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 다니지 않아도 괜찮아

by 루카

염소는 평생을 도망치는 삶을 살아왔다. 가장 오래된 기억을 되짚어봐도 염소는 항상 도망가고 있었다. 다리에 사슬로 연결된 말뚝이 무거워서 결국에는 잡혔지만.

그 이후로는 목줄에 사슬이 채워졌다. 한 주인으로부터 다른 주인에게 넘겨졌다. 그들의 얼굴은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저 목줄을 끄는 손아귀의 잔상만이 어렴풋이 느껴질 뿐이었다.

가장 마지막으로 염소의 목줄이 넘겨진 사람은 한 장사꾼이었다. 그가 주인이 된 이후로는, 도망치는 게 일이 되었다. 장사꾼은 염소에게 울타리를 넘는 방법을 가르쳤다. 그러고 나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에게 염소를 팔아넘겼다. 그리고는 훈련시킨 대로 밤에 염소가 울타리를 넘어 다시 장사꾼에게 돌아오면, 다른 사람에게 또 팔아넘기는 식이었다.

여느 날과 다르지 않게 시장에서 다음 피해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 부드러운 인상의 노인이 성큼 다가와 장사꾼에게 돈뭉치를 쥐어주며 염소를 샀다. 노인은 염소를 목줄을 잡아 끌고가지 않고, 대뜸 들어 염소를 그의 농장에 데려갔다.

보통 팔려나간 첫날은 대부분 나무에 목줄을 묶어두는 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노인은 염소의 목줄을 풀어서 농장을 맘껏 뛰어다니라고 풀어줬다.

'오늘은 너무 거저먹기인데? 저 노인은 바보 아니야?' 염소는 생각했다.

노인은 양과 송아지를 데려와 염소와 친구를 해달라고 부탁하고는 사라졌다.

"이 농장은 울타리가 어디 있니?" 염소는 그들에게 물었다.

"울타리? 여기는 그런 거 없어." 송아지가 대답했다.

"그러면 어째서 너희들은 도망가지 않니?"

"여기가 우리 집인데 왜 도망가?" 양이 대답했다.

해 질 녘쯤 노인은 염소를 불렀다.

"밤에는 늑대와 사냥꾼이 잡아갈 수도 있으니 지붕 아래 들어와서 자렴. 그리고 또 낮에는 나가 뛰어놀으렴."

염소는 금시초문인 상황에 어리둥절해서 어찌할 줄을 몰랐다. 항상 해 질 녘에는 탈출 계획을 짰었는데 이 농장은 울타리가 없으니 굳이 계획을 짤 필요를 못 느껴서, 양과 송아지와 함께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뛰어놀았다. 그리고는 지친 몸을 외양간에 뉘었다.

다음날 동이 틀 무렵 염소는 잠에서 깼다.

'아차!'

밤에 도망가서 장사꾼에게 돌아갔어야 하는데 아침까지 잠들어버린 건 처음이었다. 눈곱 낀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염소를 보며 노인은 환하게 웃으며 잘 잤냐고 물어봐주었다.


'오늘 밤은 꼭 도망가야 해' 하고 머릿속에서 늘 생각하기는 했지만, 도망갈 마음이 전혀 생기지 않았다. '오늘까지만 여기서 있다가, 내일 밤에 도망가야지' 하고 생각했던 게 하루가 되고 이틀이 되고, 셀 수 없는 나날들이 지나갔다. 이제는 노인의 농장이 염소의 집이라고 느껴졌고, 친구가 된 양과 송아지와 매일 뛰어놀 수 있어서 즐거웠다.

그런데 어느 날 자고 있는데 인기척이 들렸다. 몸을 숨긴 장사꾼이 염소에게 돌을 던져 염소를 깨웠다.

"너 왜 다시 도망 안 나오냐? 날 배신한 거야? 너 내 밑으로 안 기어들어오면 내가 가만두지 않을 거야."

하지만 염소는 다시는 도망치기 싫었다.

밤을 새우며 염소가 도망쳐 나오기를 기다린 장사꾼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자기 말을 듣지 않고 돌아오지 않은 염소를 혼쭐 내줄 궁리를 했다. 그는 노인에게 팔기 직전에 염소를 팔았던 사람에게 가서 말했다.

