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보스가 되다

인샬라! 알라신의 환영 인사

by K 장남

새벽 5시경, 웬 남자의 목소리에 잠에서 깬다. 전날 자정까지 이어진 환영 회식의 영향으로 만취한 상태였지만 또렷이 들리던 첫 아잔 소리다.

아잔(Azan, 벵갈어 쓰기)이란 이슬람에서 예배의 시각을 알리는 육성에 의한 부름이다. 이슬람 국가인 방글라데시에서는 하루에 다섯 차례 아잔을 울리는데 담당 무슬림 남성이 종탑에 올라가 성도 메카를 향하여 아잔을 읊는다.


아잔의 내용은 그 목적에 충실하다.


'알라는 지극히 크시도다. 우리는 알라 외에 다른 신이 없음을 맹세하노라. 예배하러 오너라. 구제하러 오너라. 알라는 지극히 크시도다. 알라 외에 다른 신은 없느니라.'


이런 선의를 담고 있음에도 현지에 도착한 날 과음하여 피로가 쌓인 이에게 새벽의 아잔은 단잠을 방해하는 소음이었을 뿐, 그를 위한 신의 부름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때까지는 그랬다.




기숙사에서 회색 현대 봉고를 타고 10여 분을 달려 공장에 도착했다. 그때는 몰랐지만 무려 4년 동안 일하게 될 회사였다. 축구장 만한 드넓은 부지에 6층 거대 건물이 두 개씩이나 있는 대규모 공장이었다.


곧바로 진행된 공장장님과의 면담 시간. 신생 공장이라 전체 캐파의 절반만 가동 중이었지만 1~2년 이내에 최대 캐파로 가동 예정이라며 할 일이 많을 거라고 말씀해 주셨다. 공장장님은 50대 후반으로 정년 퇴임을 앞두신 분으로 외유내강형 타입이셨다. 공항에 마중 나오셨던 사수는 나와 입사 시기가 3년 차이가 나는 선배였다. 성격도 호쾌하시고 일도 잘하셔서 선후배들로부터 신망이 있는 분이었다. 같이 일하는 분들을 잘 만났다는 생각에 마음이 놓였고, 나만 열심히 배워서 잘 따라가면 되겠다 싶었다.


사무실 쇠창살 너머로 보이는 공장 주변 풍경


처음 도착한 개인 사무실은 느낌이 달랐다. '공장'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투박한 공간이었다. 기본 골격만 갖추고 흰색 페인트로 덧칠만 해둔 사무실. 건축이 잘못된 건지, 사무실 높이가 낮아서 몸을 일으키면 머리가 곧 천장에 닿을 것 같았다. 사무실 뒤쪽에는 녹슨 쇠창살로 된 창문이 있었는데 마치 감옥수가 된 듯한 교도소 분위기를 연출했다. 창문 밖으로는 작게 형성된 마을이 보였고 창문을 열면 멀리서부터 날아오는 쓰레기냄새가 날아들었다. 좁고 퀴퀴한 사무실, 쇠창살, 쓰레기 냄새.. 이 모든 외부 환경이 나를 옥죄었다.




선배의 소개로 같이 일하게 될 현지인들과 어색한 첫인사를 나눴다. 그중 모인이라는 HR 매니저가 있었는데 한국어를 할 줄 알아 한국인과 현지인 사이에서 통역 업무를 겸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보스. 저는 모인이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근데 저보고 뭐라고 하신 거예요?"

"아, 방글라데시에서는 현지인들이 외국인을 '보스(Boss)라고 불러. 네가 김 씨니까 김 보스라고 부를 거야." 우리의 어색한 첫인사를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선배가 현지 문화에 대해 설명해 줬다.

'나는 김 보스구나. 김 보스!'

