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고양이의 이름은 루비였다. 태어났을 때 온몸이 칠흑 같은 검은 털로 뒤덮여 있었는데, 눈동자만은 영롱한 장밋빛으로 밝게 빛나고 있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루비는 들었다. 하지만 루비가 지금 물 웅덩이에 비친 자기의 눈동자를 바라봤을 때, 검은 눈동자밖에 보이지 않았다.
검은 털과 검은 눈동자. 루비는 이제 누군가에게 자기 이름을 소개하는 것조차 꺼려했다. 다들 왜 이름이 그렇게 붙여졌는지 궁금해할 테고, 눈동자 빛 이야기를 해줬을 때 다들 자기의 검은 눈동자를 보고 의아해하는 표정을 숨기지 않을 테니까.
언제부터 눈동자가 까매졌는지 모르겠다. 이제는 원래 태어날 때부터 눈동자가 검은색이었고, 장밋빛의 눈동자에 대한 이야기는 다 지어낸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까지 들었다. 그래도 기억을 되짚어보면 분명히 장밋빛의 눈동자를 기억하는데. 어느 한순간에 눈동자 빛을 잃어버린 게 아니라, 조금씩 조금씩 잃어버렸던 것 같다.
"옆집 점박이는 벌써 잘됐다던데 너는 그동안 뭐 했어?"
그때 눈동자에서 빛이 조금 사라졌던 것 같다.
"그러게 좀 더 노력하지 그랬어."
붉은빛이 조금밖에 남지 않았다.
"너 남들이 이상하게 쳐다봐."
이제는 색을 잃어 거의 회색처럼 보였다.
"너는 네가 스스로 잘났다고 착각하는구나?"
칠흑 같은 어둠이 찾아왔다.
그때부터 어두운 골목길로만 다니기 시작했던 것 같다. 괜히 남에게 검은 눈동자를 보이기 싫었다. 발톱은 할퀼 준비, 송곳니는 물 준비를 늘 하고 다녔다.
원래 세상은 외로운 거라고 생각했다. 서로가 서로를 끌어내리려 할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세상에 속해있을 바에야 세상을 따돌리고 싶었다. 아무도 자기를 이해해주지 않는 세상을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언제부터 와있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어느 순간부터 물 웅덩이에서 목을 축이고 있는 한 고양이가 보였다. 루비는 쏜살같이 달려가 발톱을 내보였다.
"이 물 웅덩이는 내 거야. 어서 저리가지 못 해?"
양쪽 귀 끝이 샛푸른색으로 물든 고양이는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이고 실례했네. 주인이 있는지 몰랐어."
"여기 쓰여있잖아, 내 이름." 루비는 발톱으로 웅덩이의 한 구석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 그렇구나. 내 이름은 나래야."
나래는 천천히 다가와 루비가 가리킨 구석을 보았다.
"루비? 아, 눈동자 빛 때문에 이름이 루비구나."
루비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그녀도 모르게 발톱을 내려버렸다.
"내 눈동자 빛은 검은색이라고." 루비가 으르렁거렸다.
"검은색이라고? 네 털이 검은색이고. 네 눈동자 빛은 장미색이잖아."
루비는 물 웅덩이에 비친 자기의 눈동자 빛을 다시 확인했다.
'검은색 맞는데.'
그 이후로 루비는 나래가 자기 물 웅덩이에서 물을 마실 수 있게 허락해 주었다. '내가 왜 얘를 들였지' 하고 후회하지는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그래도 나래가 싫지만은 않았다.
나래는 참 궁금증이 많았다. '왜 이런 걸 궁금해하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래는 이것저것에 관심을 가졌다.
"루비는 하루 중에 어떤 걸 하는 걸 가장 좋아해? 나는 나비를 관찰하는 것!"
"뭘 좋아해서 하겠니. 하루하루를 생존하는 거지."
"그래도 루비가 좋아하는 게 있을 거 아냐."
루비는 말을 돌리며 쏘아붙였다.
"나비를 관찰하는 걸 왜 좋아하니? 그게 인생에 무슨 쓸데가 있다고."
