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와 야외 생일 파티

비염 환자는 마스크를 쓰면 안 되나요?

by K 장남

비염 환자는 마스크를 쓰면 안 되나요?

어려서부터 알레르기성 비염을 앓았다. 집먼지가 항원이다. 비염 때문에 본의 아니게 남들에게 피해를 줬다. 중학교 시절, 시험 기간이 되면 학원에 남아 자습을 하곤 했는데, 코를 훌쩍 거리는 소리 때문에 주변 친구들이 집중이 안 된다고 불만투성이였다.


성인이 되고 미국에서 한국으로 편입을 하기 위해 독서실에서 공부를 할 때도 그랬다. 다음날이 경찰 공채 시험이라 스트레스 지수가 극에 달해있던 수험생이 있었다. 그가 내 어깨를 툭툭 치더니 독서실 밖으로 불러내고는 마지막 공부에 집중할 수 없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그만큼 먼지가 있는 집, 학원, 독서실 같은 내부 공간에서 비염 증상이 심각했다. 다행히 외부에 있을 때는 비염 증상이 없었다. '집'먼지 알레르기니까 내부 공간에서 날리는 먼지만 아니면 기관지는 괜찮았다. 그런데 웬걸? 방글라데시로 파견을 온 후 비염이 다시 터졌다.


방글라데시의 겨울은 미세먼지로 앞이 보이지 않는다. 특히 출근길은 안개와 뒤덮여서 바로 코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다. 매년 11월부터 2월까지인 겨울철 기간 동안 공기질지수인 AQI는 200을 넘는다. 이런 환경에서 나 같은 기관지 환자가 마스크도 쓰지 않고 공사 관리와 같은 외부 업무를 하는 건 거의 자살이나 다름없다. 비염이 터질 때마다 재채기를 하고 콧물이 줄줄 흘러 정신이 없었지만 휴지로 코를 틀어막고 컴퓨터 앞에 앉아 업무를 했다. 알레르기 약을 먹고 콧 속에 비염 치료 스프레이를 뿌린 후 점심시간에 낮잠을 자면 증상이 완화 됐다.


방글라데시는 이슬람 국가라 금요일이 주말이다. 파견을 오고 골프를 취미로 시작했는데 라운딩을 가기 위해 주말에도 새벽같이 일어났다. 겨울철 새벽 6시에 집을 나서면 뿌연 안개와 범벅된 미세먼지를 마주한다. 덕분에 시야가 가려져 10M 앞도 정확히 볼 수 없다. 티샷한 공이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어 골프공을 스무 개씩 들고 다녔다. 2019년은 코로나 전이라 바이러스나 미세먼지에 대한 경각심이 아무도 없었다. 모두가 마스크를 쓰지 않는 것이 당연했고 나 역시 유별나 보이기 싫어서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골프를 다녀올 때마다 비염이 심각하게 터졌고 일주일 중 하루 있는 휴일 오후 시간을 침대에 누워 보내야 했다.




'공기가 이렇게 안 좋은데 왜 마스크를 안 쓰실까?' 침대에서 요양을 할 때마다 들었던 생각이다. 드라마 미생의 '오상식 차장'과 같은 캐릭터이신 열혈남아 과장님께 여쭤봤다. 친분이 있는 분이었기에 못할 질문도 아니다 싶었다.


"한 10년 전에 첫 파견 왔을 때 너랑 똑같은 생각이어서 건의해 봤거든. 뭐라는 줄 아냐? '현장과의 괴리감' 때문에 안 된대. 현지인 생산 작업자들이 현장에서 고생하는데, 어떻게 한국인들만 살자고 마스크를 끼고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관리를 하냐는 말이야. 사무실에 공기 청정기라도 설치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그것도 시행 안 됐어."


"그래도요.. 과장님. 현장과 사무실 간의 차등을 두지 않으려면 사무실도 현장처럼 에어컨이 아니라 선풍기를 설치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생산 현장, 사무실은 똑같이 더운데 작업자들이 있는 현장에는 선풍기 설치해 주고, 관리자들이 있는 사무실에는 왜 에어컨을 설치해 주는 건가요?"


과장님은 내가 맹점을 짚었다는 듯이 씩 웃으시고는 담뱃불을 끄고 사무실로 돌아가셨다. 오래전에 이미 비슷한 생각을 하시고 윗선에도 건의해 보신 듯했다.


'복지 차원에서 회사에서 마스크를 지급해줘야 할 것 같은데.. 마스크를 일부러 못 쓰게 한다고? 이건 너무 부당한 거 아냐?' 라며 공장 옥상에 홀로 남아 애써 씁쓸함을 삼켰다. 방글라의 회색빛 하늘을 올려다보며 공기가 좋지 않은 날에는 그 재밌는 골프도 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투박한 공장다움을 원하는 이곳이었기에 일개 사원은 그 결정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저 3년 뒤 몸성히 복귀할 수 있기를 바라며 터벅터벅 사무실로 걸음을 재촉했다.