선배, 모인과 함께 첫 공장 투어를 갔다. 공장의 업무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생산과 지원. 내가 맡은 지원팀 업무에는 시설 관리 업무도 있는데, 공장 전체 구조와 시설물 현황을 숙지해야 했다. 경비실, 발전실, 변전실, 옥상, 의류 생산용 기계가 설치된 현장을 돌아보며 공장 구석구석을 눈에 담았다. 큰 규모의 공장이라 한 바퀴 도는데만 한 시간이 소요됐다. 강렬한 태양빛과 물기를 머금은 습한 날씨에 반팔 티셔츠는 땀으로 범벅이 됐다.

사무지원팀 업무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인사, 자금/회계, 수출입, 컴플라이언스, IT까지 전반적으로 모두 알아야 했다. 당장 다음 해부터 바이어가 원하는 목적지로 직접 수출을 해야 했기에 캐파(Capacity) 증설이 예정되어 있었다. 이로 인한 새로운 인원 채용이 필요했고, 실제로 다음 해에 사무실 인원은 스무 명, 생산직은 천 명 이상 추가 채용이 됐다. 이제 막 현지에 도착한 신입 주재원이지만 할 일은 태산이었고 부담이 컸다.

거기에 물갈이까지 시작해서 매일 있었던 업무 회의에서도 아무것도 듣지 못하고 한 시간 동안 끙끙 앓았고 회의가 끝나자마자 화장실로 달려갔다. 신입사원이었기에 선배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그걸 참았던 것인데 그게 가능했다는 게 아직도 신기하다.




파견 후 일주일이 지난 시점. 지원팀의 환영 회식이 있었다. 각 공장의 지원 업무 인원들만 모여서 술 한 잔 기울이는 자리였다.

그날은 회식 참석 때문에 야근 없이 정시에 퇴근을 했다. 그러다 도로에서 한 무리의 시위대를 맞닥뜨렸다. 차량에서 50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경찰이 시위대와 대치 중이었다. 영문도 모른 채 우리 차량으로도 손바닥 만한 짱돌이 날아들었다. 갑작스러운 돌세례에 드라이버는 급하게 차를 돌리려 했지만 뒤는 다른 차량들로 꽉 막혀 있었다. 오도 가도 못 하는 상황. 다급히 HR 매니저에게 전화를 걸어 구조 요청을 했다.

"모인! 한국인 보스들이 집 가는 길인데 돌이 계속 날아와요. 이거 무슨 일이에요?"

"네. 보스! BRITISH TOBACO라는 담배 제조회사가 앞에 있는 급여를 안 줘서 직원들이 도로에서 시위하고 있어요. 야근 중인 따렉이 오토바이가 있으니까 바로 보내드릴게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그렇게 10분을 차에서 노심초사하며 기다리니 IT 파트장 따렉이 오토바이 부대를 이끌고 도착했다. 나는 타렉의 오토바이에 선배들은 다른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그때부터 고역의 시작이었다. 업무 관계를 만들기 위한 현지인과의 첫 교감 과정이라고 하기에는 대가가 가혹했다. 따렉의 허리를 감싸 안고 등에 기대니 방글라데시 도착일 기내에서 처음 맡았던 시큼알싸한 암내가 났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타렉은 흡연자라 연초 냄새도 옷에 짙게 배어 있었다. 암내와 연초 냄새가 비흡연자인 내 코 속을 파고들었을 때의 감각이란.. 먹고 싶지 않은 청양고추를 한껏 집어먹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생명의 위급한 상황. 냄새가 문제가 아니라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이 우선이었다.

다행히 따렉은 근처에 집이 있어 이 동네, 사바의 지리에 훤했다. 도로 후미의 오솔길로 빠져 3분가량 전속력으로 달리자 시골의 내음새를 머금은 논밭이 나왔다. 엄마의 고향, 김해 시골에서 보던 익숙한 풍경과 냄새였다. 전경을 둘러보려 했지만 그 사이 석양이 저물어 적막이 내리운 시골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개, 소, 닭의 울음소리가 멀리서 들려오다 어쩐지 조용해진다 싶으면 오토바이 전면등이 그것들을 비췄다. 간간히 전기불이 켜진 민가가 멀리서 보이면 안도하다가도,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 까만 피부의 현지인을 마주하면 곧 구루카를 들고 쫓아올 듯한 아프리카 원주민 같아 공포심이 일기도 했다.

