확인 시스템이 도입되어 있지 않다. 현지 공항 공무원들이 대면으로 심사를 진행한다. 심사대는 내국인들과 외국인들로 나뉘어 있는데 외국인 대기열만 길었다. 긴 줄도 문제였지만 옆 동료들과 떠들며 세월아 네월아 심사하는 공무원들의 업무 태도가 더 문제로 보였다. 기내부터 뛰어갔던 한국인들은 필시 이 답답한 입국 심사 대기 과정을 잘 아는 사람들이었을 거다.

느린 행정과 에어컨도 없는 무더운 날씨 속에 점차 녹초가 되어 갔다. 한 시간 정도 기다리자 앞 줄에 있던 열다섯 명 정도의 입국 대기자들이 심사를 마친 후 빠져나갔다. 드디어 내 차례.

"Hi. As-salamu alaykum(앗살라무알라이쿰)!" 심사를 무사히 통과하고 싶은 마음에 독학해 온 현지어로 공무원에게 인사를 건네본다.

"For what purpose are you going to stay in Bangladesh? What are your address and work?" 어설픈 현지어는 관심 없다는 듯 진청색 유니폼을 입은 공무원이 현지식 영어로 질문을 한다.

"I came here to work for a garments company. My address is here." 준비해 온 현지 회사 주소를 공무원에게 전달했다.

다행히 문제없이 입국 수속을 마무리했다. 심사대를 지나 바로 오른쪽에 위치한 수화물 찾는 곳으로 이동. 이민 가방을 찾기까지 그로부터 또 반 시간. 이곳에서 기내에서 봤던 '보따리 가족'을 다시 만났다. '현지인들은 이미 통과를 했네. 외국인들한테만 엄격하게 심사하는 건가? 야박하네..' 방글라데시의 첫인상, 샤잘랄 공항은 나를 반기지 않는 듯했다.

수도 다카 공항에서 숙소가 있는 사바(Savar)까지는 차로 약 1시간 30분이 소요된다. 한국으로 치면 다카는 서울, 사바는 경기도쯤 되는 곳이다. 교통 체증이 없다면 50분 만에도 도착할 수 있는 거리지만, 그런 가정이 무의미하다.

공식 인구만 1억 7천만 명의 거대 인구 국가, 방글라데시. 이 거대한 인구가 차량, 릭샤(인력거), 오토바이를 몰고 교통 신호를 지키지 않은 채 도로를 가득 메운다. 한마디로 무법천지다. 이들은 차선을 변경할 때도 깜빡이를 켜지 않으며 역주행도 서슴지 않는다. 이 역주행 때문에 드라이버 옆 조수석에 탄 나는 '아.. 오늘 여기서 죽는구나' 했다. 반대 차선을 주행해야 정상인 집채만 한 크기의 버스가 바로 코 앞까지 우리 차선으로 역주행해 올 때마다 가슴이 철렁했다.

우리를 픽업한 드라이버도 별반 다르지 않다. 차가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아수라장이기 때문에 드라이버의 오른손은 핸들에, 왼손은 항상 경적 위에 놓여있다. 왼손으로 10초마다 경적을 울린다. 나름의 방어 운전이다. 그렇지만 그 경적을 귀 기울여 듣는 이는 없다. 서로 경적을 울려대기 때문에 보행자는 자신의 바로 뒤에 있는 차의 경적 소리도 듣지 못한다. 차량끼리 접촉 사고가 나도 드라이버끼리 욕지거리만 허공에 날릴 뿐 차를 멈춰 세우고 보험회사를 부를 생각은 하지 않는다. 공항에서의 긴 기다림과 무더위에 진이 빠진 나는 단잠이 필요했지만 이 나라의 도로 사정 때문에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수도 다카에서 사바로 가는 차 안에서


덕분에 다카에서 사바로 이동하는 동안 바깥 구경을 실컷 할 수 있었다. 매연과 미세먼지로 뒤덮인 회색빛 하늘, 한창 건설 중인 새로운 도로와 건물, 안전모도 쓰지 않은 채 일하는 막노동자들. 다카와 사바의 경계인 갑돌리(Gaptoli) 지역의 강과 다리, 석탄 매연을 뿜어내는 벽돌 공장, 사람들이 질서 없이 내다 버린듯한 불법 쓰레기장과 그곳에 방생돼 쓰레기를 먹고 자라는 흑돼지들까지.. 개도국, 아니 최빈국의 현실을 목도하며 사바로 이동하는 내내 암울한 현실을 부정하려 참 많이 애썼다.

'딱 3년만.. 파견기간 3년 동안만 바짝 벌어서 복귀해서 이직하던가 하자.' 면접 때 준비한 만다라트 인생 계획표와 전 임직원 앞에서 밝힌 포부는 그새 온데간데없고 눈앞에 놓인 현실과 타협 중이었다. 방글라데시 도시 환경이 주는 첫인상은 늦여름 몸살감기처럼 혹한기 같았다.




하산 아파트(통칭 사바 하우스)


드디어 도착한 사바의 기숙사. 다른 외국인들도 사는 아파트라 그런지 생각보다 쾌적했다.
동반 파견을 온 후배와 나는 1층에 위치한 각 방에 짐을 풀고 내 방에 잠시 모였다.

"야. 괜찮냐? 드라이버 운전하는 거 괜찮았어? 나는 오늘 죽는구나 싶더라."
"저도 무서워서 혼쭐 났어요. 3년을 어떻게 버티지 싶어요."
"나도 그래..."

똑똑똑.

공항에서 우릴 픽업해 데리고 온 선배였다. 곧 3층 식당에서 우리 둘을 위한 환영회가 있으니 씻고 올라오라고 한다.

저녁 6시부터 시작된 신규 파견자 환영회. 법인장님을 비롯한 약 스무 명의 주재원 선배들이 계셨다. 간단히 자기소개를 하고 시작된 술자리. 공장장님들이 일어서셔서 환영 덕담을 건네며 건배 제의를 하셨다. 여기저기서 따로 찾아와 술을 권하며 환영하는 선배들. 맥주 한 잔만 해도 얼굴이 시뻘게지는 나였지만 첫 사회생활을 위해 소주 두 병 이상을 들이켰다.

9시쯤 술자리가 끝나나 싶었다. 차장 이상급 선배들은 내일 출근을 위해 일찌감치 귀가했다. 나머지 남은 인원들은 일곱 명 남짓. 대부분은 나와 나이가 비슷한 30대 선배들이다. 선배들과 밸런스 게임도 하고 노래도 같이 부르다가 자정이 되어 술자리를 파했다.

어떻게 방에 돌아갔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선배들이 다 같이 방으로 데려다주고 돌아가셨던 것 같기도.. 샤워를 하려고 누렇게 나오는 쇳물을 콸콸 틀었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화장실 타일 바닥에 엎드려 잠이 들었다.

다시 눈 떴을 때 앞에 보이는 토사물. 샤워를 마치고 방으로 기어 나와 쉰내가 나는 수건으로 몸을 닦았다. 휴대폰 시계를 보니 새벽 1시였다. 다음 날의 컨디션도 걱정 됐지만 첫 출근부터 늦잠 자면 큰 일 난다는 생각에 아침 6시로 맞춰진 알람을 재확인했다.

'아.. 매일 이런 생활이면 3년이나 버틸 수 있을까?'
만취 상태에서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달갑지 않은 방글라데시의 첫인상을 뒤로한 채 그대로 침대에서 곯아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