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나이에 바둑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떻게 시작해야 할 줄 몰라서 서점에서 바둑 입문서부터 샀다. 이세돌 9단의 입문서와 이창호 9단의 책들. 그 책들에서 나름 기본을 배웠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막상 실전에서 바둑을 둬보면, 책에서 나오는 교과서적인 그림은 절대 나오지 않는다. 실제 대국을 해보면, 매번 지기만 했다. 그래서 책을 넘어서, 실제 사람들이 둔 경기를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지금은 좋은 시대라, 유튜브에 경기 영상들이 올라와있는 것들이 많았다.
놓아지는 바둑돌을 보면서, 다음 턴에는 나라면 어디를 둘 것 같은지 생각을 해봤다. 대부분은 왜 거기 뒀는지도 모르는 이해가 안 가는 수들이 대부분이었다. 열 수, 스무 수 후에 그때 둔 돌이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는데, 사실 내 실력으로는 이해가 될 리 없었다.
그러다가 어떤 영상을 마주하게 됐는데, '나라면 여기 둘 것 같은데' 하는 생각 그대로 그 자리에 돌을 놓는 기사가 있었다. 그 기사의 다른 경기 영상을 찾아봐도 나의 예상과 비슷한 수를 뒀다. 그 수가 좋은 수인지 나쁜 수인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수를 두는 기사라서 그 기사를 찾아봤다.
그 기사 이름은 타케미야 마사키(武宮正樹). 작은 사사로운 모퉁이는 내어주고, 중앙의 큰 우주를 차지하겠다는 "우주류" 기풍의 창시자.
타케미야 9단을 알게 된 이후부터 바둑이 본격적으로 재밌어지기 시작했다. 디테일한 수싸움은 사실 체스에서도 충분히 충족할 수 있는 재미다. 그런데 큰 판을 짠다는 것, 거대한 큰 그림을 그린다는 것, 그건 바둑만의 묘미다.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이긴 후부터 바둑판은 거의 AI가 장악했다고 봐도 좋다. 인간 기사들과의 대국도, AI와의 일치율이 몇 퍼센트인지로 승패가 결정된다. 가장 AI를 잘 흉내 내는 사람이 챔피언이 되는 세상이 됐다. 그런데 그렇게 AI와의 일치율이 99% 되는 인간 기사의 경기를 볼 바에야, AI 일치율이 100%인 AI전을 보는 게 더 맞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럼으로써 바둑의 재미는 옅어지고 있다고 느낀다.
이런 세상에서 타케미야 9단의 말은 더 울림을 준다. 책에 쓰여있으니까 따라서 두는 게 아닌, 남의 시선을 의식해서 두는 게 아닌, 자신이 두고 싶은 곳에 두라는 것. 인간다운 아름다운 마음으로 바둑판을 바라보라는 것. 바둑은 즐겁고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 타케이먀 9단의 바둑은 AI와의 일치율을 따지는 게 의미가 없다. 누가 봐도 '저건 타케미야의 바둑이네'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기만의 바둑을 둔다.
많은 사람들은 극한의 효율과 정답을 찾는다. 즐거움이 목적인 게임에서도 "국룰 빌드"를 따지며 스트레스받는다. 엄청난 양의 정보가 범람하고 있는 이 시대에 그런 효율을 따지지 않으면 바보같이 보일 정도다.
하지만, 나만의 큰 그림을 그린다는 것, 나만의 색깔을 만들어 간다는 것, 누가 봐도 남들과는 달리 나만의 개성 있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 이런 중요한 것들을 많이들 놓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바둑으로부터 수읽기보다는 이런 생각들을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