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120 : It's gonna be okay
여행 중에 쓰고 있습니다. 두서도 없고 인터넷이 느려 사진도 없지만, 일단 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소소한 감상과 개인적인 생각을 위주로 하고, 여행 정보는 간략하게라도 나중에 따로 정리해볼까 하네요.
바간에서의 마지막 아침. 밖에서 아침을 먹는데 초록색 론지를 입고 자전거로 등교하는 애들 웃음소리가 즐겁다. 학교에도 한 번 가 보고 싶은데. 외국인이 무작정 들어가 구경하고 있으면 선생님들이 싫어하겠지? 애들과도 이야기를 해 보고 싶지만, 나도 수줍고 애들도 수줍다.
그래도 어제 나름 딥 토킹을 하여 대나스와 작별 인사라도 하고 싶었는데, 계속 잔다. 행여 깨울까 싶어 불도 못 켜고 살금살금 짐을 챙겨 8시에 껄로로 향하는 차에 탄다.
오래 걸리는 길이라 가장 좋다는 JJ 익스프레스로 편안하게 가고 싶었는데. JJ로 예약해 달라는 것을 깜빡하고 어제 오후에 물어보니 이미 예약을 해버렸고 껄로까지 가는 JJ는 없다고 한다. 뻥치시네. 그제 만난 한국분이 JJ 에약했다고 했는데. 하지만 어차피 이미 예약된 것을 물릴 수 없다고 해서 그냥 알았다고 하고 말았다.
만달레이에서 바간에 올 때 보다 차 상태가 별로다. 그래도 양쪽에 각각 2자리씩 있는 작은 버스 같은 느낌이 있었는데 얘는 봉고. 짐은 차 위에 싣는다. 이미 양인들로 그득한 차의 맨 뒷자리에 낑겨 앉았다. 목받이도 없네. 설마 이 상태로 6~7시간을 껄로까지 가야 하나? 설마. 이것은 버스 정류장까지 가는 픽업 차량이라고 생각하며 구글지도로 내 위치를 계속 추적했는데 차는 유유히 바간을 빠져나가버린다. 이런.
내 옆을 지나가는 멀쩡한 차들이 많은데, 이런 것을 예약해 주다니. JJ가 없다고 뻥친 것까지 더해 나름 좋았던 숙소에 대한 기억이 분노로 바뀐다. 믿고 맡겼는데 이런 차를 예약해 주다니. 나에게 거짓말을 하다니.
하지만 초장부터 씩식대며 하루를 출발 할 수는 없다. 음악이나 들으며 화를 풀어야지. 아무거나 재생을 하는데 오아시스의 All around the world가 나온다. 그리고 계속 되풀이 되는 It's gonna be okay. 어쩜 이런 귀신같은 선곡이. 그래 괜찮아 지겠지. 한 시간쯤 지나니 차에도 적응이 되고 화도 풀린다. 성질내면 뭐하나. 내가 예약을 맡긴 것을.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기는 것이 신간 편하다.
주유소에 멈췄다 휴게소에 멈췄다 하며 껄로로 향한다. 곳곳에서 도로 포장을 하는지 돌무더기와 그것을 깔고 나르고 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군대 있을 때 GOP에서 종일 돌무더기와 시멘트를 나르던 기억이 떠오르는군. 일하는 사람들 중에는 소년 소녀들도 많다. 쟤들은 학교에 도 안 가고 일을 해야 하는구나. "아빠 저도 학교 가고 싶어요." "그런 데 가서 뭐해? 일이나 도와!"같은 대화를 나누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측은하다 싶은 생각이 들다가도, 공부를 열심히 하여 에어컨 나오는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이 더 행복하다는 생각이 오만한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다가 그래도 이건 아닌 것 같다 싶기도 하고.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산을 빙빙 돌아가는 것이 꼭 강원도에 온 기분이다. 뜨거운 햇볕이 쏟아져 들어오는 좁은 차 안에 낑겨 있으려니 외국인들도 불편한 모양. 뭐라뭐라 탄식같은 것들을 내뱉는다. 차가 고장나서 잠시 멈추는 일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어찌어찌 오후 3시 반쯤이 되어 드디어 껄로에 도착했다. 2시쯤에 도착하면 여유 있게 작은 산골 마을을 둘러보려면 계획은 이미 물거품. 어서 숙소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 뿐이다.
3만 얼마로 미얀마 여행 중 가장 비싼 숙소는 트레킹 전 편하게 쉬기 딱 좋다. 언덕에 있지만 내일 아침을 옥상에서 전망을 보며 먹을 수 있을테니 감수할만 하다. 한 숨 돌리고 나니 벌써 4시. 트레킹 예약도 하고 시장도 둘러보고 싶어 얼른 밖으로 나간다.