"내가 당신에게 팔았던 염소가 도망갔다고 들었는데 저기 노인의 목장으로 도망간 것 같으니 다시 잡아오시우."

그 전주인은 노인에게 가서 염소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염소가 내가 시장에서 샀던 염소인데 이 농장으로 도망 왔소. 내가 다시 데려가겠소. 왼다리에 상처 자국이 있을 거요."

노인은 염소의 왼다리를 살펴보았고, 정말로 상처 자국이 있었다. 노인은 한참을 그 상처 자국을 바라보다가 그 전주인에게 제안했다.

"내가 이 염소에게 정이 들어버려서 그러는데, 염소 가격의 두 배를 주고 제가 당신께 사지요."

전주인은 어차피 잃어버렸던 염소라고 생각했었는데, 두 배의 가격을 준다니, 돈을 받고 만족해서 돌아갔다. 그 광경을 멀리서 지켜보던 장사꾼은 땅을 찼다.

그날 밤, 노인의 보호를 받았던 염소가 아니꼬웠던 장사꾼은 다시 염소를 밤에 찾아갔다.

"내가 네 전주인들 다섯이나 또 부를 거야. 노인이 그 다섯에게 모두 두 배의 값을 내줄 수 있을 거 같아? 내 밑으로 다시 돌아오라는 소리는 안 할 테니까, 좋은 말로 할 때 이 농장에서, 그리고 내 눈앞에서 사라져. 넌 평생 도망자로 살아야 해."

염소는 그 말을 듣고 눈물이 났다. 염소에게 노인은 너무나 고마운 존재였는데, 자기 때문에 노인이 큰 부담을 지게 될 거라고 생각하니 미안함에 어쩔 줄 몰랐다. 염소는 더 이상 노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고, 다시 도망가서 방랑 생활을 하려 마음의 준비를 하고 떠날 참이었다. 그 앞을 노인이 가로막았다.

"내가 너를 시장에서 팔려나가는 것을 본 것만 여러 번이고, 장사꾼의 술수가 뻔한데 매번 끌려다니는 네가 가엾어서 내가 너를 사들였단다. 혹시 나를 믿고 하루만 기다려줄 수 있니? 괜찮아. 괜찮아."


다음날 장사꾼은 어젯밤 경고한 대로 다섯 명의 전주인을 데리고 왔다.

"당신네들 농장으로부터 도망간 염소가 저기 있수다. 성질이 고약한 놈이라 또 도망갈 게 뻔하니, 그냥 이참에 잡아서 도살장에 넘겨버립시다."

장사꾼은 씨익 웃어 보였다. 그 말을 들은 염소는 다리가 후들거려 더 이상 서있기도 힘들었다.

"어떻게 다른 농장에서 도망간 염소가 이 염소라는 걸 확신하오?" 노인은 모두가 들을 수 있게 장사꾼에게 물었다.

"저 염소 왼다리에 상처 자국이 있을 거요. 어렸을 때부터 하도 도망가서 생긴 자국이라고 들었수다." 장사꾼은 신나서 큰소리로 외쳤다.

노인은 염소의 데리고 와서 염소의 왼다리를 모두에게 보여줬다.

'이제 다 끝났구나.'

도망치는 삶으로부터 얻은 상처가 이제는 염소의 삶에 종지부를 찍을 참이었다.

'이제야 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을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염소는 그 누구 탓도 하지 않고, 그저 자책만 할 뿐이었다. 염소가 몸을 떨고 있다는 걸 느낀 노인은 염소를 쓰다듬어 주었다.

노인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한 염소를 어떻게 우리 모두에게 팔 수 있었나요? 참 신기한 일입니다."

전주인들 사이에서 술렁임이 일었다. 장사꾼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이제 모두의 눈초리는 장사꾼에게 향해졌다.

"당신이 사기꾼 아니오?"

전주인 다섯 명이 모두 입을 모아 말했다. 결국 장사꾼은 그 다섯에게 모두 염소 값을 물어줘야 했다.

모두가 돌아간 후 염소는 노인과 단둘이 남겨졌다.

"이 세상에 네 목줄을 풀어줄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도망 다니는 삶으로 쫓겨나지 않아도 됐을 텐데. 내가 다 미안하구나."

노인은 염소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제 더 이상 도망 다니지 않아도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