나래는 아무 말 없이 따라오라는 손짓만 할 뿐이었다.
"모든 얼룩무늬 나비들은 다 각자 고유의 색깔 무늬가 있어. 무심코 보면 다 비슷해 보이지만, 다들 각자의 개성과 매력이 있어." 나래가 루비를 꽃밭에 데려가, 꽃 위를 날아다니는 나비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루비는 나비는 다 그냥 같은 나비라고 생각하고 자세히 보지 않았었는데, 나래의 말을 듣고 다시 보니 빨간색, 노란색, 초록색, 파란색, 보라색의 무늬를 띈 나비들이 꽃밭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저 아래 회색 나비들 보이니?" 나래가 조금은 아래를 가리키며 말했다.
모두 같은 빛을 띠는 회색 날개의 나비들이 한참 아래에서 낮게 날고 있었다.
"저 회색 나비들이랑 꽃밭의 얼룩무늬 나비들이랑 사실은 같은 종이야. 많은 경우는 살면서 그 얼룩무늬 빛을 잃어버려. 다들 각자 자기만의 얼룩무늬가 있는데 그 얼룩무늬를 충분히 뽐내지 못 한 채로 살아가. 잠재력만 가지고 있다가 꽃 피우지 못하고 나이가 들면 다들 똑같은 회색이 되어버려."
나래는 발가락을 척하고 들며 말했다.
"그래서 난 저 나비들을 볼 때마다 속으로 외쳐. 너 빨간 무늬! 너 절대 빨간 무늬를 잃지 마. 너도 다른 나비들이랑 똑같이 무늬 빛을 잃고 회색 나비가 되어버린다면 내가 가만두지 않을 거야!"
나래는 다시 발가락을 내렸다.
"이런 내 마음이 저 나비들에게 들리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이런 작은 외침이 조금이라도 힘이 될 거라고 믿고 싶어."
그 말을 듣던 루비의 입에서 자기도 모르게 말이 나왔다.
"너, 네 눈에는 내 눈동자가 장밋빛으로 보여?"
"그럼 장밋빛이고 말고."
루비는 큰 소리를 질렀다.
"너 나 놀리려고 자꾸 그러는 거지? 내 눈동자 빛은 검은색이고, 장밋빛이 있었다고 해도 오래전에 다 빛바래 버렸는데 너는 왜 자꾸 날 들쑤시니?"
나래는 루비의 어깨에 발을 올리며 말했다.
"너의 눈동자 빛은 그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어. 너 스스로가 숨기고 있을 뿐이야. 난 그저 그 틈새로 너의 진짜 빛을 본 거고."
루비는 무언가에 홀린 듯이 뛰어서 물 웅덩이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물 웅덩이에 비친 자기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아직도 칠흑 같은 검은색이었다. 루비는 물 웅덩이에 머리를 집어넣었다.
"옆집 점박이는 벌써 잘됐다던데 너는 그동안 뭐 했어?" 하는 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렸다.
점박이가 무엇을 하든 나와 무슨 상관이야! 나는 나만의 길을 갈 거야!
"그러게 좀 더 노력하지 그랬어."
나는 나에게 주어진 것에 대해서 최선을 다해서 살아왔다고! 난 내 인생에 후회 없어!
"너 남들이 이상하게 쳐다봐."
남들이 이상하게 보면 뭐 어쩔 건데! 남 눈치 보다가 내 인생을 흘려보내지 않을 거야!
"너는 네가 스스로 잘났다고 착각하는구나?"
적어도 나는 내가 못났다고 생각하지 않아! 난 오직 이 세상에 하나뿐인 루비라고!
루비는 머리를 물속에서 뺐다. 숨을 고르고 눈을 떴을 때, 밝게 장밋빛으로 빛나는 눈동자가 루비를 바라보고 있었다.
루비는 당장 꽃밭으로 뛰어갔다.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나래가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찾아보았지만 그 어디에서도 나래를 찾을 수 없었다.
날개 끝이 샛푸른색으로 물든 나비 한 마리가 루비의 코에 사뿐히 내려앉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