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모님들은.
지금 일을 쉬고 있다.
그리고 고향에서 어머니와 함께 지내고 있다. 같이 있지만 느끼는 게 있다.
시간이 갈수록 앞으로 혹은 미래 이야기를 안 하신다. 대신 과거 이야기를 더 많이 하신다. "니 쪼매날때 말이야~" 로 시작하는 이야기. "니 기억나나?" 몇 번이고 들었던 이야기. 나는 그걸 또 듣는다.
최근까지 솔직히 대충 들었다. 아 또 그 이야기, 하면서. 근데 요즘은 좀 다르게 들린다. 어머니가 나이가 드시면서, 그 이야기들이 점점 더 선명해지시는 것 같다. 최근 일은 잘 기억 못 하시면서, 30년 전 내가 유치원 다닐 때 일은 어제 일처럼 말씀하신다.
처음엔 걱정이 됐다. 기억력이 나빠지시는 건가?
근데 알고 보니 이게 자연스러운 거였다.
"레미니센스 범프"라는 게 있다고 한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10대에서 30대 사이의 기억을 가장 많이, 가장 선명하게 떠올린다. 첫사랑, 결혼, 출산, 아이를 키우던 시절. 인생에서 "처음"이 가장 많았던 시기. 그 기억들이 가장 깊이 박혀 있어서 나중에 가장 쉽게 올라온다.
부모님에게 그 시기가 뭘까.
나를 낳고 키우던 시절이다.
"니 쪼매날때~"는 어머니 인생에서 가장 선명한 기억이었다. 가장 바빴고, 가장 힘들었고, 그럼에도 아마 가장 행복했던 시절. 그래서 자꾸 그 이야기를 하시는 것 같다..
그리고 추억을 떠올리면 뇌에서 도파민이 나오는데, 어머니가 옛날 이야기를 하실 때는 그건 과거에 사시는 게 아니라, 그 시절의 행복을 다시 느끼고 계신 거라는 걸..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너 부모님은 너 낳아 기른 나날들이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기억일 거야."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어르신들이 유튜브에서 역사 다큐를 보시고, 누군가의 인생 이야기에 빠져 드는 것도 비슷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70대 이상 유튜브 이용률이 77%인데, 그 중에서도 압도적으로 많이 보시는 게 다큐멘터리와 교양이다.
내 추억이든, 남의 이야기든, 서사에 빠지는 건 같은 거다. 이야기 속에서 자기 삶의 의미를 다시 확인하시는 것. 더 이상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기 어려워질수록, 이미 있는 이야기가 더 소중해진다.
어르신들이 새끼 강아지를, 작은 강아지를 유독 좋아하시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작고 어린 존재를 안아 올리는 그 감각. 그게 아이를 키우던 시절의 감각이랑 닿아 있는 거다. 새끼 강아지를 보시면서 느끼시는 건 그냥 귀여움이 아니다. 그때로 돌아가는 것을..
몇년 전부터 어머니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한다.
나는 지금 어머니를 보내드릴 준비를 하고 있는 건가.
이걸 인정하는 게 쉽지 않다. 아직 여기 계신데, 벌써 그런 생각을 하는 내가 불효자 같기도 하다. 근데 어머니가 점점 작아지시는 걸 보면, 그 생각이 자꾸 든다. 안 할 수가 없다.
이걸 "예비 애도"라고 부르고 싶다. 아직 잃지 않았는데, 다가올 상실을 미리 슬퍼하는 것. 고령의 부모를 둔 자녀에게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감정이라고 한다.
자연스러운 거라는데, 자연스럽지가 않다.
근데 한 가지는 확실히 알겠다.
어머니가 또 "니 쪼매날때~" 하시면, 이번엔 끊지 말아야겠다. 대충 듣지 말아야겠다. 그 이야기 속에서 어머니는 가장 행복한 시절로 돌아가시는 거니까. 그리고 그 이야기의 중심에 내가 있으니까.
그 이야기를 같이 들어드리는 것.
그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인 것 같다.
우리 어머니 아버님의 시간이 이제 살아갈 시간보다 살아오신 시간이 더 많다는 걸 그래서 추억을 더 많이 말씀하신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