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스는 내가 한 수 두고, 상대방이 한 수 두는 것의 반복이다. 주사위를 굴리지 않는, 운에 따른 요소가 없는 게임이고, 상대방으로부터 숨기고 있는 패가 있는 것도 아닌, 모든 정보가 공개되어 있는 게임이다. 한마디로, 체스는 좋은 수를 찾는 게임이다.
체스에서 내가 둘 수 있는 수의 조합은 기하급수적으로 수없이 많이 있는데, 그중에서 좋은 수는 적다. 내 순서에 가능한 수가 평균적으로 35개 정도 있고, 한 게임당 평균적으로 40 턴을 두기에, 평균적으로 35^40(~5*10^61) 개의 수의 조합이 있는데, 이 중에서 좋은 수들로만 이루어진 조합을 찾아내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누가 좋은 수를 알려줬을 때 그 수가 좋다는 것을 알아보는 것조차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실제로 본인이 스스로 좋은 수를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것이 초보와 고수의 차이이기도 하고.
좋은 수를 찾는 것이 어렵듯이, 누군가의 좋은 점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진짜 어려운 일이자 그 무엇보다 큰 재능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반대로, 체스에서 가능한 수 중 나쁜 수를 선택할 확률이 높듯이, 누군가의 단점을 찾아내는 건 너무나도 쉬운 일이 아닐까 싶다.
누군가에 대해 알게 될 때, 많은 사람들은 상대방을 너무나도 쉽게 판단해 버리는 경우가 너무 많은 것 같다. 그 사람의 장점이라고 해봤자 눈에 드러나는 것들만을 보고 평가해 버리는 경우가 많고. 많은 사람들은 상대방의 못난 점이 눈에 거슬릴 정도로 잘 보이나 보다. 심지어는 누군가의 단점을 들춰내는 것에 대해 본인이 예리하다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이런 사람들을 곁에 두면 불행해지는 것 같다. 이런 사람들은 "기준"이라는 게 있고, 그 기준을 잣대로 끊임없이 비교를 하는 것 같아 보였다. 그 사람들이 옆에 있으면, 그 기준에 맞는지 안 맞는지 끊임없이 나 스스로를 재게 되고, 이 사람들 자신들도 스스로 세운 기준에 맞지 않는 본인들의 모습 때문에 스스로에게 만족하지 못하는 듯싶었다.
그런데,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숨은 장점을 찾아서 부각시켜 주고, 누군가를 긍정해 줄 수 있는 것은, 말로는 쉽지만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못 하는 것이고, 하루아침에 만들어질 수 없는 그 무엇보다도 큰 재능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본인 스스로도 몰랐던 상대방의 매력을 알아봐 주고, 그걸 소중하게 여겨주는 사람은 정말 적은 것 같다. 이런 사람은 곁에 두면, 내가 가치 있는 사람이구나, 하고 느끼게 해주는 사람이다.
1997년에 세계 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Garry Kasparov)가 IBM 컴퓨터 딥블루에게 진 이후로, 컴퓨터는 인간을 체스에서 이겨왔다. 지금은 스마트폰에서 몇 초면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앱에 세계 1등 챔피언도 맥을 못 추린다. 컴퓨터의 입장에서 보면 초보든 세계 1등 챔피언이든 다 거기서 거기일 것이다.
그것처럼, 누가 잘났니 누가 못났니 하는데, 결국 우리 모두는 다 비슷비슷, 또이또이, 거기서 거기인 것 같다. 그런데, 누군가가 특별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그 사람이 다른 사람과 비교했을 때 더 잘나서가 아니라, 그 사람만의 모습에서 특별함을 찾을 수 있는 나의 안목에서 오는 것 같다. 그런 안목이 없다면, 내 곁에 있는 사람에게서 항상 부족한 면모만이 보여서 신경 쓰일 것이고, 그런 안목이 있다면, 내 곁에 있는 사람을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새로운 매력을 발견하게 되는 게 아닐까 싶다.
체스 유튜버들이 많이 활동하는데, 세계 1등 챔피언인 망누스 칼센(Magnus Carlsen)이 가장 유명할 것 같지만, 가장 유명한 유튜버 중 하나는 세계 순위권에도 못 드는 한 크로아티아 사람이다. 이 사람은 프로 체스 선수처럼 체스를 잘 두지는 못하지만, 체스를 오래 둬왔던 사람들과 체스를 취미로 두고 있는 수많은 일반인들 뿐만 아니라, 체스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까지 모두 이해할 수 있게 체스 경기를 아주 재밌게 잘 설명한다. 얼마나 무언가를 잘하냐 보다는, 사람들 눈높이에서 함께 무언가를 해낼 수 있는 사람이 가장 매력이 있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체스를 연속으로 계속 지다 보면 짜증이 날 때도 있다. 그런데 또 결국 생각해 보면, 이기든 지든 무슨 상관일까 싶다.
체스를 잘 두는 사람보다는, 체스를 같이 두고 싶어지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