그로부터 며칠 뒤, 방글라 주재원 생활 시작 이후 첫 생일을 맞이했다. 현지에서의 첫 생일이라 특별하게 느껴졌지만, 회사 동료들 중 일개 신입사원의 생일이 언제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특히, 네 달 정도의 시간이 지나 불필요한 술자리는 참석하지 않고 사람들과의 교류가 줄어든 시기였기에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도 사람 심리가 그런 게 있더라. 거창한 걸 바라는 건 아니지만 생일 축하한다고, 그동안 현지 적응 하느라 고생 많았다고 따뜻한 말 한마디와 격려 정도는 받고 싶은 묘하게 옹졸한 보상 심리. 외롭지 않을 정도만 받고 싶은 축하, 내가 원했던 건 딱 그 정도였다.


마침 생일 당일에 술자리가 있었다. 3년 파견 기간을 마치고 본사 복귀 예정이신 선배를 위한 전체 회식이었다. 퇴근 후 옷을 갈아입고 회식 장소인 기숙사 3층 식당으로 갔다. 그런데 아무도 없었다. 식당 옆 부엌에서 정신없이 음식을 만들고 있는 현지인 요리사들과 배아라(기숙사 청소, 빨래를 해주는 남자 인원들을 현지에서는 '배아라'라고 부른다. 여자면 '아야'라고 한다)들에게 물어보니 오늘 회식은 특별히 기숙사 옥상이라고 했다. '3층 식당도 공간이 충분한데..' 미세먼지가 자욱한 야외에서 회식을 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코가 시큰거렸다.


술이 한 잔, 두 잔 파도를 타며 몸으로 들어왔다. 취기가 오르니 자리를 옮겨 다니며 회사 동료들과 업무 얘기도 하고 최근 근황 얘기도 한다. 복귀 예정인 선배와도 술잔을 기울였다. 평소 왕래가 없던 선배였지만 고생 많으셨다고 말을 건네고, 남은 기간 동안 몸 건강하라는 덕담도 들었다. 그런데도 내 마음에는 뭔가 채워지지 않는 헛헛함과 비워지지 않는 쓸쓸함이 있었다. 생일이라서 그랬던 것 같다.


결국, 같이 파견 온 더블백 동기 후배에게만 본심을 털어놨다. 오늘이 내 생일이라고 살짝 얘기했다. 후배는 당황한 것 같았지만 축하를 해주고는 태연하게 다른 주제로 말을 돌렸다. 원래 내가 소속된 사무지원 파트에서 매년 주재원들의 생일도 조사해서 챙겨주는 이벤트를 하는데 내 생일이 연초라 아직 업데이트가 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로부터 한 30분쯤 지났을까? 선배 두 명이 초코파이를 쌓아 초에 불을 붙이고는 옥상 문을 열고 등장했다. 스마트폰에서 울려 퍼지는 생일 축하 노래와 같이 따라 부르는 회사 동료들. 그들 옆으로 후배가 씩 웃고 있었다. 선배들한테 내 생일이라고 알리고 초코파이 케이크를 준비한 것이다. 이런 서프라이즈를 바랐던 건 아닌데.. 진심으로 고마웠다. 지난 4개월 간 경험한 현지 생활과 업무, 물갈이와 같은 몸고생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갔고 생일에 대한 섭섭함도 일순간에 누그러 뜨러 졌다. 회식 장소가 야외여서 미세먼지에 둘러싸여 있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내일 걱정은 되지 않았다.


마스크 착용 얘기를 나눴던 과장님이 멋쩍어하시며 술잔을 들고 내 옆으로 오셨다. 생일인걸 몰랐던 게 미안하셨던지 괜히 너스레를 떠셨다. 생일 축하한다고, 그간 낯선 곳에서 적응한다고 고생 많았다고 하셨다. 지금도 공기가 안 좋은데 야외 회식에 참석해 줘서 고맙다는 말도 잊지 않으셨다.


"네가 예전에 미세먼지 심한데 마스크 못 쓰게 하는 거는 부당하다고 했었잖아. 이후에 혼자 다시 생각해 봤는데.. 너 말이 다 맞아."


"그런데 회사 생활이라는 게 자기 뜻대로 안 되는 게 많아서 부당해 보이는 결정도 참고 견뎌내는 것도 실력이야. 그리고 이것도 다 좋은 경험이니까 잊지 말고.. 네가 나중에 팀장 되거나 하면 좋은 방향으로 개선을 해 봐. 생일 축하한다." 내 어깨를 툭 치시더니 무심히 원래 자리로 돌아가셨다. 단체 생일 축하와 선배의 진심 어린 조언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로부터 1년 뒤, 코로나가 방글라데시도 휩쓸었고 마스크 착용도 의무화되었다. 코로나가 엔데믹으로 전환된 이후에도 마스크 착용이 권고되어서 현장에서나 골프를 칠 때나 마스크를 애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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