트레킹 회사 몇 개를 돌아볼 계획이었으나 시간이 많지 않으니 가장 유명한 샘스 패밀리에서 하기로 결정. 이미 외국인들 한무데기가 신청을 하고 있다. 돈 좀 더 내더라도 서너 명 정도의 작은 그룹으로 가고 싶은데. 상담을 받으러 자리에 앉는데 서양 여자 한 명이 자기도 혼자 왔는데 같이 가겠냐고 한다. 한 명이 예약 걸어두고 간 것 같은데 그 사람이 확정하면 아마 셋이 갈거라며. 좋군. 이틀간 영어로만 떠들 생각을 하면 동포가 한 명 함께 했으면 좋겠다 싶지만, 명단을 뒤져봐도 2박 3일 하는 분들 뿐이고 어차피 말도 많이 안 할 것이니. 게다가 이 서양 여자는 너무 어리지도 활기차지도 않고 말투도 차분하다. 독일에서 온 멜라니는 3주간 양곤 명상 센터에 있다가 일주일 돌아다닌다고 한다. 명상을 즐기는 사람이라니. 수다스러울 리 없다고 생각한다.
5시에 만나 이름만 올려둔 사람을 만나보고 결정하자고 해서 그 때 다시 오기로 하고 동네와 시장 구경을 갔다. 껄로는 정말 작은 동네지만 만달레이나 바간처럼 복잡하지 않아 마음에 딱 든다. 사람들도 더 친절하고 더 잘 웃어주며 손도 흔들어 준다. 여행자에게 편리한 것은 영어를 잘 하는 사람들이 몹시 많다는 것. 시장 가게에서 이것저것 구경을 하는데 모두 영어를 잘 한다. 기념품 가게의 할머니는 나보다 더 잘하는 듯. 기대했던 망고는 여기에도 없지만, 사과처럼 생긴 파오인지 파우인지라고 부르는 과일을 몇 개 샀다. 아주 달콤하다는 아저씨의 말을 믿고. 이따 저녁에 맥주랑 먹어야지.
5시가 되어 샘스 패밀리로 돌아갔는데, 제 3의 일행은 나타나지 않는다. 멜라니도 나도 조용히 트레킹 하기를 원해서 큰 그룹에 끼고 싶지는 않아 돈을 더 내더라도 2명이서 가기로 결정했다. 생각보다 더 많은 지출을 했지만, 원하는 것이 같은 일행을 만났으니 아깝지 않다. 좋은 트레킹이 될 것 같다.
아침에 숙소에서 빵쪼가리 몇 개 주워먹고, 버스를 타고 오던 중 튀김 몇 개를 사 먹은 것이 다라서 배가 너무 고프다. 바간에서 그토록 찾아헤맸으나 발견할 수 없었던 샨 누들을 드디어 먹어보리라 다짐하고 가이드북에 나온 곳으로 직행. 삐에삐에 샨누들이라는 작은 가게는 놀랍게도 한 그릇에 500짯 정도. 샐러드 타입의 비빔면을 시켰는데 쫄깃한 쌀면에 땅콩 같은 고소한 맛이 나는 것이 영 맛있다. 맘만 먹으면 크게 한입에도 해치울 수 있는 아주 작은 양이긴 하지만. 2~3개 시켜서도 먹겠다. 혼자 다니는 여행자에게는 한 끼에 여러 맛을 볼 수 있으니 좋을 것 같지만, 맥주를 마셨더니 이미 배가 부르므로.
해가 지고 가게들도 문을 닫으니 딱히 할 일이 없으나 벌써 방에 들어가기는 싫어 시장 옆의 카페에 들어가 본다. 작은 테이블에 목욕탕 의자 같은 것이 놓여 있는데, 바깥 자리의 분위기가 나쁘지 않다. 미얀마 밀크티를 달라고 했는데 이게 라팻예인지는 잘 모르겠다. 물어볼 것을. 연유 맛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달달해 밥 먹은 뒤 마시니 딱 좋다.
한 시간 정도 지출을 정리하고, 일기를 쓰며 시간을 보내다가 찻집에서 파는 튀김을 사서 숙소로 돌아와 맥주와 과일을 펼쳐놓고 껄로에서의 짧은 하루를 마무리한다. 튀김은 맛 없고, 아저씨가 달다던 과일은 그리 달지 않지만 맥주는 여전히 맛있네.
껄로는 정말 별 것도 없는 작고 작은 동네지만 하루쯤 여기에 더 머무르고 싶은 생각이 든다. 바간과 만달레이에서 잘 웃어주는 미얀마 사람들에게 놀랐는데 껄로는 그보다 더하다. 여행자들을 잡아두려는 곳이 아니라, 보내주는 곳이기 때문일까. 상업적인 면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 자본주의 세상에 이정도면 양반이지. 미얀마에 다시 오게 된다면 이 동네에 다시 와 보고 싶다. 그 때에도 이런 기분을 느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