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 한 달 살기. DAY 00
2018년으로 넘어가는 겨울 내내 5년 기간제로 일한 곳의 정규 채용에 매달려 있다가 최종에서 결국 떨어졌다.
떨어지면 일 그만두고 반 년동안 여기저기 떠돌아댕길 것이라고 공언하고 다녔었는데, 막상 다시 백수가 되려니 또 겁이 나더라.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구나. 다른 곳에 기간제로 들어갈 시간도, 정신도 없어서, 민망한 웃음과 함께 나만 괜찮으면 1년 더 있겠냐는 말에 덥썩 감사합니다. 그렇게 나를 제낀 새 사람과 몇 년간 같이 일한 동료들을 제낀 새 사람들과 나를 어색하게 위로하는 사람들과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나를 대하는 사람들 틈에서 1년을 더 버티기로 했다.
처음엔 그냥 괜찮았다...기 보다는 정신없이 일이 몰아치는 시기라 몸을 건사하기 바빠 감상에 빠질 여유가 없었다는 말이 더 정확할까.
정신을 차려보니 별 것도 아닌 일에 ‘과연 나에겐 별 신경도 안쓰는군.’ 싶어 섭섭해 하고 배배 꼬아서 생각하는 나를 발견했다. 따져보면 전혀 그렇게 생각할 일이 아닌데도. 그렇게 따져보니 결국 나의 속좁음이 원인인 것이다 싶어 우울하고. 그러다보니 만사 다 귀찮고 하기 싫고 대충 하게 되고. 그러니까 애들한테는 미안하고. 그래도 의욕은 안 생기고. 그래서 또 나한테 실망스럽고. 이런 무기력과 우울의 순환 같으니. 왱왱 징징징징.
사실 불합격이야 요즘같은 세상에 흔하디 흔한 한가로운 사건이다. 그냥 명분이었겠지.
뭔가 근본적인 문제가 생긴 것 같은데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3년만에 다시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끼다 별안간 눈에 들어온 것이 한 달 살기였다.
치앙마이에서 많이 한다길래 많이 고민하지도 않고 덥썩 티켓을 사고 4주짜리 숙소를 예약했다.
가서 뭘 할 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답을 찾아올 지
생각해 보지도 않았고 별로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3년 전에 몽골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저 그냥 아무 것도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지내다 보면
구멍 뚫린 주머니에서 모래가 새어나가는 것처럼 이것도 저것도 빠져나가 홀가분해지겠거니
그래서
저 머나먼 남국의 도시로 나는 가자
아무 것도 하지 않으러