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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사작 Oct 30. 2017

2. 최초의 대화

새들이 깃들이다

2016년 2월 27일 늦은 밤.

XX대학병원 암병동 복도 끝 어느 병실. 침대에 나이 일흔의 암환자, 깡마른 아버지가 누워있다.


젊은 목사는 침대 옆에 앉아 차갑게 식어가는 그의 손을 잡은 채 오랜 기도를 드리고 있다. 아버지의 손가락에 유화물감 자국이 유독 도드라져 보인다. 화가의 손이었다. 암이 발견되고 다시 붓을 잡기 시작한 7여 년 동안 아버지는 정말 화가로 살았다. 그 전에는 아버지였고, 선생님이었고, 남편이었고, 그리고 화가이기도 했지만 지난 7년 그는 화가라는 이름 하나만으로 살아왔다.


그의 아내, 어머니는 오래된 찬송가를 나지막이 읊조리며 병실 이곳저곳을 서성거리고 있다. 찬송가 부르기는 어머니의 버릇이다. 기분이 좋을 때는 물론이고, 외할머니가 위급하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도 찬송가를 읊조리던 어머니의 모습을 기억한다.  


찬송가가 중반쯤 되자 어머니는 두 달여 병원 신세를 지는 동안 병실 곳곳에 쌓인 살림살이들을 주섬주섬 정리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이 기적이라는. 마음의 준비를 잘 하시라는. 환자가 원하는 대로 다 해 드리라는. 그런 의사의 말을 들어야 했던 어머니는 하루에도 몇 번씩 이 순간을

머리 속으로 그려보았을 것이다.

 

감정이 너무 격해져 무너져 내리지 않기 위해, 이후에 남은 장례절차를 차질 없이 준비해 나가기 위해

어떻게 마음을 다 잡아야 할지, 무엇을 하며 애써 감정을 추슬러야 할지 마음속으로 몇 번이고 연습해 보았을지도 모른다.


아마 찬송가를 불러야겠다고 생각했으리라. 짐을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으리라.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런 생각 때문에 눈시울이 붉어질 때쯤 나와 눈이 마주친 어머니는 잠시 찬송가 부르기를 멈추다 이내 다른 곳으로 시선을 옮겨 찬송가를 마저 불렀다. 그런 어머니의 몸짓이 '우리 이 연극을 잘 마치자꾸나'하고 나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아버지의 손이 침대 밑으로 떨궈지고. 심전도기의 그래프가 일직석을 그리고. 그의 임종을 지켜보던 몇몇 사람들이 울음을 터트리고. 간호사들이 그의 몸에 붙어있던 의료기기들을 떼어내고. 그러고 나서야 그 젊은 목사는 오랜 기도를 멈췄다. 아버지와 맞잡은 손도 내려놓았다. 아버지의 손가락을 바로 피고, 다리도 곧게 펴드렸다.

마치 이 세상과 저 세상을 분리하는 의식 같아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어머니를 향해 입을 열었다. 기도 중 나무에서 새들이 하늘을 향해 힘차게 날아가는 환상 같은 것을 보았노라고.


유가족을 위로하기 위해 의례적으로 하는 말일까?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과 함께 그 어떤 말도 이제는 아버지에게 소용이 없다는 사실, 그의 귀로는 이제 아무것도 들을 수 없다는 사실, 죽음이란 그냥 이렇게 찾아온다는 사실을 조금씩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때쯤, 어머니가 말했다.


“그이의 마지막 그림이 나무에 새들이 모여 있는 그림입니다. 제목이 ‘새들이 깃들이다’예요.”


최초의 대화.


나는 젊은 목사와 어머니의 그 대화에 이런 이름을 달아보았다. 아버지가 떠난 이 세상에서의 최초의 대화.


“나무에서 새들이 하늘을 향해 힘차게 날아가는 환상 같은 것을 봤어요”

“그 이의 마지막 그림이 나무에 새들이 모여 있는 그림입니다. 제목이 ‘새들이 깃들이다’예요”


그 대화는 A4용지 정도 되는 크기의 캔버스에 그려진, 한 번도 주의를 기울여 들여다보지 않았던 그 그림에 펄떡이는 생명을 불어넣는 것만 같았다. 흙으로 만든 아담에게 창조자의 숨결이 불어넣어지던 그 최초의 날처럼.  




<박유승 작. 새들이 깃들이다(Birds Build Nests) 53.0X65.2cm, 캔버스에 아크릴>


정원에서 새들이 소리가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종류별로 우짖는 새가 늘 청명하게 들려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새들이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제주도에 없었던 새를 누가 들여온 후 까치가 익조가 아님을 알았습니다.


무리로 나타나 산비둘기를 공격하고 죽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 때문에 다 피난을 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새가 울지 않는 숲은 적막할 뿐입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새들의 피난이 까치 때문이 아니라 급수대에 물이 말라있는 것입니다.


물을 채워 놓자 새들이 다시 돌아왔습니다.

 새들도 생수를 갈망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천국 미술관 공사가 진척이 되어 이제 그림을 걸기 시작했습니다.

땅위의 모든 씨 보다 작은 것이 언젠가는 거목이 되고 새들이 깃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천국 미술관 숲으로 각종 새들 생명의 소리가 쟁쟁하게 들려오기를 바랄 뿐입니다.


다시 새들이 깃들고 하늘을 향하여 청명한 기다림의 노래를 부를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화가의 일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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