그렇게 10여 분을 더 달리니 크고 작은 돌이 지뢰처럼 깔려 있는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가 나왔다. 지옥길의 피크. 오토바이의 뒤쪽에 착석한 나와 선배들은 덜컹거리는 오토바이에 치질 환자 마냥 엉덩이가 너무 아팠다. 지옥길에서 천천히 30분을 이동하니 다시 등장하는 포장도로. 살았다 싶었다. 질주 본능을 숨기고 있던 타렉이 마지막이라며 신나게 속도를 올렸다. 덩달아 텐션이 올라간 나는 영화 '비트'의 정우성이 된 마냥 바람을 만끽하며 "끼아아아!" 하고 소리를 내질렀다. 벌어진 내 입으로 따렉의 암내, 시골의 잡다한 불쾌한 냄새가 콧 속을 후벼 팠지만, 이제는 안전하다는 안도감이 들며 첫 일주일 간의 스트레스도 함께 날아갔다.

회사에서 출발한 지 1시간. 간신히 숙소에 도착해 따렉의 오토바이에서 내렸다.

"오늘 도와줘서 고마워, 따렉."
"언제든지요, 보스. 인샬라!" 한국식 인사법은 언제 배웠는지 허리를 90도로 굽히며 보스인 나에게 예를 표했다. 한국인 보스들과 일하면서 한국식 예법을 배웠던 모양이다.




예정보다 한 시간 늦게 시작된 회식 자리. 방글라데시에서 15년간 근무하신 팀장님께 도로 점거 시위와 탈출기에 대해 설명드리고 인샬라가 무슨 말인지 여쭤봤다.


"인샬라(In Sha Allah)는 '신의 뜻이라면'이라는 뜻인데, 무슬림들은 모든 행위가 신의 허락이 있어야 비로소 가능하다고 생각해서 신앙을 표명하는 말이라고 생각하면 돼."

현지에서의 첫 일주일 동안 매일 같이 들리던 아잔과 인샬라. 어쩌면 알라 신은 이곳에 온 걸 환영한다는 메시지를 그의 방식대로 전하며 나를 일깨우고 있던 것인지도 모른다. 전달 방식이 새벽 소음, 쇠창살, 쓰레기 냄새, 업무 부담, 물갈이, 폭력 시위, 따렉의 암내 같은 때로는 고약한 방식이긴 했지만, 이 기간 동안의 하드 트레이닝을 통해 정신을 바짝 차리고 열악한 환경에서도 장기간 버텨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이후 나를 구해줬던 따렉과의 관계는 눈에 띄게 돈독해졌다. 그에게는 어린 딸이 있었는데 다리를 다쳐 외부 활동을 하지 못해 비타민 D가 부족하다고 했다. 이를 기억해 뒀다가 한국에 휴가를 갔을 때 비타민제를 사다 주기도 했다. 눈물을 보이던 따렉. 그도 나의 마음씀씀이가 고마웠는지 내 PC가 고장 나면 밤늦은 시간도 개의치 않고 숙소로 찾아와 뚝딱뚝딱 고쳐주곤 했다.

따렉 뿐만 아니라 HR 매니저 모인, 회계 매니저 파베즈, 수출입 매니저 마루프 같은 주요 현지인들과도 끈끈한 개인 관계를 쌓아나갔다. 덕분에 산더미 같은 지원팀 업무를 그들과 함께 헤쳐나갈 수 있었다. 1년간 현지 경험을 쌓으며 미숙한 신입 주재원에서 벗어나 '신의 뜻대로' 현지인들의 보스가 되었다.

'In Sha Alla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